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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 이상에게만 투자합니다” 통찰에 주목한 美 펀드사

입력 2025-07-25 11:06수정 2025-07-25 11:23

[이준호의 시니어 비즈니스 인사이드 ⑨]

팬데믹 이후 미국 경제는 수치상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회복의 속도와 방식은 계층과 세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2025년 상반기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4.1% 수준으로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전반적인 고용지표만 보면 회복 국면이지만, 65세 이상 고령층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여전히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청년층과 핵심 노동연령대(25~54세)의 복귀율이 반등한 것과는 대비된다.

여기에 금리 고공행진의 장기화, 인플레이션 압력의 지속, 부동산 시장의 둔화 등 복합적 경제 요인은 고령층의 은퇴 설계와 생활 안정성에도 균열을 초래하고 있다. 일찍 퇴직한 고령층이 다시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반대로 고령의 자산 보유자들은 경제 변동성에 더 민감하게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美 베이비붐 세대, 사회 중심에 서다

미국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자는 2025년 기준 약 18%를 차지하며, 베이비붐 세대의 전면 은퇴가 본격화되는 시점에 도달했다. 2030년이 되면 베이비붐 세대(1946년~1964년 출생자)가 모두 65세 이상이 되며, 미국 역사상 가장 인구가 많은 고령 세대가 사회의 중심에 서게 된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미국 사회는 고령세대를 더 이상 ‘퇴장하는 인구’로 보지 않는다. 이제 그들은 ‘재설계자(re-designer)’로 불린다. 퇴직은 멈춤이 아니라 전환이며, 노년기는 정체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역할과 소비, 삶의 방식을 창조하는 시기로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들 고령세대의 재진입 방식은 단순한 재취업이나 파트타임 노동을 넘어, 창업이라는 능동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으로 확장되고 있다. 과거에는 창업이 ‘청년의 특권’으로 여겨졌다면, 지금은 축적된 경험과 네트워크, 리스크에 대한 내성을 가진 고령자들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한 창업을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MIT와 미국 인구조사국이 공동 발표한 연구에서는 60세 창업자가 30대보다 약 3배 높은 성공률을 기록한 바 있다.

‘많은 나이’ 조건 내건 투자 회사

“나는 경험에 투자합니다.”

2024년, 실리콘밸리에서 한 투자자의 선언이 화제를 모았다. ‘나이든 창업자’를 외면해 온 기존 스타트업 투자 시장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그는, ‘브릴리언트 마인즈’라는 이름의 벤처 펀드를 설립하며 그 철학을 실천에 옮겼다.

브릴리언트 마인즈는 전 세계 최초로 ‘50세 이상 창업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전용 투자 펀드다. 창업자이자 운용자인 카테리나 스트로포니아티는 유럽계 벤처캐피털리스트 출신으로, 여성과 중·고령자에 대한 투자 사각지대에 대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 펀드를 설계했다. “사회가 실패 확률을 과소평가하는 층이 있다면, 오히려 거기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시장이 보지 못한 가능성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투자 접근으로 이어졌다.

스트로포니아티는 브릴리언트 마인즈를 통해 단순히 자금을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초기 창업 자금은 물론, 현역 전문가의 1:1 멘토링, 시니어 창업자 커뮤니티와의 연계, IR(투자유치 발표) 코칭 등 전방위 지원을 제공한다. 특히 기술 중심 산업과 감성 기반 소비 분야에서의 고령층 통찰력에 주목하며, 에이지테크와 B2C 서비스 전반을 주요 투자 범위로 삼고 있다.

경험 기반 혁신이 갖는 힘

펀드의 첫 번째 투자 사례는 51세의 여성 창업자 브리짓 존스가 세운 AI 기반 선물 추천 플랫폼 ‘투앤프롬(To&From)’이다. 이 플랫폼은 사용자의 취향과 관계 맥락을 AI가 학습해 최적의 선물을 제안하는 시스템으로, 전통적인 ‘선물’이라는 감성 소비 영역에 기술을 접목한 사례로 주목받았다. 존스는 20년 넘게 유통·마케팅 업계에 몸담아 온 전문가였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진짜 선물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창업에 나섰다. 그녀의 진정성 있는 문제의식과 풍부한 산업 경험은, 스트로포니아티로부터 첫 투자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두 번째 투자처는 기술 기반 창업이다. ‘키네시스 네트워크’는 AI 산업 확장으로 심화된 컴퓨팅 자원 부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유휴 자원을 공유하는 분산형 컴퓨팅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고령 공동창업자 두 명은 각각 전직 반도체 엔지니어와 분산 시스템 전문가로, 수십 년간의 기술 내공을 바탕으로 문제 해결에 나섰다. 브릴리언트 마인즈는 이 회사에 대한 투자 배경으로 “시장이 간과한 세대의 기술적 통찰과 끈기는 투자 안정성과 직결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경력과 네트워크, 전문성은 물론 실패 경험까지 자산화한 중장년은 단순한 ‘창업 초심자’가 아닌 ‘준비된 문제 해결자’로 재정의되고 있는 것이다. 브릴리언트 마인즈 펀드의 등장은 시니어 비즈니스의 판도를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고령 창업을 은퇴 후 취미나 생계형 대안이 아닌, ‘두 번째 커리어의 정점’으로 재조명하는 흐름이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험 기반 혁신이 가지는 깊이와 신뢰는 단순한 청년 중심 창업 생태계가 담지 못하는 새로운 가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중장년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살아본 사람’만이 쥐고 있는 통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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