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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찾는 그 머나먼 여정

기사입력 2017-02-13 09:56

▲진실을 찾는 그 머나먼 여정(박미령 동년기자)
▲진실을 찾는 그 머나먼 여정(박미령 동년기자)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종편 보기다. 그것도 토론 프로그램이다. 평소 드라마 위주로 보던 사람이 매일 시사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으니 남편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래도 재미있으니 어쩌랴. 국가적 중대사를 논하고 있는데 재미를 운운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지만, 사실 까놓고 얘기하는데 재미가 없다면 그런 프로를 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하다.

종편 방송사들도 그 점을 의식했는지 토론을 거의 예능 수준으로 다양하게 꾸미고 OX 퀴즈까지 도입한다. 시청률도 많이 올라 이번 최순실 사건의 최대 수혜자는 종편방송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몇몇 단골 출연자는 벌써 유명인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속 시원하고 세상 보는 눈을 뜨게 해주는 듯싶더니 갈수록 오리무중이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은 20세기 걸작 가운데 하나로 영화학도들의 교과서로 쓰이는 영화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사무라이 한 명이 숲속에서 살해되고 어린 아내는 강간당한다. 용의자로 체포된 험악한 산적이 자신의 범행이라고 고백하면서 사건은 쉽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사건을 목격했다는 사람마다 모두 이야기가 다르다.

경찰 앞에서 자기가 벌인 일이라고 지껄이는 산적, 자신은 능욕의 슬픔으로 실신했다가 일어나니 남편이 죽어 있었다는 아내, 사건을 목격했다는 나무꾼, 그리고 무당의 입을 빌려 저승에서 이야기하는 사무라이까지 모두 다른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다. 진실은 하나인데 사람마다 다르게 보고 기억한 것일까? 아니면 애초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종편 패널들도 처음에는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더니 갈수록 벌어지는 사건의 진행을 따라가며 해설하는 정도에 머무는 듯하다. 하긴 예측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거나 때론 자신의 말이 모순되는 지경으로 치달리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으리라. 한때 막장 드라마를 욕하면서 작가를 매도했는데 이 현실의 막장 드라마는 어찌할 것인가. 도대체 작가는 누구란 말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실을 ‘사실 그대로’라고 정의한다. 세상에는 사건들로 구성된 하나의 사실이 존재하며 그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정확히 표현한 것이 바로 진실이라는 말이다. 논리적으로는 맞는 듯하지만, 우리 인간은 외부 현실 전체를 인식하기보다는 각자 차이 나는 지각과 기억을 통해 간접적인 경험을 할 뿐이다. 그러니 객관적인 진실은 과연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 <라쇼몽>과 유사한 작가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오! 수정>과 최근작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가 특히 그렇다. <라쇼몽>이 살인사건이라면 홍상수의 영화는 남녀의 만남을 두고 기억이 갈린다.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한 사람의 시각도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영화와 현실이 뒤섞인 홍 감독의 요즘 처지를 보면 인생이란 영원히 진실을 모른 채 주관성의 감옥에 갇혀 사는 게 아닌가 싶어 갑자기 씁쓸해진다.

사실 역사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현대적 관점에서 늘 재구성되고, 극단적으로 말하면 승자의 주관적 시각으로 편집된 혹은 왜곡된 진실이 아니겠는가. 오늘날 이 사태가 어디로 흘러가고 어떻게 결말이 날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현재 세력이 강한 쪽의 주관성이 결정할 듯하고 끝내 진실은 첩첩산중일 듯싶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진실을 찾아서 지금도 방랑자처럼 끊임없이 종편 채널을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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