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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할 곳 없는 노후 공포 “가족 없어도 믿고 맡길 수 있어야”

입력 2025-08-05 08:00수정 2025-08-05 08:23

日 ‘전국고령자등종신서포트사업자협회’ 구로사와 시즈노 위원장 인터뷰

▲구로사와 시즈노 위원장.(전국고령자등종신서포트사업자협회 제공)
▲구로사와 시즈노 위원장.(전국고령자등종신서포트사업자협회 제공)

1인가구가 급증하고 있는 일본에서 ‘삶의 마지막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는 점점 더 절실한 화두가 되고 있다. 보호자가 없는 고령자, 개호필요등급(要介護認定)을 받지 못해 공공요양시설 입소조차 어려운 독거노인의 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인지기능 저하와 함께 이들의 재산과 신상 관리가 사실상 공백으로 남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일본에서는 주목할 만한 민간 주도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바로 ‘전국고령자등종신서포트사업자협회(全国高齢者等終身サポート事業者協会, 이하 협회)’라는 긴 이름의 단체다. 이들은 출범 준비를 마치고 오는 11월 26일 공식 창립 기념 포럼을 앞두고 있다.

이 단체는 일본 전역에서 ‘종신서포트(지원)’이라 불리는 민간 신탁·보증 서비스를 제공해 온 주요 사업자들이 모여 만든 최초의 업계 단체로, 지난해 발표된 후생노동성의 가이드라인을 기초로 하여 자율적인 인증 제도와 서비스 기준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협회의 대표이자 행정서사인 구로사와 시즈노(黒澤史津乃) 위원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협회의 설립 취지와 일본 사회가 직면한 현실, 그리고 향후 제도적 방향성에 대해 물었다.


“일 종신지원 분야, 역사 길지만 무법지대 같은 상황”

“일본은 오랫동안 모든 시스템이 ‘가족’을 전제로 짜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가족이 없는 고령자, 자녀와 관계가 단절된 고령자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들은 치매에 걸리거나 사망하면 누군가에게 맡기기도 어렵고, 맡아줄 사람도 없습니다. 이제는 개인 중심의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구로사와 위원장은 “고령자 등 종신지원 사업은, 이러한 개인 중심 사회로의 이행에 필요한 제도적 기반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이 사업은 건강할 때부터 본인의 의사에 따라 의료, 요양, 재산관리, 사망 후 절차 등 다양한 영역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민간 조직’에 포괄적 위임을 하는 구조다. 그는 “사회적 고립이나 가족 갈등으로 자신의 인생 설계를 주체적으로 하지 못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사전 대책”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는 △입원이나 시설 입소 시 필요한 신원보증, △사망 이후의 장례, 납골, 행정처리 등 사후 사무, △일상생활에서의 금전 관리 및 의료·복지 관련 의사결정 등을 포함한다. 병원 수속, 퇴원 후 돌봄환경 조성, 응급연락 체계, 케어 매니저와의 조정, 사망 후 장례 등 삶 전반을 아우르는 일련의 사안을 사전에 계약해 민간사업자에게 맡기는 구조다.

“예를 들어, 의지할 가족이 없는 분이 건강할 때 종신지원사업자와 계약을 체결했다고 가정해보죠. 어느 날 갑자기 자택에서 뇌경색으로 쓰러지게 되면, 병원 입원 수속은 사업자가 처리하게 됩니다. 생명은 건졌지만 의식이 불분명한 상태로, 이전처럼 생활하긴 어렵습니다. 이때 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로 입소해야 하고, 보유하던 집을 매각해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죠. 이러한 상황을 대비해 사전에 임의후견계약을 맺어두면, 가정법원 심판을 거쳐 선임된 후견인이 대신 부동산을 매각하고 요양시설 입소 계약을 체결합니다. 입소 시 요구되는 신원보증인은 종신지원사업자가 맡습니다. 이후 임종이 가까워졌을 때는 생전에 작성한 ‘연명의료 거부 의사표시서’가 의료진에게 전달되고, 시설 내 임종 케어를 통해 고인은 편안하게 삶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무연고 고령자 등을 지원하는 하나의 방안인 ‘고령자 등 종신지원사업’은 일본에서 처음 관련 사업자가 활동을 시작한 이후 벌써 3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다. 최근에는 이 사업자 수가 전국적으로 400곳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이를 제대로 감독하는 행정 관청도 없었고, 법적인 규제도 존재하지 않은 채 개별 사업자에만 의존하는 구조가 지속돼 왔다.

그 결과, 업계 전체가 통합된 기준이나 자율규제 없이 운영되며 사회적 신뢰 형성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실제로 고령자들의 예탁금을 유용해 다른 사업을 벌이다 파산하는 등의 피해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협회는 이런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조직됐으며, 인증제도 도입, 서비스 기준 정립, 업계 자율규제 구조 마련 등을 통해 국민들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고자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종신지원 사업은 장기적 계약을 전제로 하며 사후 절차까지 포함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상품 또는 단기 서비스 계약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예컨대, 계약 후 수십 년 뒤에야 이행되는 서비스에 대해 계약 시점에 선불로 비용을 납부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본인이 사후 이행 여부를 확인할 수 없으며, 계약 체결 당시의 건강 악화나 판단력 저하 등의 이유로 계약 능력 유무가 후일 법적 쟁점이 될 수 있는 등, 매우 복잡한 특성을 가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 사업에 대해서는 정부 내에서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아 ‘무연고 문제에 무연고로 대응한다’라는 비판이 있었을 정도입니다.”

