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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 핫(嫌HOT·핫한 것을 혐오하는 것)’ 신드롬

기사입력 2018-02-14 17:43

필자가 사는 동네 후미진 곳에 일본식 선술집이 하나 생겼다. 도무지 장사가 될 것 같지 않은 상권에 자리 잡은 것이다. 안에 들어가 보니 4인용 테이블 2개에 주방과 바로 마주보고 앉는 1인용 의자 4개가 전부였다. 젊은 사장이 주방 일을 겸하고 있었다. 메뉴도 일식집에 가면 최하 3만 원 이상 줘야 하는 메뉴 대신 1만 원 대 메뉴가 주류이고 주인이 알아서 내 놓은 모듬회가 그날의 메인 메뉴로 2만원이었다. 동네 구석진 곳인데다. 외관도 허름해서 처음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몇 안 되는 손님들끼리 얼굴이 익다 보니 말도 섞는 재미가 있었다. 주로 혼자 오는 동네 젊은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주인에게 블로거 명함을 줬더니 인터넷에 소문 좀 내달라며 특별대우도 받았다. 그때 다른 손님들이 반대 의견을 냈다. 알려지고 나면 정작 동네 단골손님들이 밀려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우리끼리 속닥하게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과연 필자가 오랜만에 귀가 길에 들러 보니 자리가 없었다. 그날 만 그런 것도 아니고 빈자리가 있는 날은 행운이라도 잡은 것 같았다. 핫(HOT)한 장소가 된 것이다. 예약도 안 받고 4인 이상 손님은 받지도 않았다. 테이블이 4인용이라 다른 테이블 의자를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한 팀이 단체로 오면 시끄럽다는 것이다. 한 사람 씩 오면 조용하게 즐기고 갈 수 있다. 여러 사람이 단체로 오는 것보다 한 사람이 오면 회전도 빠르다는 것이다.

얼마 전 지인들과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서울에서 미리 유명한 맛집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끼니 때 마다 순례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제주도에 사는 지인을 만나 리스트를 보여 주니 대부분 만류했다. 비싸기만 하고 맛도 고만고만하다는 것이었다. 손님이 넘치니 친절도도 떨어졌다. 그래서 제주도 지인을 통해 잘 알려지지 않은 맛집들을 소개 받았다. 전통 시장에 있는 간판 없는 음식점도 포함되어 있었다.

몇 해 전 필자의 자서전을 만들어준 대학생들이 있다. 그 당시 10여 차례 만나며 그때마다 필자가 아는 맛집들에 데려 갔었다. 단가가 좀 비싼 음식점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다시 만나니 그때 유명 음식점들은 기억을 못하고 이름 없는 음식점들만 기억하고 있었다. 양재시장 골목의 실내 포장마차 갈치 찜, 낙원동 골목의 아귀찜, 신당동 떡볶이 집이 특히 좋았다는 것이다.

SNS가 발달 하면서 사람들은 인증 샷을 좋아한다. ‘선찍 후식’이라고 음식이 나오면 사진부터 찍고 나중에 먹는다. 그걸 모르고 음식이 나오자마자 젓가락을 댔다가는 음식 모양이 망가지므로 비난을 한 몸에 받아야 한다. 이런 행위는 “나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또는 이런 숨은 맛집을 알고 있다”는 ‘자랑질’ 심리이다.

사람들은 이제 방송에 나왔다는 유명 음식점은 기피하는 풍조도 있다. 어지간한 음식점들은 방송 출연 장면을 사진으로 내걸고 영업하는 곳도 많다. 여러 곳에 있는 프랜차이즈 점인데 마치 자기네 집에서 촬영한 것인 양 눈속임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가서 맛을 보니 손님이 많아 복잡하기만 하고 맛도 그저 그랬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옆집에 간다. 혐핫 신드롬이다. 그래서 어느 음식점은 “TV에 한 번도 안 나온 집‘이라는 플래카드를 밖에 붙인 곳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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