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무게, 즉 자아라는 의식의 무게는 지구의 무게보다 무겁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무게는 얼마나 될까? 결혼한 지 40년째에 접어드는 지금도 아내가 생각하는 가장의 책임과 무게는 남편이 생각하는 책임과 무게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 가끔 가장의 권위를 존중해 달라고 하면 지금 같은 시대에 무슨 권위가 필요하냐고 되묻는다.
아내에게 농담으로 “당신과 결혼해서 정년퇴직할 때까지 사글세나 전세 한 번 살게 한 적 없었소!” 하면 아내는 “고마워요” 하기는커녕 “난 결혼 전에도 사글세나 전세로 살아본 적 없어요. 늘 우리 소유 집에서 살아왔어요” 한다. 8촌 이내 친척 모임에서 누나들 소개로 아내와 맞선을 봤다. 그 뒤 아버지께서 집안을 알아보시고 좋다고 하셔서 7남매 장남 역할을 잘해보겠다는 생각으로 결혼을 했다. 필자는 결혼 전에 이미 방 두 개짜리 13평 아파트를, 당시 현금 20만원과 19년 분할상환 융자조건으로 확보하고 있었다.
아내가 첫딸을 출산했을 때는 겨울이었다. 울산에서 해 뜨기 전에 집을 나서 쇠를 다뤄 화물선 만드는 조선회사에 8시까지 출근했고, 퇴근은 해가 진 후 한참 지나서 했다. 매일 매일이 피곤했다. 그날 저녁에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는데 한밤중에 딸아이가 계속 울어댔다. 좀처럼 떠지지 않는 눈을 비벼대며 자는 아내를 흔들어 깨워 “여보, 아이가 계속 울어대니 좀 달래시오” 했다. 그러나 여전히 딸아이가 울어대는 통에 할 수 없이 일어나 앉았다. 일어나 보니 아내는 일어나 아이를 달래기는커녕 돌아누워 쿨쿨 자고 있었다. 순간 무시당했다는 감정이 일어나면서 화가 솟구쳤다. 피곤한 가장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아내가 미워 상당히 아프게 얼굴을 때려버렸다. 그러자 아내는 벌떡 일어나 자는 사람에게 왜 그러느냐고 대들었고 밤새 언쟁을 했다. 그 후 아내는 필요할 때마다 그날의 일로 두고두고 공격을 해오곤 했다. 산후 몇 달간 쏟아지는 잠을 야속하게도 몰라줬다는 것이었다.
첫째에 이어 둘째, 셋째가 태어날 때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자녀들에게 여러 보험을 들어줬다. 또 7남매의 장남이다 보니 동생들 학비에 결혼식 등 돈 쓸 일이 끊이지 않아 목표한 저축과 목돈 모으기가 어려워 아내가 힘들어했다. 어느 날인가 여동생 결혼식을 마치고 피곤한 상태에서 집으로 가다가 가전제품을 파는 상점에 들어가 세탁기를 즉흥적으로 샀다. ‘이렇게 열심히 힘들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과연 남는 게 뭔가?’ 하는 생각과 함께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뭔가 보상을 해주고 싶었다. 그때까지 아내는 손빨래를 했던 것이다. 갑자기 배달된 세탁기에 아내는 눈을 크게 뜨고 “갑자기 무슨 세탁기예요?” 하며 놀랬다.
결혼 10년째가 되니 아이들 나이가 10세, 8세, 5세가 됐다. 당시 회사가 특별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책상을 치우고 교육을 시켰다. 150여 명이 제자리에 못 돌아올 위기에 처했을 때 필자는 그야말로 시베리아 벌판에 홀로 서 있는 듯한 고독과 아픔을 느꼈다. 마치 홀로 지구를 짊어지고 있는 사람처럼 가장으로서 무거운 마음뿐이었다. 나라는 존재 가치와 능력에 대해 자괴감이 몰려왔고 아내에게는 표현할 수 없는 외로움이 필자를 오랫동안 포박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가장으로서의 책임은 더 강해졌다. 역설적으로 표현하면 아내와 하고 싶은 것들을 과감하게 실천하기 시작했다. 결혼 25주년 때 하와이를 가자고 하자 아내가 킬리만자로를 등정하고 싶다고 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5000미터 높이 이상의 눈 덮인 킬리만자로 산 정상까지 가고 싶다고 해서 3주간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 겸 떠났다. 그리고 아마추어로서는 가장 높은 곳에 오를 수 있다는 킬리만자로 산의 두 봉우리(해발 5685미터 길만스포인트와 5895미터 우후르피크)도 등반했다.
지금은 정년퇴직한 지 9년째다. 6시 반에 출근해서 아침식사를 하고 조찬회의를 하던 생활을 10년도 더 넘게 해서 그런지 지금까지도 느긋하게 늦잠을 자거나 아침 일찍 일어나도 다시 누워 휴대용 라디오를 들으면서 유유자적하는 게 좋다. 가능하면 하고 싶은 일들을 다양하게 즐기려고 한다.
아내와는 가끔 언쟁도 하는데, 아내는 필자가 권위적이라며 불평을 하고 필자는 가장의 권위를 좀 존중해 달라고 한다. 아내와 감정 대립을 할 때면 필자는 침묵 상태로 들어간다. 일상생활은 하면서 상당 기간 아내와 말을 삼가는 것이다. 필자 의견을 주장하고 설득시키려 하거나 이기려 하면 감정의 회오리와 더 큰 혼란에 빠지는 것을 반복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른바 묵언수행 또는 침묵피정 같은 행위를 자처하는 것이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면 침묵으로 부족하니 스킨십이 많아지고 급기야 터져 나오는 웃음을 서로 참지 못한다. “내 스킨십에 눈물 좀 찔끔 흘려줘야 하는 거 아냐?” 하면 아내는 “아직도 너무 권위적이십니다요!” 한다.
연필화를 수년간 그려온 아내는 최근 수채화를 배운다. 어느 날은 아내가 표본 책을 가지고 오더니 “선생님에게 큰 스케치북에 표본 그림을 모두 그려보겠다고 했어요” 한다. 필자는 “잘했소! 하다가 못하면 가장인 내가 다 해줄게요” 했다. 그러자 아내는 “어휴! 또 도졌네요, 그 병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