▲일본 전국고령자등종신서포트사업자협회 준비위원회 회의 모습.(전국고령자등종신서포트사업자협회 제공)
▲일본 전국고령자등종신서포트사업자협회 준비위원회 회의 모습.(전국고령자등종신서포트사업자협회 제공)

“수백만 명 가족 없이 노년 맞아… 기존 체계 대응 어려워”

협회의 출범은 일본 정부의 제도 정비 흐름과도 맞물려 있다. 2024년 6월 11일, 일본 정부는 내각관방을 중심으로 총 9개 부처(내각부, 소비자청, 후생노동성, 법무성, 금융청 등)가 공동으로 참여한 ‘고령자 등 종신서포트사업자 가이드라인’을 공식 발표했다. 이는 민간이 주도해온 이 사업을 공적 제도로 연결하기 위한 사실상 첫 기준 제시로, ‘가족 없이도 안심할 수 있는 노후’를 국가 차원에서 보장하겠다는 이정표로 평가받고 있다.

구로사와 위원장은 “종신지원 사업의 특성상, 소비자 보호 및 사업자 관리 기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배경에서 마련된 것으로, 정부가 이토록 많은 부처를 참여시켜 민간업계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설명하고, “고령자의 자기결정권 보호와 자산 보전을 동시에 꾀하는 제도적 첫걸음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협회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한 인증제도와 윤리 기준, 교육 체계를 마련해 자율 규율의 모델을 제시할 예정이다.

“아프거나 치매에 걸렸을 때, 혹은 사망했을 때 가족이 당연히 모든 걸 대신해주는 사회였다면, 종신지원 사업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사회구조가 변화해 ‘가족이 당연히 해준다’는 전제가 통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상황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일본종합연구소의 추산에 따르면 2024년 현재, 자녀가 없는 고령자는 약 459만 명으로 전체 고령자의 12.7%에 해당한다. 이 수치는 2050년이 되면 1032만 명, 즉 전체의 26.5%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자녀와 배우자 모두가 없는 고령자는 371만 명(10.3%)에서 834만 명(21.4%)으로 증가할 전망이며, 삼촌·조카 등 3촌 이내의 친족조차 없는 고령자도 286만 명(8%)에서 448만 명(11%)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긴급시에 금전적 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가족조차 없다’는 고령자는 이미 79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다.

그는 “일본의 복지제도와 의료 시스템은 아직도 가족이 대신 결정을 내려줄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의지할 가족이 없는 고령자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은, 기존 체계로는 더 이상 대응이 어렵다는 경고이기도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재산의 많고 적음과 무관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자신의 노후에 의지할 가족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모두 이 서비스를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이 서비스는 상속 자산이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누구나 고립 상태에 놓일 수 있기 때문에, 재산 규모가 아니라 '의지할 가족의 유무'가 핵심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혼자서도 괜찮다”는 사회 위한 시작점… 한국은 이제 첫발

한편, 일본의 민간 기반 종신지원이 본격적인 제도 개선을 통해 본격 가동을 향하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은 이제 막 유사한 제도화를 논의하는 단계다.

지난달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치매 등으로 재산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고령자를 위해 공공기관이 자산을 관리하는 ‘공공신탁 제도’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이 제도는 현재 국민연금공단 등의 공공기관이 ‘공적 재산 집사’ 역할을 맡는 형태로 논의되고 있으며, 고령자가 건강할 때 생계·의료·상속계획 등을 설계해 신탁 형태로 관리하고, 이후 치매 발병 등 판단능력 저하가 있을 때에도 안정적인 자산 운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치매 노인이 보유한 자산은 154조 원에 달하며, 2050년에는 488조 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치매 머니’가 가족 간 갈등, 소비 위축, 금융사기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공공신탁은 노후의 자기결정권을 지키는 중요한 제도적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밖에도 일부 로펌 등에서 의료기관, 사회복지기관 등을 연계한 ‘종신지원’과 유사한 형태의 상품을 선보이고 있지만, 제도적 미비로 인해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평가가 나온다.

“혼자 사는 고령자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도, 의지할 가족이 없는 사람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종신지원은 그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구로사와 위원장의 이 말은 일본과 한국 모두가 고민해야 할 과제를 던진다.

흔히 국내 베이비부머의 노후 대책을 ‘집 한채’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평생을 일해 마련한 집이 전 재산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지할 가족이 없다면 다가오는 노후는 공포가 된다. 집은 노리는 이들의 먹이감이 될 수 있고, 가족 없이 인지능력까지 떨어지면 재산을 지키거나, 존엄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게 된다. 공공의 영역만으로 이들을 도우려는 정부의 계획은 많은 이들의 의구심을 낳고 있다. ‘누구에게 삶을 맡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에서 일본의 전국고령자등종신서포트사업자협회의 활동은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구로사와 시즈노 위원장은?

구로사와 시즈노(黒澤史津乃) 위원장은 일본 OAG 웰빙R 대표이사이자, 전국고령자등종신서포트사업자협회 대표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금융기관에서 애널리스트로 근무한 후 가족에 의존하지 않는 노후 설계를 지원하는 ‘종신지원’ 분야에 뛰어들었다. 2007년 행정서사 자격을 취득하고, 2019년에는 소비생활 상담 관련 국가자격도 추가로 취득했다. 저서로는 ‘가족에 의존하지 않는 단독 고령자의 생애정리’가 있으며, 현재 내각관방 및 후생노동성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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