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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노인 이민으로 피부양자 줄여야”... 인구 문제 대책 맞나?

기사입력 2024-06-07 15:48

조세재정연구원 보고서 현대판 고려장 논란… ‘노인 배척’ 비판 이어져

(어도비 스톡)
(어도비 스톡)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서 생산가능인구를 늘리는 방안 중 하나로 은퇴한 노인이 해외로 이주하는 은퇴 이민을 고려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아 논란이 됐다.

지난 2일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정기 간행물 ‘재정포럼’ 5월호에 실린 ‘생산가능인구 비중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정책 방향에 대한 제언’을 쓴 장우현 선임연구위원은 ‘은퇴 이민’을 생산가능인구를 늘리는 방안 중 하나로 언급했다.

하지만 이는 노인을 생산을 위한 도구로만 보고 삶의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 제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장우현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현재의 인구 문제를 ‘생산가능인구 비중 감소’라고 명확하게 정의해야 하며 “생산을 해서 경제 전체를 부양할 생산가능 인구가 줄어드는 반면 생산적이지 않은, 부양해야 할 고령층은 지나치게 많아지는 유지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 인구 문제의 핵심”이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이어 “여러 여건의 사전적 준비가 전제조건이지만, 노령층이 상대적으로 물가가 저렴하고 기후가 온화한 국가로 이주하여 은퇴 이민 차원으로 노후를 보낼 수 있다면 생산가능인구 비중을 양적으로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민을 통한 인구 유입 정책에서는 “노령층의 인구 유입은 정책 대상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생산인구 비중 감소 문제를 심화시킨다”면서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을 젊은 층을 경쟁하여 영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출산으로 인해 생산가능인구에 포함되는 청년을 늘릴 수 없으니 피부양 인구인 노인을 줄이는 방법을 ‘누락된 정책 분류 영역’으로 보고 검토해볼 수 있다는 해석이다.

(사진=조세재정연구원 재정포럼 보고서 갈무리)
(사진=조세재정연구원 재정포럼 보고서 갈무리)

이는 노인을 국민으로서 보호하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분리하는 정책이며 생산가능인구를 늘리는 데 효과적인 제안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자발적으로 은퇴 이민을 선택하는 것과 사회적으로 은퇴 이민을 장려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해외의 어느 나라도 자국민의 은퇴 이민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국가는 없다.

은퇴 이민은 근로 소득을 제외하고 본인이 소유한 자금이나 불로소득을 증빙해 정기적인 수동 소득으로 비자를 받아 이민하는 것을 말한다. 노후에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 만큼의 자산이 없다면 이민을 고려할 수도 없다. 게다가 은퇴 이민이 가능한 국가도 손에 꼽는다.

보고서에서 강조한 생산가능인구라는 수치적인 측면만을 고려해도 양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정책일지 알 수 없다. 극소수의 경제력이 풍부한 고령자들만이 이주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도 은퇴 이민은 고령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정책이다. ‘사전적 준비가 전제조건’이라고 했지만 고령자의 환경을 고려한 정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근거도 충분하지 않다.

이호선 한국노인상담센터장은 “사회적으로 생산성이 낮은 고령층을 궁극적으로 사회에서 발붙이지 못하도록 떨어트리는 양태를 ‘사회적 분리(유리) 이론’이라고 하는데, 이는 국민을 보호하는 정책이 아니라 사회를 넘어 국외로 분리하려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면서 “한국인이라는 국민적 특성, 고령자의 삶에 필요한 환경적 인프라를 고려하지 않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이 센터장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나이 들어 낯선 곳으로 이주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로 작용해 고령자의 기대수명을 줄일 수 있다”면서 “말이 통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고령자에게 가장 중요한 환경은 의료 시스템”이라고 짚었다.

노후에 고령자가 가장 많은 돈을 지출하는 부분이 의료비다. 실질적으로 우리나라만큼 건강보험제도를 포함해 의료 인프라가 높은 수준으로 형성된 나라는 많지 않다.

장 연구위원은 독일 노인의 폴란드 이민 사례나 태국 은퇴 이민을 예시로 들었지만 의료 환경을 생각하면 어느 곳도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

외국의 의료 서비스를 경제적 부담 없이 이용하려면 개인이 민간의료보험을 준비하거나 엄청난 비용의 의료비를 고스란히 지출해야 한다.

이마저도 고령자는 이미 유병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보험’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든다.

이 센터장은 “의료, 교통, 주거 환경, 전산 시스템 등 우리나라만큼 인프라가 잘 구축된 나라를 찾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시스템, 언어, 기후가 낯선 나라에서 의료적 지원 없이 적응하기란 고령자에게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노인을 ‘피부양인구’로만 바라보고 인구에서 비중을 줄이는 방법을 ‘정책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노인을 배척하는 일이 될 수 있기에 신중한 정책 제안과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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