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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이야기를 팔다 '퍼블리시티권'

기사입력 2022-05-24 09:28

(넷플릭스 공식 포스터)
(넷플릭스 공식 포스터)

“애나는 구찌 샌들과 셀린느 선글라스를 끼고 내 인생으로 들어왔다.” 넷플릭스가 지난 2월 공개한 ‘애나 만들기’(Inventing Anna)는 바로 글로벌 시청 순위 1위에 오르더니 2주 연속 가장 많이 시청한 작품에 올랐다. 이 이야기의 실존 인물로 세상에 알려진 1991년생 애나 소로킨(Anna Sorokin). 넷플릭스는 그녀와 ‘묘사 허락 계약’을 맺고 32만 달러(약 4억 원)를 지불했다.

내 이야기로 수익을 창출할 권리

최근 NFT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공인을 소재로 한 재창작물의 퍼블리시티권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예를 들면 좋아하는 연예인을 똑같이 그린 팬아트를 NFT로 판매해 수익을 내는 경우나 유명 웹툰 작가가 유명 연예인을 그대로 그려 웹툰 캐릭터로 활용하는 경우, 퍼블리시티권을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퍼블리시티권은 초상권과는 다른 개념이다. 초상권은 본인의 초상이 허가 없이 촬영되거나 공표되지 않을 권리를 말하고, 퍼블리시티권은 개인의 이름, 그 사람의 얼굴이나 모습이 담긴 그림이나 사진, 서명, 목소리 등을 통해 만들어진 재산적 가치를 제3자가 본인의 허락 없이는 이용할 수 없도록 하는 권리를 뜻한다. 개인의 인격이 녹아 있는 소재로 돈을 벌어들이는 경우 그 돈에 대한 권리가 본인에게도 있다는 의미다. 개인의 이야기를 콘텐츠 소재로 활용하는 경우, 종종 사실과 달라 명예가 훼손되었다며 법정 공방이 벌어지곤 한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는 각종 논란을 피하면서 독점으로 실제 이야기를 제공하기 위해 점차 퍼블리시티권 계약을 늘리고 있다.

뉴욕 상류층 홀린 이야기를 사다

‘애나 만들기’의 실존 인물 애나 소로킨은 ‘애나 델비’(Anna Delvey)라는 이름으로 뉴욕의 사교계에서 상속녀 행세를 했다. 그리고 뉴욕 상류층에게 사기를 치고 가짜 서류로 은행 대출을 받는 등 약 4년간 약 3억 원의 금전적 피해를 입혔다. 2013년 스물두 살에 불과했던 그녀는 어떻게 뉴욕 상류층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었을까?

애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넷플릭스에 독점으로 제공하고 드라마 제작에 협력하며 제작 기간에 다큐멘터리나 토크쇼 등에 출연하지 않기로 했다. 또 드라마 방영 후 3년간 넷플릭스의 허락 없이 자신의 경험을 공개적으로 소개할 수 없다. 책은 쓸 수 있지만 드라마 방영 후 1년 이내에는 출판이 불가하다. 대신 넷플릭스는 사실 왜곡으로 애나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애나 개인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어 수익을 낼 수 있는 권리를 애나로부터 약 4억 원에 양도받은 것이다. 애나를 경찰에 신고한 친구 레이첼 역시 ‘내 친구 애나’라는 이름으로 책을 냈고, 미국의 방송사 HBO가 레이첼의 이야기를 약 3억 8000만 원에 사들였다. 이를 ‘묘사 허락 계약’이라 하며, 퍼블리시티권을 보호하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쓰인다.

개인의 경제적 이익을 인정한다는 이 개념은 1953년 미국의 ‘헬렌’(Haelan) 사건 재판에서 처음 쓰였다. 어떤 개인의 인격권을 상업적으로 이용해 경제적 가치가 발생했을 때 이에 대한 개인의 권리 역시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취지다. 이후 여러 판례를 거치며 미국에서는 퍼블리시티권의 개념이 확립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95년쯤부터 판례를 통해 이 권리가 인정되기 시작했는데, 아직까지 법으로 이 권리를 보호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최근 BTS와 같은 한류 스타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이들의 퍼블리시티권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강해지자, 부정경쟁방지법의 일부 조항 개정을 통해 올해부터 경제적 가치를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우회적 방식으로 퍼블리시티권 보호에 다가서고 있다.

애나는 정말 4억을 벌었을까?

미국에서는 2001년 ‘샘의 아들법’(Son of Sam)이라는 법이 제정됐다. 스스로를 ‘샘의 아들’이라고 소개하며 1년간 기괴한 행동으로 여섯 명을 살해해 365년형을 선고받은 버코위츠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 돈을 벌고자 했던 출판사가 있었다. 이에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미국은 범죄자가 아닌 범죄피해자위원회로 그 수익을 귀속시키는 ‘샘의 아들법’을 제정했다. 애나는 자신의 이야기로 4억 원을 벌었지만 이 법의 첫 번째 사례가 되어 한 푼도 손에 쥘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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