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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데 눈이 무섭다”

입력 2025-10-27 07:00

[손주에게 한마디] 무엇보다 중요한 인성 교육

(챗GPT 생성 이미지.)
(챗GPT 생성 이미지.)


시골에서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칠 무렵의 일이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에는 볏단을 쌓아둔 볏가리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숨바꼭질하기에 더없이 좋은 놀이터였다. 쌀쌀한 어느 날, 친구들과 볏가리 속에 숨어 놀았다. 그때 누군가 불을 지폈다. 볏짚 안으로 퍼지는 따스한 기운이 반가웠다. 바람이 불자 작은 불길은 순식간에 볏가리 꼭대기로 치솟았다. 아이들은 우르르 밖으로 달아났다. 나도 정신없이 집으로 뛰어들어 뒷방 가마니 뒤에 숨었다. 하지만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밭에서 일하던 어른들이 불길을 목격하고 나서 도망치는 나를 보았다. 근처에 숨었던 친구들은 다 붙잡혔지만 집으로 달려간 것은 나뿐이었으므로, 불을 낸 아이로 결국 나를 지목했다.

마을 사람들이 전한 얘기를 들은 아버지가 머리를 쥐어박으며 “먼 데 눈이 더 무섭다”라고 했다. 주위에 가까이 있는 나와 이해나 친분 있는 사람의 감시와 평판보다 나와 이해관계 없는 사람들의 평가가 더 냉정하고 정확하다는 뜻이다. 보는 이가 없다고 생각한 순간이야말로 가장 쉽게 드러나는 것이 사람의 본모습이며, 그때의 모습은 의도와 관계없이 타인의 눈에 그대로 각인된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저 말이 자주 떠오른다. 사람의 시선이란 참으로 묘하다. 때로는 가까운 자리에서 보이지 않던 것이,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볼 때 오히려 선명하게 드러난다. 마을 어른들이 밭머리에서 내려다본 광경처럼 멀리서 바라보는 눈은 작은 거짓이나 핑계를 덮어주지 않는다.

아버지는 나를 꿇어앉히고 말씀을 길게 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쯤 다른 말씀을 하던 아버지가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고사성어를 인용했다. 그게 ‘이목지신(耳目之信)’이다. “귀로 들은 것과 눈으로 본 것을 사람들은 쉽게 믿는다”라는 뜻이다. 내가 아무리 변명해도 어른들의 눈에 비친 장면이 곧 사실이 되었듯이 말이다. 이 성어는 한비자(韓非子)의 외저설 좌상편(外儲說 左上篇)에 나온다. 원문은 “임금이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무조건 믿어버리면 신하에게 현혹될 수 있다”는 뜻으로 썼다. 현명한 임금은 개인적인 호오(好惡)나 친소(親疎)에 따라 귀와 눈이 전하는 정보에 휘둘리지 않고, 법과 제도라는 객관적 기준에 따라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는 말이다. 이 성어는 사사로운 정에 흔들리지 않고 사실과 법도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로 흔히 쓰인다.

아버지는 “사람들은 들은 것보다 본 것을, 말보다 눈앞의 행동을 더 신뢰한다. 그래서 자신을 단속하는 힘은 외부의 감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을 지켜내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라고 강조했다. 소문과 말, 눈앞의 현상에만 매달리면 진실을 놓치기 쉽다. 사람의 말에는 억지가 섞이기도 하고, 보이는 모습은 겉모습에 불과할 때가 많다. 더 멀리 보고, 더 깊이 생각하며, 자기만의 원칙과 기준을 세워야 한다. 아버지는 “먼 데서 내리는 눈발이 더 무서운 법이다. 눈앞의 사실에만 얽매이지 않고,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는 지혜를 갖춘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올곧은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거다”라며 그날 꾸중을 마쳤다.

그때의 경험은 오래도록 나를 단련시켰다. 한순간의 행동이 얼마나 무겁게 남는지, 그리고 그 행동이 어떤 인상을 남기는지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양심은 거창한 덕목이 아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도 자신을 지켜내는 작은 습관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배웠다. 돌이켜보면 인생의 갈림길마다 그날의 불길과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가까이 있는 이의 시선이 아니라 멀리서 바라보는 눈에도 언제나 떳떳할 수 있는가. 그것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물음이었다.

남의 시선을 두려워하라는 뜻만은 아니다. 타인의 눈길을 넘어, 결국 자신을 지켜보는 눈이 가장 엄정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 눈앞에 떳떳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화려한 말이나 꾸밈이 아니라 정직과 책임, 그리고 양심이라는 삶의 태도다. 양심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내적 기준’이다. 아버지는 훗날 “맹자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등을 양심의 근원으로 보았다”고 소개하며 “외부 감시가 없어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이다. 지능이나 재능은 훈련으로 얻을 수 있지만, 양심이 뿌리내리지 않으면 바른 인격과 지속적인 성장은 어렵다”고 했다. 이어 “어른이 된 뒤에 외적 권위가 없어도 자기 삶을 통제할 수 있게 해준다. 서로 믿고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라고 양심을 정의했다.

들판의 볏가리 불길은 오래전에 꺼졌지만,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내 안에서 타오른다. 그것은 지금도 내 삶의 방향을 잔잔히 비추고 있다. 이제 걷기를 막 시작한 손주들에게도 가장 먼저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인성이 양심이다. 생각만큼 쉽지는 않아도 가르치기를 포기해선 안 되는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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