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컨 쇼핑에서 앱·공구·리뷰 쇼핑으로, 달라진 장바구니의 의미

TV홈쇼핑은 시니어에게 익숙한 쇼핑 방식이다. 쇼호스트가 상품을 설명하고, 화면 아래에는 전화번호가 뜬다. “지금 주문하시면 하나 더”라는 말에 마음이 움직이고, 상담원과 통화하며 색상과 수량을 확인한다. 한때 이 장면은 ‘중장년층 쇼핑’을 대표하는 이미지였다.
그런데 요즘은 달라졌다. TV홈쇼핑을 보던 60대 A씨는 리모컨 대신 휴대폰을 먼저 든다. 방송에 나온 건강식품을 바로 주문하지 않고 쿠팡과 네이버에서 가격을 비교한다. 리뷰가 충분한지, 배송은 언제 오는지, 같은 구성으로 더 싼 곳은 없는지 확인한다. 친구가 카카오톡 단체방에 보낸 구매 링크도 그냥 넘기지 않는다. 알리나 테무와 같은 중국 커머스 앱도 사용한다. TV는 여전히 켜져 있지만, 장바구니는 이미 여러 화면을 오가고 있다.
이처럼 시니어의 쇼핑이 달라지고 있다. TV홈쇼핑이라는 익숙한 창구 위에 쿠팡, 네이버, 홈쇼핑 앱, 라이브커머스, 카카오톡, 밴드, 유튜브 링크가 겹쳐지고 있다.

TV 밖으로 나간 홈쇼핑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2024년 발간한 ‘국내 홈쇼핑사업자의 탈TV 전략과 시사점’은 이 변화를 산업 쪽에서 보여준다. 국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2023년 기준 228조 8000억 원 규모로 커졌고, 모바일쇼핑 비중은 2021년 70%를 넘어선 뒤 70%대를 유지하고 있다. 홈쇼핑사업자들도 TV 밖으로 나가고 있다.
실제로 2017년 홈쇼핑사업자의 방송사업매출과 기타사업매출 비중은 63.6 대 36.4였지만, 2023년에는 50.9 대 49.1로 좁혀졌다. 홈쇼핑이라는 이름은 그대로지만, 판매 경로는 이미 TV와 모바일 사이를 오간다. CJ온스타일, GS샵, 롯데홈쇼핑, 현대홈쇼핑 등 주요 홈쇼핑사는 모바일 앱, 라이브커머스, 숏폼, 유튜브 채널을 강화하고 있다. TV로 상품을 설명하고 전화로 주문을 받던 산업이 앱 안에서 실시간 채팅과 리뷰, 쿠폰, 개인 맞춤 추천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바뀌는 셈이다.

소비자 쪽에서도 변화는 뚜렷하다. 와이즈앱·리테일이 올해 3월 발표한 카드 결제 추정 자료에 따르면, 2025년 하반기 7~12월 50대 이상이 가장 많은 금액을 결제한 리테일 브랜드는 쿠팡이었다. 쿠팡의 결제추정금액을 100으로 볼 때 네이버·네이버페이는 49.2, 농협하나로마트는 34.3, 이마트는 25.9, 롯데백화점은 23.9다. 이 조사는 카드 결제금액을 표본 조사 결과라 현금, 계좌이체, 상품권 결제까지 반영한 실제 매출은 아니다. 그럼에도 50대 이상 소비자의 장바구니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는 흐름은 읽을 수 있다. 생필품과 식품, 반복 구매 품목은 이미 온라인 플랫폼으로 상당 부분 이동했다.

