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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더더욱 사랑하리라

기사입력 2017-10-19 10:46

[동년기자 페이지] 치매에 대한 회포

“여보, 이제부터라도 당신이 나에게 훨씬 더 잘해야겠어요.”

“응?”

“왜냐하면 내가 당신보다 다섯 살이 어리잖아요? 당신이 나보다 먼저 치매를 앓을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말이에요.”

“내가 지금도 잘해주고 있지 않소!?”

“그렇긴 하지만 당신이 내게 더 잘해주면 속 깊은 사랑과 추억이 켜켜이 쌓이게 되겠지요? 그러다가 만약 당신이 치매에 걸리면 내가 당신에 대한 사랑과 소중한 추억을 기억하면서 당신을 더 잘 돌볼 수 있지 않겠어요?”

아내가 어느 날 불쑥 건넨 말이다. 결혼 40주년이 다가오는 우리 부부에게 그동안 미운 정 고운 정이 그득할 터인데 아내는 고운 정은 잊어버리고 미운 정만 남아 있는 걸까? 아내의 마음속에 태산같이 버티고 있을 미운 정을 해소하고 고운 정만 쌓이도록 해줄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일까? 치매 걸린 필자를 돌봐주는 데 필요한 질 좋은 추억들은 또 얼마나 되어야 하는 걸까? 아내의 말에 머릿속이 갑자기 복잡해졌다. 그동안 이 나이 되도록 치매는 남의 일로만 치부하고 살던 우리 부부 아닌가. 아내의 제안을 받은 순간 번쩍 정신이 들면서 ‘나도 예비 치매환자일 수 있다?’는 깨우침과 함께 마음이 아득해왔다.

우리 부부는 연애결혼을 해서 젊은 날은 제법 깊은 연정으로 살았다. 전쟁 치르듯 자식들을 키울 때는 여유 없이 살기도 했지만 거친 세월을 잘 이겨왔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새 노인이 되어 있다. 고교 시절 국어선생님은 “부부가 늙으면 습관과 연민으로 산다”고 하셨다. 오래 같이 산 부부는 습관이라는 관성으로 살면서 서로를 측은히 여기는 인간애, 자비심이 버팀목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습관과 연민의 무게만으로 치매 걸린 상대가 감당이 될까? 그보다 더 임팩트 있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내는 알고 있는 것이다.

언론보도 중 필자가 유난히 관심이 많은 분야는 ‘암’과 ‘치매’의 정복 소식이다. 암 정복 관련 기사가 열 개라면 치매 관련 기사는 한둘에 지나지 않는다. 그만큼 미스터리한 질환인 것이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필자가 어느 날 치매에 덜컥 걸려 아내도 몰라보는 생소한 존재가 될지라도 그런 필자를 돌봐주겠다는 아내의 따스한 제안은 그 어떤 치매 정복 소식보다 반갑다. 치매의 40~50%는 유전과 상관이 있다는데 필자의 친가, 외가 모두 치매를 앓다 가신 분은 없다. 절반은 안심이지만 그렇다고 치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아내가 사랑과 좋은 추억들을 양분 삼아 필자를 돌볼 수 있도록 잘해주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아직 가늠이 되질 않는다. 하지만 정신이 온전할 때 이토록 착한 아내를 잘 대하고 나아가 더 잘 섬겨야겠다는 생각은 분명하다. 돌봄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치매 걸려도 돌봐주겠다는 착한 아내에게 감동을 주는 일상을 안겨주겠다는 것이다. 아내의 이런 마음을 알아차린 이상 필자도 아내가 치매에 걸린다면 잘 돌봐주리라. 무엇보다 어설픈 치매 예방을 하는 것보다 평소에 서로를 잘 섬겨, 일상에 감동을 심고 또 심는 착하고 건강한 아내와 남편이 되기만 한다면 일석이조, 황혼의 사랑도 깊어지고 치매도 극복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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