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춘천시 서면(西面)에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기가 막힌 평야지대가 한복판에 있다. 서쪽으론 몽덕산(660m, 가덕산(858m), 북배산(867m) 등이 솟아 있고, 북한강이 북쪽 경계를 출발해 동쪽을 감아 돌면서 평야를 감싼 지형이다.
산과 물의 기(氣)가 통하면서 똑똑한 사람들이 많이 났다. 그래서인지 이곳 서면은 ‘박사(博士)마을’로 유명하다. 전국 면단위 지역 중에서 가장 많은 박사를 배출해 얻은 별칭이다.
이곳에 ‘박사’급 친환경 토마토 재배의 농사꾼들이 있다. 나이순대로 성원경(61), 김남규(61), 김선복(58), 홍순창(47)씨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 4명은 다른 2명의 젊은이들과 항상 붙어 다닌다. 같은 동네에서 산양삼을 재배하면서 토마토의 전국 유통을 담당하는 박지훈(31), 허우석(40)씨다. 아버지와 아들, 삼촌과 조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한 이들 30~60대의 청장년 6명은 삶의 동반자이자 사업 파트너이며, 서로가 서로의 ‘멘토’(스승)다.
꼭 8년 전이었다. 12명의 토마토 농가가 의기투합해 친환경 토마토 재배를 선언했다. 하지만 처음에 시행착오는 불가피했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으니 수확량은 줄었고, 초창기 유기농 토마토라고 해서 값을 더 쳐주지도 않으니 힘이 빠진 농부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이제는 4명이 남은 것이다.
그 무렵, 젊은이 2명이 춘천 서면에 찾아들었다. 산양삼 재배와 유통사업을 한답시고 터를 잡았는데, 농사라고는 쥐뿔도 모를 것 같은 젊은이들의 등장에 동네 어른들은 못마땅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저희가 1년 안에 망한다고 내기들 하셨대요. 근데, 망하기는커녕 하루가 멀다 하고 트럭이 들어와서 택배박스를 싣고 나갔어요. 컴퓨터로 산양삼을 파는 저희가 신기하셨을 거예요.”
한 평생 농사일에 잔뼈가 굵은 토박이 농부들과 뽀얗고 앳된 얼굴로 굴러들어온 도시 젊은이들은 이렇게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농사는 농사 전문가가, 유통은 유통 전문가가 맡아 분업하고 협업하면서 수년전부터 친환경 토마토의 역사를 활기차게 쓰게 됐다.
“농사는 우리가 전문가지. 하지만 인터넷이고 유통은 몰라. 그건 박 사장과 허 이사가 하는 거야.” (김남규)
“친환경 토마토 농사는 우리 반장님들이 최고예요. 저희는 이 분들이 잘 키운 토마토를 잘 팔면 되는 거지요.” (박지훈)
성원경씨 등 4명의 농사꾼은 ‘삼모아 오미뜰 작목반’의 작목반장이자 각자 토마토 농장을 소유한 지주농가로 종자의 선택부터, 재배, 수확, 선별과 배송작업을 항상 함께 한다. 내 것과 네 것의 구분 있지만, 내일과 네 일의 구분은 없다. 일본종과 유럽종의 교잡종인 ‘마미리오’를 선택하여 똑같은 방식으로 재배하고, 품앗이로 서로 일을 도우면서, 공동 선별장에서 박스에 담아 출하한다. 제 값을 받아 어디로 보낼 지는 박 대표와 허 이사의 몫. 홈페이지 관리하랴, 주문받아 송장번호 입력하랴 늘 바쁘다.
친환경 토마토가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수년전부터다. 제 자식 입에 농약 묻은 토마토가 들어가는 것을 꺼려한 학부모들의 관심 덕에 전국의 학교 급식에 유기농 토마토가 납품되기 시작했고, 올곧은 농부들의 정성에 젊은 유통 파워가 결합하면서 전국의 학교와 호텔, 식당 등지로 판로가 급속도로 넓혀졌다. 이렇게, 4명의 농부가 총 1만평에서 키워낸 토마토가 전국으로 판매되고 있으며, 농가별로 인건비 등의 모든 비용을 제외하고 순소득으로 연간 최소 5000만원 이상을 달성한다고 했다.