한 손엔 리모컨, 다른 손엔 쿠팡과 네이버
특히 50대는 이 변화의 중간에 서 있다. CJ메조미디어의 ‘2026 디지털 라이프스타일 리포트’는 50대의 온라인쇼핑 주 1회 이상 이용률을 49%로 제시했다. 50대의 월평균 온라인쇼핑 지출액은 35만 원이었고, 온라인쇼핑 때 주로 쓰는 기기는 모바일 73%, PC 27%였다.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쇼핑몰도 하나가 아니었다. 오픈마켓이 64%, 포털사이트가 57%, 종합몰이 28%, 전문몰이 22%, 해외직구몰과 홈쇼핑몰이 각각 14%, SNS몰이 11%로 나타났다. 이 수치를 보면 SNS몰이나 공동구매가 50대 쇼핑의 중심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중심은 여전히 쿠팡 같은 오픈마켓과 네이버 같은 포털형 쇼핑이다.
다만 SNS몰 11%라는 숫자는 무시할 수 없다. 과거에는 TV, 마트, 백화점처럼 분명한 쇼핑 공간에 들어가야 물건을 샀다면, 이제는 카카오톡 단체방의 링크, 밴드 게시글, 유튜브 영상 아래의 구매처, 인스타그램 광고처럼 쇼핑이 아닌 공간에서 물건을 발견한다. 공동구매와 SNS 쇼핑은 아직 주류가 아니라 보조 경로에 가깝지만, 물건을 처음 만나는 입구가 넓어진 것은 분명하다.
이 변화는 단순히 기술을 잘 쓰게 됐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니어가 물건을 믿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TV홈쇼핑의 신뢰는 쇼호스트, 방송사, 반복 설명, 전화 상담에서 나왔다. 지금 온라인쇼핑의 신뢰는 배송 속도, 리뷰 수, 별점, 가격 비교, 간편결제, 지인의 추천, 운영자의 설명에서 나온다. 시니어들 또한 과거에는 “방송에 나왔으니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리뷰가 많고 배송이 빠르니 괜찮겠다”고 판단한다.
물론 세대 안의 차이는 크다. 자료로 분명히 확인되는 변화는 우선 50대에서 두드러진다. 일부 활동성 높은 60대도 모바일쇼핑과 라이브커머스, SNS 링크 소비에 합류하고 있지만, 70대 이상은 여전히 전화주문, 오프라인 매장, 가족의 도움에 의존하는 비중이 크다. 같은 시니어라도 누군가는 쿠팡 로켓배송을 일상적으로 쓰고, 누군가는 결제 버튼 하나를 누르기 전에도 자녀에게 확인 전화를 건다. 그래서 ‘시니어도 이제 다 온라인으로 산다’는 말은 과장이다. 대신 ‘시니어 쇼핑의 입구가 넓어졌다’는 말은 가능하다.
트렌드 미디어 캐릿이 올해 2월 소개한 ‘도파민 시니어’ 흐름도 이 변화와 맞닿아 있다. 캐릿은 50대가 더 이상 디지털 소비에서 밀려난 세대만은 아니라고 봤다. 이들은 젊은 시절 PC통신, 홈쇼핑, 대형마트, 백화점, 인터넷 쇼핑의 확산을 차례로 겪었다. 지금의 앱 쇼핑과 SNS 링크도 전혀 낯선 문명이라기보다, 이미 지나온 소비 경험 위에 새로 얹힌 방식에 가깝다.
시니어와 자녀세대, 링크로 함께 쇼핑한다
재미있는 것은 자녀 세대의 역할이다. 젊은 세대가 부모에게 온라인쇼핑을 가르치는 방식은 과거와 달라졌다. 예전에는 “이 앱을 깔아야 해” “여기를 눌러야 해”처럼 기능을 알려줬다. 지금은 “이거 엄마한테 어울릴 것 같아”라며 링크를 보낸다. 부모는 그 링크를 통해 새로운 브랜드를 알고, 팝업스토어를 알며, 공동구매 상품을 접한다. 소비 교육이 사용법 설명에서 취향 공유로 바뀐 셈이다.
하지만 새로운 쇼핑 동선에는 새로운 위험도 따라온다. SNS 공구와 링크 쇼핑은 편하지만 판매자 정보가 불분명한 경우도 있다. 카카오톡이나 밴드에서 지인이 보낸 링크라고 해서 모두 안전한 것은 아니다. 특히 공동구매에서 자주 보이는 “오늘만 이 가격” “마감 임박” “후기 폭발” 같은 문구는 TV홈쇼핑의 한정 판매보다 더 빠르게 소비자의 결정을 밀어붙인다. 시니어가 온라인쇼핑에 익숙해질수록, 사기와 과장 광고를 구별하는 능력도 함께 필요해진다.
그러니 자녀 세대가 해야 할 일은 부모의 소비를 무조건 말리는 것이 아니다. “엄마, 그런 건 사지 마”라는 말은 대화를 끊는다. 대신 “같이 가격을 비교해보자” “판매자 정보를 확인해보자” “리뷰가 너무 비슷하면 조심하자”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 시니어에게 필요한 것도 무조건 새 앱을 따라가는 일이 아니다. 출처를 확인하고, 결제 방식을 살피고, 충동구매를 잠시 멈추는 자기만의 기준을 갖는 일이다.
시니어의 쇼핑은 TV홈쇼핑을 떠난 것이 아니다. TV홈쇼핑 옆에 쿠팡이 켜지고, 네이버 가격 비교가 열리고, 카카오톡 링크와 밴드 공구가 붙은 것이다. 리모컨으로 시작한 쇼핑은 이제 손안의 링크로 이어진다. 달라진 것은 물건을 사는 장소만이 아니다. 믿고 고르고 결정하는 방식, 그 자체가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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