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고령자 가구 증가 속 ‘비혈연 돌봄’ 논의할 시점

독거노인이 병원에 실려 갔을 때, 보호자 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가족이 없는 경우, 오랜 시간 곁을 지켜온 이웃이나 동거인이 있어도 법적으로는 권한이 없다. 이 같은 ‘돌봄은 있지만 권리는 없는’ 상황이 초고령사회에서 반복되면서 제도 개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 다시 논의되는 생활동반자법은 바로 이 돌봄 공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입법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의료 결정권·주거권 등 쟁점 부상
독거노인 증가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4월 ‘1인 고령자 가구의 자발적 상호돌봄 제도화를 위한 입법·정책 과제’ 보고서를 통해, 1인 고령자 가구 증가로 인한 돌봄 공백과 사회적 고립 문제를 지적하고 생활동반자법을 포함한 제도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독거노인이 정신건강, 의료 대응, 주거, 경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취약하며, 응급 상황에서 보호 체계가 부족하다는 점을 주요 위험 요인으로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주목받는 것이 ‘자발적 상호돌봄’이다. 가족이 아닌 관계에서도 함께 살거나 가까이 지내며 서로를 돌보는 비혈연 돌봄 관계가 늘고 있지만, 현행 제도는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돌봄이 존재하는데도 법적 보호가 뒤따르지 않는 구조가 돌봄 공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그렇다면 생활동반자법은 무엇일까.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공동생활을 하는 동반자에게 의료 결정권, 돌봄 참여, 주거 유지 등 기본적인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다. 보고서는 생활동반자법을 단순한 가족 형태 확장이 아니라, 초고령사회에서 증가하는 1인 고령자 가구의 돌봄 공백을 보완하는 현실적 장치로 평가했다. 다만 법 하나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의료·돌봄·주거·장례 등 일상과 직결된 영역에서 관련 법 개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의료 영역에서는 환자의 수술 동의와 치료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보호자 범위를 확대해, 생활동반자 등 비혈연 관계에도 의료 결정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가족돌봄휴가 적용 대상을 돌봄을 수행하는 비혈연 관계까지 확대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장기요양 영역에서는 가족요양비와 돌봄 휴가 적용 범위를 비혈연 돌봄 제공자까지 넓히는 방향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주거권 문제 역시 중요한 쟁점이다. 현행 제도에서는 임차인 사망 시 사실혼 배우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임차권 승계가 인정되는데, 보고서는 함께 생활해 온 동거인에게도 주거를 유지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장례 절차에서도 실제로 고인을 돌봐온 사람이 법적 연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배제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활동반자에게 장례 결정과 애도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쟁점은 ‘가족’이 아니라 ‘돌봄’
제도 필요성에 비해 입법은 여전히 지연되고 있다. 생활동반자법은 제19대 국회에서 관련 입법 시도가 처음 이뤄졌지만, 사회적 합의 부족 등으로 발의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후 제21대 국회에 들어서 2023년 처음으로 법안이 공식 발의됐으나, 본격적인 입법 단계로 이어지지 못한 채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현재 국회에는 용혜인 의원이 2025년 9월 대표발의한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이 계류 중이다.
입법 지연의 배경에는 제도 설계에 대한 쟁점이 자리한다. 생활동반자 관계를 혼인 제도의 보완으로 볼 것인지, 혼인과 병렬적인 독립 제도로 설정할 것인지에 따라 상속, 재산권, 부양의무 등 기존 법체계와의 충돌 가능성이 제기된다. 또한 비혈연 돌봄을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기존 가족 질서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일부 종교계에서는 이 법안이 동성혼을 우회적으로 허용하는 제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생활동반자법 논의의 핵심은 ‘누가 가족인가’보다 ‘실제로 돌보는 사람은 누구인가’에 있다. 1인 고령자 가구가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비혈연 돌봄 관계를 제도 안으로 편입할 것인지 여부는 향후 돌봄 정책의 방향을 가를 중요한 변수로 평가된다.
보고서는 사회 인식 변화에도 주목한다. 혈연과 혼인 중심의 가족 개념을 넘어 실제로 함께 생활하고 돌보는 관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로 나타났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에 따라 연구자들은 법안의 일괄 처리 여부를 둘러싼 논쟁보다, 의료 결정권과 돌봄휴가, 장례권, 임차권 승계 등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영역부터 단계적으로 제도화하는 접근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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