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한마디]

세상을 살다 보면 눈에 보이는 현상만 가지고 다른 사람이나 사건을 성급하게 판단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동양의 고전 ‘여씨춘추(呂氏春秋)’는 우리에게 ‘견자비전(見者非全)’이라는 엄중한 경고를 남겼다. 임수(任數) 편에 나오는 고사성어다. “보는 자가 전체를 다 보는 것은 아니다”라는 뜻이다. 즉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늘 파편적이며, 그 이면의 본질은 안개 속에 가려져 있을 때가 많다는 의미다.
이 가르침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일화가 공자와 그가 가장 아끼는 제자 안회의 ‘밥 한 움큼’ 이야기다.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곤경에 처해 이레 동안 굶주리던 시절, 안회가 어렵게 쌀을 구해 밥을 지었다. 밥이 다 익어갈 즈음, 공자는 안회가 솥뚜껑을 열고 밥을 한 움큼 집어 먹는 모습을 멀리서 보게 됐다. 평소 청렴함의 상징이었던 제자 안회가 스승보다 먼저 음식을 입에 대는 것을 본 공자는 깊은 실망감에 빠졌다.
공자는 모르는 척 안회를 불러 제사를 지내자고 제안하며 그를 시험했다. 그때 안회는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밥을 짓던 중 솥 안으로 그을음과 흙먼지가 떨어졌는데, 버리기엔 아깝고 스승님께 드릴 수는 없어 자신이 그 부분만 떠먹었다는 것이다. 그제야 진실을 알게 된 공자는 탄식하며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믿는 것은 눈이지만 눈도 믿을 것이 못 되고, 의지하는 것은 마음이지만 마음 또한 의지하기에 부족하구나. 사람을 아는 것이란 본래 쉬운 일이 아니니라.” 성인인 공자조차 눈앞의 현상에 속아 제자를 오해했다. 하물며 평범한 우리가 일상에서 저지르는 오판은 얼마나 많겠는가. 이러한 지혜는 내 선친이 남기신 삶의 궤적과도 맞닿아 있다.
아버지는 6.25전쟁 때 전장에서 다리를 잃고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았다. 아버지의 애창곡은 배호의 ‘안개 낀 장충단공원’이었다. 29세에 요절한 그가 절규하듯 불렀다. 작사가가 역사를 담아 의도적으로 작사한 곡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역사의 비극이 서린 공간의 이름이 노래의 정서를 한층 더 깊고 처연하게 만들었다. 겉보기에 그 노래는 연인과의 이별을 슬퍼하는 흔한 대중가요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버지가 그 노래를 부를 때의 장충단은 사적인 이별의 장소가 아니었다. 그곳은 을미사변(명성황후시해사건) 때 순국한 장졸들을 기리기 위해 고종황제가 세운 대한제국의 국립현충원 ‘장충단(奬忠壇)’이었고, 일제에 의해 강제로 공원으로 격하된 비극의 현장이기도 했다.
1991년 아버지는 그곳에서 상이군경들을 모아놓고 국가의 의무를 역설했다. 그때 들려온 ‘안개 낀 장충단공원’은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도 잊힌 영령들의 넋을 달래는 진혼곡이었으며, 부당한 처우에 항거하는 전사들의 외침이었다. 노래 가사 중 “지난날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 뚜렷이 남은 이 글씨”는 아버지에게 국가유공자들의 명예이자 증명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유행가였을 노래가 아버지에게는 역사의 한(恨)을 풀어내는 투쟁의 기록이었던 셈이다. 이 역시 보이는 현상 너머의 본질을 읽지 못하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손주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인성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가르쳤다. 타인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거나 화가 치밀 때, 가장 먼저 ‘내가 보는 게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야 한다. 아버지는 “첫째, 판단에 앞서 질문하라. 안회가 밥을 먹는 모습만 보고 꾸짖었다면 공자는 평생 제자를 오해했을 것이다. 즉각적인 심판 대신 ‘왜 그랬니?’라고 묻는 여유가 오해를 이해로 바꾼다”라고 일러줬다. 이어 “반드시 상대의 사정을 유추하라. ‘여씨춘추’ 필기(必己) 편에선 ‘자신을 살펴 남을 알라’고 했다. 사람 사는 이치는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내가 겪은 아픔과 고충을 거울삼아 상대가 처한 안개 속의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는 통찰이 필요하다”라고 역설했다. 나아가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라. 공자조차 눈과 마음을 믿을 수 없다며 고백했듯, 내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겸허함을 갖춰야 한다. 그것이 타인에 대한 너그러움으로 이어지는 인성의 토대가 된다”라고 가르쳤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라고 강조한 아버지는 “세상은 복잡하고 본질은 늘 가려져 있다. 안개 낀 장충단공원이 누군가에게는 공원이고 누군가에게는 제단이듯, 사람의 마음 또한 보이는 행동 그 이상의 사연을 품고 있다”며 “부디 겉으로 드러난 단편적인 현상에 매몰되지 마라”라고 당부했다. 사연을 알고 난 뒤부터 저 노래는 내 애창곡이 됐다. 가사를 음미해가며 몰입해 부르고 나면 가슴속 응어리가 빠져나가는 듯하다. 살다 보면 이해되지 않는 일도 수없이 겪는다. 그때마다 주문처럼 저 노래를 부르면 대부분 이해된다.
눈을 감고 마음의 눈으로 이면을 살피는 사람, 그리하여 함부로 남을 단죄하지 않는 단단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이제 할아버지가 된 내가 손주에게 물려주고 싶은 가장 귀한 유산이다. 성인 공자도 어려워한 일이다. 손주들에게 가르쳐 물려주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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