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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에게 귀를 내어주는 일

기사입력 2017-06-27 11:33

<브라보 마이 라이프> 동년기자로 같이 활동하는 손웅익님은 여러 커뮤니티에서 같이 활동하고 있어 친하다. 나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명함을 주는 것을 보니 처음 보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꽃보다 당신의 이야기를 손웅익이 들어드립니다’라고 씌어 있었다. ‘듣기가 세상을 바꾼다’, ‘듣기 활동가 모집’, ‘연구’, ‘기획행동’, ‘듣기해커론’, ‘홍보’ 등 구체적인 내용까지 들어 있었다.

남의 말을 들어주는 일은 아무나 못한다. 유익한 얘기이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라면 귀가 솔깃할 수는 있으나 대부분 피곤한 일이다. 전철 안에서 전화 통화하는 사람들의 통화 내용을 듣고 있으면 짜증이 나는 것과 같다. 같이 대화하는 것과 달리 한쪽 얘기만 듣고 있으면 더 피곤하다는 논리가 있다.

‘나이가 들면 양기가 입으로 올라간다’는 말이 있다. 아랫도리가 시원찮아지면 어딘가로 분출을 해야 하는데 입이 가장 손쉬운 도구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일단 오래 살았으니 아는 것도 많고 할 얘기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말 많은 사람은 일단 피곤하다. 일방적으로 들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른 사람이 말할 기회마저 빼앗는다. 중간에 말을 끊으면 “가만히 있어 봐!” 하며 자기 말을 계속한다.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갔다가 다시 그 사람이 입을 열면 귀가 멍멍해지고 피로감이 먼저 밀려온다.

말 많은 사람은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수많은 말을 하다 보면 듣는 사람에 따라 거슬리는 내용도 들어 있을 수 있다. 말은 일단 발설하면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에 수습하기 곤란해진다. 말 많은 사람들끼리 만나면 싸움으로 번지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양보가 없고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다음 모임 때 그 사람이 나온다 하면 한 사람은 안 나간다. 서로 보기 싫다는 것이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여러 유형이 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말을 해서 먹고사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연습 삼아 말을 많이 한다. 강의 때 써먹을 말을 미리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연습해보는 것이다. 반대로, 강의 때 써 먹은 내용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풀어놓는 사람도 있다. 자기 자랑만 하는 사람도 많다. 경쟁 시대에 남보다 튀려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습관이 되어버린 사람도 있다. 말을 많이 해야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사람도 있다.

여성들은 하루에 2만 단어를 배출해야 그날 잠이 제대로 온다고 한다. 여성들이 상담을 청해올 때 남성들이 자주 하는 실수는 충고나 질책을 하는 것이다. 여성들의 말은 그냥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말을 많이 하면 밑천이 드러나기 쉽다. 속마음이 다 보이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는 사람이 그래서 무섭다.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말을 안 하니 실수도 없다. 일본 관광을 갔을 때 가이드가 한 말이 생각난다. 일본 사람들은 말을 아끼기 때문에 상당히 조심스럽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30분 이내에 자기소개를 스스로 한단다. 왕년에 자기가 어땠고 지금 자식들이 어떻다 등을 다 말한단다.

말 많이 하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말을 들어주는 자원봉사까지 하라면 사양하고 싶다. 남 이야기를 들어주려면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할 텐데 필자는 자신이 없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드립니다’라고 쓴 명함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대단한 내공을 가진 사람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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