춘천 서면의 이들 농가에서 출하되는 양은 5~6월과 9~10월에는 10kg 들이 기준으로 500~600박스. 1년에 가장 추운 1개월을 쉬고는 여러 비닐하우스를 교대식으로 운영하면서 연중 토마토를 수확하는 데, 일교차가 큰 5~6월에 수확한 토마토가 가장 맛있다고 했다.
“친환경이요? 친환경한다고 하면 제가 나서서 ‘팔뚝질’을 했어요. 농약 안 쓰고 화학비료 안 뿌리면 돈은 어떻게 버냐구요.”(김선복)
김선복씨가 친환경으로 돌아선 이유는 날로 땅이 황폐해지면서 더 독한 농약을 더 많이 뿌려야하는 악순환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남의 땅 빌려서 한두 해 농사지어 바짝 수확량을 올려야하는 위탁농은 친환경재배, 엄두도 낼 수 없어. 돈이 안 되는데, 되겠어?”라고 했다. 내 땅을 잘 일구어 오래도록 처자식 안 굶기고 교육시키려면 땅을 함부로 다룰 수 없었다는 얘기다.
김남규씨가 친환경에 뛰어든 이유는 보다 직접적이다.
“농약 마시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더 이상 못해 먹겠더라고. 농사란 게 우선 내가 해롭지 않아야 하는데 농약 쓰면 나부터 힘들어.”
친환경 토마토 농부들에 따르면, 요즘 도시 마트에서 판매되는 토마토는 땅이 아닌 물에서 키운 토마토가 많다고 했다. ‘수경재배’로 키운 토마토인데, 수경재배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물에 풀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면, 썩은 참나무를 잘게 썰어 퇴비로 뿌려 지력을 높인 땅에서 키운 토마토가 이젠 귀해졌다는 얘기다. 플라스틱 통 안에 토마토를 심어 키우는 ‘배지재배’도 있는데 이 또한 산도와 당도를 조절하느라 이것저것 화학성분을 넣는다고 한다.
서면의 농가에서는 한 그루(1주)에 대략 5kg의 수확량을 거둔다고 한다. 토마토 농사를 잘 지었다면 1주에 7kg도 나오는 데, 친환경재배하다보면 수확량은 조금 부족하다.
“토마토도 사람과 비슷해요. 한 고랑에 토마토를 너무 좁게 심으면 답답해서 토마토가 작구요. 너무 넓으면 알은 큰데 수확량이 적어집니다.”
토마토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은 대략 30cm. 약간 넓게 심어서 공기순환을 잘 시켜 토마토가 서로 부대끼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 게 양질의 토마토를 재배하는 노하우다.
친환경으로 땅에서 키운 토마토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찰지고 아삭아삭하다. 당도가 높다. 저장성이 강해 오래 보관해도 쉬 상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을 아울러 ‘정말 맛있다’.
“며칠 전에 유럽 사람들이 다녀갔어요. 이탈리아를 비롯해 본래 토마토는 유럽이 원조거든요. 그런데 외국인들이 우리 토마토를 먹어보더니 너무 맛있다고 난리예요. 하하.” 박지훈 대표는 “토마토 경쟁력은 우리도 세계 최고수준입니다”고 자랑했다.
끝으로 농부들이 전한 토마토 잘 고르는 노하우. 토마토는 ‘후숙과일’이다. 붉은 빛이 막 돌기 시작한 ‘거의 녹색’의 토마토를 따서 보내면, 배송 및 보관과정에서 익어간다. 그래서 ‘삼모아 오미뜰 작목반’은 발송당일 수확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하루라도 더 오래 보관하면서 먹게 하려면 그날 배송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에, 대형마트 같은 곳에 금방 터질 것처럼 붉게 익은 토마토는 결코 싱싱하지 않다는 것. 육질이 단단하면서 녹색 빛이 많이 도는, 집에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토마토가 좋은 토마토인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를 몰라줄 때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