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한마디]

서른두 살 되던 해에 집을 샀다. 은행에 다닐 때였다. 출근하는 내게 어머니가 따라 나오며 “어제 집주인이 자기들이 들어와 살겠다며 집을 비워달라고 했다”고 말씀하셨다. 추진하던 사업이 시작도 하기 전에 실패해 기운을 잃은 아버지가 나설 처지가 아니었다.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부도난 건설사 거래처의 사후 처리 회의 도중 갑자기 지점장이 내게 집이 있냐고 물었다. 없다고 하자, 집을 사라고 했다. 미분양 빌라를 한 채씩 인수해 회사를 도와주자는 얘기였다. 조직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 딱히 거절할 명분이 없어 그러겠다 하고 그 자리에서 계약했다. 대금은 전액 은행 대출로 처리했다.
사흘 만에 새집으로 이사했다. 이사를 마치고 아버지는 유난히 기뻐했다. 아버지도 같은 나이에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해라 기억이 또렷하다. 아버지는 그때를 떠올리며 “그날 하루 만에 다 끝냈다. 땅 구하고, 자재 들이고, 목수도 구하고, 집 개념도도 다 그렸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동안 생각은 오래 했겠지만”이라고 단서를 달며 “같은 나이인 네가 똑같이 하루 만에 집을 마련한 게 그래서 신기하기까지 하다”고 이유를 덧붙였다.
아버지는 이사 오기 전 살던 집 앞 오동나무에 있던 까치집을 기억하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그 까치집에 올라가 본 것처럼 자세하게 설명했다. 까치가 둥지를 트는 데 드는 나뭇가지는 2000개 정도다. 그 많은 나뭇가지를 하나씩 부리로 물어다 짓는다. 떨어진 걸 주워 오기도 하고, 생가지를 잘라 이용하기도 한다. 아버지는 “우리 집이 높아 까치집이 눈높이에 있어 마당에 앉아서도 다 보인다. 관찰해보니 옆집 나뭇가지를 슬쩍하기도 하고, 지난번 둥지의 나뭇가지를 재활용하기도 한다”며 까치가 지혜롭다고도 했다. “자세히 보면 집 지을 나뭇가지들이 어디 있는지 평소에 봐두었던 것처럼 금세 물어와 하루 만에 거의 짓는다”며 감탄했다.
설명이 길었지만 모두 처음 듣는 얘기였다. 겉은 얼기설기 엮은 듯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놀라울 만큼 치밀하다. 둥우리 안쪽은 진흙으로 기초를 다지고, 그 위에 부드러운 털 종류를 깔아 알과 새끼들이 불편함 없게 만든다. 둥지는 나뭇가지를 겹쳐 쌓을수록 서로 얽혀 들어가 단단해지는 재밍(Jamming) 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잘 부서지지 않는다. 사람들 집짓기보다 더 섬세하다. 나뭇가지로 촘촘하게 잘 엮어 구렁이나 족제비, 담비 같은 짐승이 뚫고 들어가기 어려울 뿐 아니라 비가 새지 않는다.
까치는 천적의 침입을 막는 높은 곳, 바람에 잘 흔들리지 않는 위치에 자리 잡는다. 아버지는 “‘까치집이 높이 있으면 그해는 덥고 풍년 들고, 낮게 지으면 태풍이 온다’는 말이 있다”라며 “보통 2~3월에 집을 짓는 까치는 쓰던 집은 잘 쓰지 않고 바람의 강도를 보고 높낮이를 조정해서 집을 새로 짓는다”고 설명을 보탰다. 겨울을 나면서 먹이를 구할 수 있어야 하니 사방으로 뻗은 높은 나뭇가지에 안전하게 자리를 잡고 크게 짓는다. 봄에는 새끼를 낳아 같이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둥우리가 하늘로 열려 있으면 그해는 가문다. 비가 오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거꾸로 장마가 길어질 해에는 둥우리의 입이 땅으로 향한다. 비가 많이 올 것을 대비해서다. 특히 아버지는 “둥지 둘레에 수직으로 세운 나뭇가지는 빗물을 빨리 흘려보내는 홈통 역할을 한다”며 비가 내려도 둥지가 덜 젖고 잘 새지 않는 건 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설명을 마치며 언제나 그랬듯이 고사성어를 인용했다. 아버지는 까치 집짓기가 가르쳐준 교훈이라며 ‘일취월장(日就月將)’을 들었다. ‘나날이 나아가고, 다달이 발전한다’는 뜻이다. ‘시경(詩經)’ 경지(敬之)라는 시에 나온다. 원문은 “공경할지어다 공경할지어다/ 하늘의 밝으심이어/(중략) 나날이 나아가고 다달이 발전하여(日就月將)/ 배움에 광명으로 빛남이 있사오니/ 때때로 맡은 임무를 도와주시옵고/ 저의 밝은 덕행을 보아주시옵소서”다. ‘제가 비록 부족함이 있더라도 나날이 나아가고 다달이 발전하여, 하늘이 내게 맡긴 임무를 기꺼이 수행하겠다’는 뜻을 담은 시다.
아버지는 이렇게 덧붙였다. “비록 하루 만에 결정한 일이지만, 그 하루는 갑자기 온 게 아니다. 늘 생각을 쌓아두었기에 가능한 선택이다. 생각이 바른 향상심(向上心)이 삶을 반듯하게 만든다. 나아지지 않는 삶은 삶이 아니다.” 이어 “까치는 집을 지어야 할 때면 주저하지 않는다. 줄잡아도 천 번 넘게 하늘을 날아야 할 것”이라며 “작은 새도 그렇게 생각나면 곧장 행동에 옮긴다”고 강조했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더 안전한 자리, 더 나은 조건을 향해 움직이지 않으면 그것은 정체가 아니라 후퇴다. 집은 사치의 대상이 아니라 삶을 지키는 틀이고, 그 틀을 조금씩 더 단단하게 다져가는 과정이 곧 삶이다. 언젠가 손주들에게도 꼭 들려줘야 할 오래된, 그러나 가장 새로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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