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근로자 모두 동료 눈치에 휴가 못써, “역차별 막는 유연근무제 도입 필요”

고령화와 저출산이 교차하는 시대, 가족을 돌보며 생계를 이어가는 ‘가족돌봄 노동자’가 증가하고 있다. 이런 고민은 ‘고령화 선배’ 일본도 마찬가지. 일본에서는 고령의 부모를 간병하거나 돌봄을 위해 회사를 그만두는 개호퇴직(介護離職)이라는 단어가 사회적으로 통용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 상태다.
일본 내에서는 케어종사자(가족돌봄 노동자)를 위한 실태조사와 기업문화 개선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10일 日 컨설팅 기업인 PERSOL 그룹 산하 종합연구소는 ‘돌봄복지사에 관한 연구’ 발표를 통해 2035년 일본 내 가족돌봄 노동자 수를 약 1285만 명으로 추산했다. 이는 전체 취업자 7122만 명 가운데 6명 중 1명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들 중 보육 노동자는 844만 명, 간병 노동자는 420만 명, 육아와 간병을 동시에 수행하는 이중 돌봄 노동자는 21만2000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가족돌봄 동료 때문에 월 5.6시간 더 일해”
특히 장기요양 돌봄을 겸하는 노동자 수는 2022년 대비 20.4% 늘고, 이중 돌봄 노동자 수는 무려 33.8%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연령대별로는 남성의 경우 60대 이상, 여성의 경우 50대~70대 이상에서 돌봄 노동자가 가장 많이 증가할 전망이다. 이는 만혼, 만산, 노동시장 내 고령자 증가와 맞물려 나타나는 구조적 현상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 내 유연근무제 시스템은 일정 수준 도입돼 있지만, 실제 활용률은 평균 20.8%에 불과했다. 설문 응답자 중 약 80%의 가족돌봄 노동자가 제도가 있어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동료에게 부담을 주는 것에 대한 미안함’, ‘조직 내 특혜 인식에 대한 우려’ 등이 꼽혔다.
실제 돌봄 노동자의 40% 미만만이 자신의 업무 일부를 동료에게 위임했으며, 이로 인해 비돌봄 노동자들은 월 평균 5.6시간 더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속 업무를 수행하는 비돌봄 노동자의 약 43%는 불만을 갖고 있었으며, 이들 중 70%는 "기업이 적절한 지원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반대로 상사의 격려나 동정은 오히려 불만과 특혜 감정을 자극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유연근무제에 대해 모든 직원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정비된 기업일수록, 돌봄 노동자에 대한 ‘특별 대우’ 인식이 현저히 낮았다. 이는 제도의 전면적 보편화가 조직 내 갈등을 줄이는 효과가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내 가족돌봄 휴가 사용 2.4%에 불과”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도 가족돌봄은 더 이상 예외적 상황이 아니다. 특히 중장년층은 부모의 장기요양을 직접 책임지면서 퇴직이나 휴직을 택해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그러나 사정은 녹록치 않다. 통계청의 ‘2023년 가족돌봄 휴가제도-실적현황’을 살펴보면 조사대상 30만5680개 사업체 중 이 제도를 사용한 기업은 2.4%에 불과한 7195개뿐이다.
‘가족돌봄 등을 위한 근로시간 단축제도’ 통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35만1856개 사업체 중 ‘필요한 사람도 전혀 사용 불가능한 기업’은 전체의 24.3%인 8만5558개에 달했다. 근로시간 단축제도 사용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맘 편히 쓸 수 있는 환경은 아닐 것이라는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통계도 있다. ‘가족돌봄을 위한 근로시간 단축제도 사용에 따른 업무 공백 처리 방식’ 자료를 보면 응답 기업 중 41.4%가 “남은 인력끼리 나눠서 해결한다”고 답했다. 일본의 조사 사례처럼 한국 노동자들도 동료의 업무 과중에 대한 심적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성호 부연구위원은 ‘일·가정 양립 지원 제도의 도입, 인식 및 활용 격차에 관한 분석’을 통해 이 같은 정서적 억제 요인을 제도 실효성의 주요 장애 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가족돌봄을 위한 근로시간 단축제도가 존재하더라도, 제도 사용자가 동료에게 민폐를 끼친다고 인식하게 되는 조직문화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업무 공백이 구조적으로 보완되지 않고 남은 인력이 분담하는 상황에서는, 제도 사용자가 ‘특혜 대상’으로 비쳐지기 쉽고, 이는 사용자의 심리적 위축으로 이어져 실질적인 이용을 방해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일본의 '개호퇴직' 현상과 유사한 구조적 문제로 볼 수 있다.
초고령사회 진입 등 우리가 마주한 사회적 변화는 이제 누구나 가족을 돌보며 일하게 되는 시대에 진입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가족을 돌본다는 이유로 경력에서 배제되지 않고, 가족돌봄 근로자를 위해 역차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유연근무제 적극 도입 등 사회적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