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스에 안타까운 사건이 보도됐다. 우리나라 유학생이 그랜드캐니언으로 여행을 갔다가 실족해 병원에 실려 갔는데 병원비가 10억 원이나 나오고 국내에 오려면 2억 원의 비용이 더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라 고국으로 오지 못하고 있다는 사연이었다. 여행사는 가이드가 조심하라고 경고한 장소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책임을 미루고 있다는데 해결이 어떻게 날지 결과가 매우 궁금하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여행지에서는 가이드 안내에 잘 따라야 한다. 이번 사건으로 나도 어느 날의 기억이 떠올라 새삼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시 생각해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그 당시엔 정말 심각했었다. 그때 40여 년간 만나온 동창 7명은 홍콩으로 단체여행을 떠났다. 다들 경험했겠지만 여자 7명이 마음 맞춰 여행을 떠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도 어찌어찌 날짜를 맞춰 출국을 하게 됐다.
낯선 여행지에서는 가이드 역할이 참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운 없게도 아르바이트 날라리(?) 가이드를 만났다. 물론 가이드 입장에서는 다양한 여행객들을 인솔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도 있어서 그랬겠지만, 너무 자주 경고를 하면서 겁을 줬다. “홍콩에서는 여러분이 하는 영어로는 통하지 않는다. 길을 잃으면 찾아올 수 없다. 그러니 절대 자리를 이탈하지 말라”고 했다.
어쨌든 홍콩에서의 관광은 시작되었고, 여행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들은 신이 났다. 그리고 여행 셋째 날, 우리는 옵션 여행을 하지 않고 우리끼리 자유시간을 가졌다. 간단한 영어로 택시도 타고 침사추이 다운타운에서 아울렛 구경도 하고 망고 주스와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예쁜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건은 마지막 날 공항에서 벌어졌다. 가이드는 “비행기 타기 전까지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으니 유명한 홍콩 공항 쇼핑을 하고 안녕히 돌아가시라”면서 “혹시 시간이 좀 늦어도 승객이 한 명이라도 타지 않으면 이륙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홍콩 공항은 정말 크고 넓다. 우리는 각자 선물도 사고 쇼핑도 하러 다니다가 뿔뿔이 흩어졌다. 물론 비행기 타는 시간에 맞춰 탑승구 앞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초콜릿과 과자를 사려고 가게에 들어갔다가 친구들과 헤어졌지만 비행기 시간을 자주 체크하며 약속시간에 맞춰 지하 전동차를 타고 탑승구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탑승 시간이 촉박한데도 친구 3명이 오지 않았다. 비행기 탑승 시간 10분 전쯤 되니 승무원이 어서 비행기에 오르라며 재촉했다. 우리는 일행 3명이 아직 안 왔으니 잠시만 더 기다려 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당장 탑승하지 않으면 다른 손님들을 기다리게 할 수 없어서 그냥 떠나겠다고 했다. 그 순간 우리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우리끼리 먼저 타야 하는 게 옳은 건지, 탑승을 포기하고 기다리는 게 나은 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탑승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남겨진 친구들한테는 배신자가 된 듯한 느낌도 들고 그 친구들 걱정도 돼 인천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침울할 수밖에 없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비행기를 못 탄 친구들은 대한항공을 타고 돌아오게 되었다고 알려줬다. 그제야 우리는 안심하고 웃을 수 있었다. 우리는 저가 항공사 비행기로 왔는데 대한항공 비행기 온다니 더 잘됐다며 서로를 위로했다.
그 친구들은 비행기 값을 더 지급했을 텐데 말을 안 해준다. 쇼핑 때문에 비행기 탑승 시간을 놓쳤다는 사실이 창피하다면서. 어쨌든 실수가 있기는 했지만 여행은 무사히 마쳤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고민할 문제는 아니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시간은 잘 지켜야 한다는 교훈은 얻었다. 한 사람이라도 오지 않으면 비행기가 떠나지 않는다는 가이드의 말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가이드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우리가 잘못한 걸까. 지금도 우리는 모임에서 가끔 그날의 이야기를 하며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