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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힘

기사입력 2017-08-17 20:32

며느리가 어쩌다 다리를 다쳤다. 유아원에 다니는 4살 손자, 6살 손녀 둘을 할아버지가 자동차로 등하교 시켜 줬으면 좋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며느리 입장에서야 시아버지가 아침저녁으로 출퇴근 식으로 들락날락 아이들 돌보는 것이 여러모로 불편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아버지에게 SOS를 보내는 것은 마땅히 도움 청할 곳도 없는 모양이다. 오죽하면 시아버지에게 부탁할까 싶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을 했다. 아들네 집은 멀다. 우리 집에서 전철로 한 시간 반을 가야 한다. 전철에서 내려도 집까지 십 여분은 걸리는 거리이니 편도시간만 두 시간이 훌쩍 걸리는 길이다. 왕복 네 시간은 길에서 보내야 한다. 게다가 유아원은 10시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9시 반까지는 아들네 집에 도착해야 한다.

아이들 있는 집이 다 그렇지만 아침은 집안이 온통 전쟁터다.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는 행동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깨워야 하고 씻겨야하고 아침밥을 먹여야 하고 옷을 입혀야 한다. 며느리가 아픈 발을 동동거리며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하는데도 아이들은 도무지 남의 일처럼 생각은 딴대 있고 행동은 굼뜨다. 그 바쁜 틈에도 뽀로로 같은 만화영화를 보여 달라고 보챈다. 할아버지도 옆에서 눈치껏 며느리를 도와주는데 아이들 하는 행동을 보면 속에서 천불이 일어난다. 등짝이라도 한 대 후려 패 버리고 싶다. 며느리는 인내심 있게 계속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아이에게 설명하면서 어르고 달랜다. 필자가 자식들을 키울 때는 어땠는지 지금은 기억에도 희미하지만 틀림없이 이런 경우라면 달래기보다는 야단치고 매를 들었을 것이다. 전통적 육아교육에다 주먹구구식의 상식을 더해 아이를 우리가 키워 왔다면 현대의 젊은이들은 다양한 루트를 통해 육아기법을 배운다. 책꽃이를 둘러보아도 육아에 관한 책들이 많다. 젊은 세대가 우리세대보다는 아이들 키우는 방식이 낫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 짬을 내어 냉장고를 보니 ‘어머니의 기도’라는 글귀가 붙어있다.

어머니의 기도 - 찰스 마이어  

『 아이를 이해하고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며

묻는 말에 하나하나

친절하게 대답해 주도록 도와주소서.

면박을 주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소서. 

아이가 우리에게

공손하길 바라는 것과 같이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느꼈을 때

아이에게 잘못을 말하고 용서를 빌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아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비웃거나 창피를 주거나 놀리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비열함을 없애주시고

아이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며느리도 사람인데 울컥 화가 치밀 때는 매를 들고 싶은 유혹이 있겠지만 ‘어머니의 기도’와 같은 글을 자주 읽으며 마음 수양을 하는구나! 역시 내가 며느리는 잘 얻었구나! 하고 감탄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서 시집간 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너도 아이를 때려서 훈육하려고 하지 마라. 하고 며느리 자랑을 하였다. 딸을 통해 이 이야기는 아들에게 전해졌다. 아들이 폭소를 터트리며 한바탕 웃은 후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시아버지 앞에서 아이를 어떻게 때리느냐! 우리끼리 있을 때는 훈육의 매를 들기도 하지’ 하더라는 것이다.

아! 그래 맞다 이것이 할아버지의 힘이다. 우리도 어른들 앞에서는 아이들을 때리지 못하게 교육받았다. 화가 난 아버지를 피해 할아버지 방으로 도망가면 상황 끝이었다. 할머니 품속 치마 속은 엄마도 건드리지 못하는 치외법권지역이었다. 부모한테 매를 맞아 죽은 아이가 있다는 방송을 보면서 할아버지가 있는 집의 아이였다면 절대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할아버지가 아비나 어미보다는 한발 뒤에 물러서 있지만 매의 눈으로 손자, 손녀를 지켜보고 있다. 감히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넓은 보호막을 치고 있다. 정신이 온전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는 한 친부모라 하더라도 아이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동은 용서하지 않는다. 이것이 가정교육이요 할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위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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