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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판의 반집 싸움과 인생

기사입력 2017-05-20 12:06

▲바둑판의 반집 싸움과 인생(조왕래 동년기자)
▲바둑판의 반집 싸움과 인생(조왕래 동년기자)
바둑판에 반집은 없지만 반집승, 반집패는 있다. 바둑은 흑이 먼저 둔다. 먼저 두면 유리하다. 흑의 유리함을 상쇄시켜주고 승부의 공정성을 위해 백에게 6.5집을 더해준다. 여기서 0.5집은 무승부를 방지 하기위해 만들어낸 실체가 없는 가공의 집이다. 반상에 없는 반집이 반집승과 반집패의 근거가 된다. 6.5집으로 하는 근거는 이미 두어진 수많은 바둑판을 면밀히 검토해 보니 먼저 두는 흑의 기득권이 6.5집에 해당한다는 통계에서 산출됐다. 백이 이기려면 반상에서 7집은 남겨야 반집승이 되고 흑은 6집이 부족해도 반집승이 된다.  

  

아마추어로서 실력 차가 나는 경우에는 하수에게 흑을 잡게 하고 실력 차 만큼 흑 돌을 몇 개 먼저 놓고 시작한다. 장기판에는 고수가 차(車)나 포(包)를 없앤 상태에서 시작한다. 즉 바둑은 하수가 자기의 군사를 늘린 상태에서 전쟁을 시작하고 장기는 상수가 자기의 군사를 줄인 상태에서 불리함을 안고 시합에 등장한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에서는 아무리 단수가 달라도 대등하게 시합을 한다. 일류대학을 나온 사람과 삼류대학을 나온 사람이 같은 시험지로 입사시험을 치는 것과 같다.

    

 방송프로에“미생”이라는 연속극이 있었다. 미생은 바둑용어다. 바둑의 돌이 두 집을 완전히 내지 않고 있으면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미생 상태다. 이것을 빗대어 직장인의 애환을 그린 연속극인데 시청자들로부터 아주 호평을 받았다. 바둑돌을 죽이는 수도 많고 살리는 수도 많다. 직장의 다양한 변수들을 바둑용어 미생과 결부시켜 재미를 더했다. 바둑이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말도 인생이란 원래 파란만장하듯 바둑 한판도 변화무쌍하다. 빈곤한 가정에 태어난 사람이 나중에 부자가 된 사람이 있듯이 바둑도 초반 불리함을 딛고 승리한 바득 시합도 무수히 많다. 그래서 바둑격언도 세상 이치와 많이 닮아있다. 예를 들면 수신제가(修身齊家)와 의미가 비슷한 아생(芽生)후 살타(殺他)라는 격언이 있다.

    

바둑을 반상에 없는 반집으로 지면 허망하다. 반대로 반집을 이기면 기쁨이 배가되어 콧노래가 나온다. 인생에 있어서도 아슬아슬하게 차석을 하거나 종이 한 장 차이로 승리를 거머쥐면 슬픔이나 기쁨이 배가 된다. 바둑을 둘 때는 끊임없이 계가를 해야 한다. 지고 있다면 패를 써서라도 뒤집기를 시도해봐야 하고 이기고 있으면 부자 몸조심으로 싸움을 피해야 한다. 인생에 있어서도 불리할 때는 뒤집기나 잡치기 수단으로 용이라도 써봐야 하고 여론이 유리하면 고개를 더 숙이고 말조심 하며 혹 모를 입방아에 조심해야 한다.

바둑판에서 반집을 이기고 있는지 지고 있는지는 확실히 알기 어렵다. 인생에 있어서도 최종 승자는 안개 속에 가려 있을 때가 많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승자와 패자가 나누어져도 이긴 자와 진자의 대우는 엄청나다. 수 십 수백 수를 두어 결국 반집을 지고나면 나에게 충성한 수많은 바둑돌들은 이제 의미가 없어진다. 국지적으로 여러 전투에 이겨도 최종적으로 전쟁에 지면 진 것이다. 인생에 있어서도 노후가 불행하면 젊어서 영화도 모두 허사로 불행한 인생으로 자리매김 한다.

하수들일수록 반집의 승부는 아주 드물고 고수가 될수록 반집 승패는 많다. 고수는 그만큼 계가가 정확하고 바둑을 치열하게 둔다는 의미다. 인생에 있어서도 정상의 언저리에 포진하고 있는 사람은 자기관리에 철저하고 매일을 열정적으로 산 사람이다. 비록 정상에 서지는 못했지만 박수를 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인생은 노후가 행복한 사람이 최종 승리자다. 살아온 하루하루가 모여 노년을 만들어 낸다. 젊음을 낭비하고 노년 성공을 기대하면 안 된다. 바둑 또한 초반 포석과 중반의 세력 싸움을 거쳐 종반의 전투와 집짓기에 이겨야 승자가 된다. 노년이 행복하면 초년고생은 무용담으로 들리고 성공한 사람은 과거가 아무리 비참하였어도 아름답고 자랑스럽게 보인다. 

인생과 바둑은 과거를 회상해 보는 복기가 있다. 반집 패배 앞에서 왜 패했는지를 몰라 어리둥절하지만 다시 한 수 한 수 복기해보면 분명 잘못이 있다. 노년이 불행한 사람도 과거를 회상하면 크고 작은 후회할 잘못이 분명 있다. 바둑은 다음 판이 기다리지만 인생은 다음 판이 없다. 두 번 다시 살 수 없는 것이 인생이므로 인생한판은 바둑한판보다 너무 가혹하다.

바둑이나 인생에서 언제나 지금이 중요하다. 이미 착수해버린 바둑돌은 이미 지난 과거다. 지금 놓아야 할 바둑돌이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인생 또한 과거는 추억일 뿐이다. 인생에 있어서도 과거는 역사일 뿐이고 언제나 지금이 중요하다. 오늘을 진실 되게 열심히 살아야 면 훗날 반집승에 더 가까워진다는 믿음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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