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부터 된장과 간장을 직접 만들어 먹는다. 혼자 하는 건 아니다. 서울시 전통 장 만들기 프로그램을 신청한 사람들과 함께 만든다. 이른 봄 메주를 소금물에 띄우고 된장과 간장을 분리하는 장 가르기를 거친 후 잘 숙성된 된장과 간장을 가을에 나누는 것이다. 일 년 동안 정성을 들이면서 잘 숙성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일이다. 어디 장뿐인가. 우리의 전통 음식은 대개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전통 장 만들기 프로그램이 축소되었다. 하는 곳도 있고 취소된 곳도 있다. 나는 매년 전통 장 만들기 프로그램인 마을 장독대와 장 아카데미를 수료한 이력으로 2018년부터 서울시와 함께하는 마을 장독대와 아카데미에서 지역 담당 코디네이터, 보조강사로 참여했다.
이번에 참여한 지역은 동대문구다. ‘건강한 먹거리의 시작 전통 장 담그기. 이웃과 함께하는 동대문구 장독대’라는 슬로건을 걸었다. 슬로건이 말해주듯 장독대는 주민들을 위한 건강한 먹거리 행사다. 서울시 식품정책과에서 주최하고 바른먹거리 건강협동조합과 지역 보건소가 주관한다.
장 담그기를 해보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곰팡이가 핀 못난이 메주를 소금물에 둥둥 띄우고 몇 개월이 지나면 메주에서 나온 성분이 소금물에 스미면서 거뭇한 간장이 되고 메주만 건져 곱게 치대면 당장 먹어도 되는 된장이 된다. 이것을 다시 항아리에 넣고 꾹꾹 눌러준 뒤 다시마와 고추씨, 숯 등을 올리고 뚜껑을 덮어두면 가을에 잘 익은 된장이 된다.
메주를 건져낸 거뭇거뭇한 간장이 우리가 국이나 나물 간을 맞출 때 사용하는 국간장이다. 직접 장을 담가보면 시중에 판매하는 장맛과 확연히 다른 걸 알 수 있다. 오죽하면 그 집의 음식 맛은 장맛이 좌우한다고 할까.
사실 시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한 번도 장 걱정을 해본 적이 없다. 그저 시댁 장독대에 있는 커다란 장항아리에서 퍼 담기만 하면 되었다. 우리 전통 장이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줄도 모르고, 이렇게 귀한 줄도 모르고 홀대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귀한 줄 알게 되었다.
해마다 100명을 모아 북적이던 장 담그기는 올해 규모를 줄였다. 거리두기 실천으로 사람은 물론 항아리도 적당히 띄워놓았다. 예전처럼 얼굴을 맞대지 않고 마스크에 장갑을 끼고 장을 가르는 사람들. 널찍널찍 떨어져 장을 치대기에 여념이 없는 주부들의 정성이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거겠지. 장을 가르려고 팔을 걷어붙인 대한민국 엄마들 기세를 현장에서 보면 코로나가 오다가도 휙 등을 돌려 달아나는 것 같다.
현수막에 쓰인 글귀처럼 전통 장 담그기는 건강한 먹거리의 시작이다. 올해는 코로나의 영향으로 프로그램이 축소되어 알음알음 장 담그기 행사가 되었지만 25개 자치구의 북적이는 마당이 다시 열리길 바라는 마음이다. 마을 장독대 정보는 서울시 홈페이지에서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