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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역에서 빠져 나오는 중

기사입력 2017-01-23 09:34

▲;회고록 헌정식(강신영 동년기자)
▲;회고록 헌정식(강신영 동년기자)
지난 8개월간 고인의 회고록을 썼었다. 고인이므로 실체가 없고 사진과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서 고인을 상상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어렴풋하게만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감에 따라 고인의 실체가 보이는 듯했다.

고인은 나이는 필자보다 5살 위이지만, 고향이 충북 영동으로 동향이다. 고인의 딸이 나를 보더니 고인과 많이 닮았다고 했다. 작은 키지만 다부진 체형, 벗겨진 이마, 약간 찢어진 눈 등이 닮았다는 것이었다.

고인은 생전에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지금도 주변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고인이 작고했다고 하면 눈물이 핑 도는 사람도 있었다. 고인이 작고한 사실을 아는 주변 사람들도 고인을 떠올리는 얘기가 나올 때면 눈물짓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8개월을 고인에게 접근하여 고인의 생전 자서전을 쓰다 보니 푹 빠져 들어갔던 모양이다. 직접 고인의 입장도 되어 보고 가까운 주변 인물이 되기도 했다. 마치 고인이 주변에 실제로 살아서 존재하고 있다는 착각도 든다. 살아 있지는 않지만, 영혼이 아직 내 주변에 머무는 느낌도 든다.

드디어 회고록이 완성되고 고인의 영전에 바쳐졌다. 회고록도 관계자들이 모두 만족스럽게 나왔다. 해단식도 끝났다. 그런데, 제자리로 와야 하는데 그 위치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다른 사람들이 자서전 대필을 요청하는데도 아직 마음의 여유가 없다. 당분간 휴식이 필요한 것 같다. 배우들이 배역에 빠져들다 보면 마치 본인이 그 사람인 줄 알고 빠져 들었다가 다시 빠져 나오는데 애를 먹는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

고인의 생애를 돌이켜 볼 때, 열심히 산 사람이었다. 그런데 70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하느님도 그런 능력 있는 사람을 곁에 두려고 일찍 데려 가셨다는 말을 한 사람이 많았다. 반면에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은 아직 살아 숨 쉬고 있다며 일찍 간 고인을 애통해 했다.

고인의 회고록을 쓰다 보니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해 보게 한다. 인생이란 결국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고인은 수많은 베풂으로 존경을 받은 사람이다. 주변에 알게 몰게 돈도 많이 빌려주고 못 받은 돈도 많다. “돈을 버는 것은 기술이고, 돈을 쓰는 것은 예술이다”라고 한 사람이다. 저 세상 갈 때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실천한 사람이다. 반면에 욕을 먹으며 살았어도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든다.

고인 또래의 주변 사람들은 아직 건강해 보이지만, 70세 전 후에 운명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5년 차이로 뒤쫓아 살고 있는 필자 자신도 뒤돌아 보게 만든다.

인생은 유한한데, 100년, 만년 살 것처럼 욕심이 많은 사람들도 많다. 사실 그리 많이 남지도 않았다. ‘노욕’이라든지, ‘노회’라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겠다. 고인처럼 죽어서도 여러 사람들의 존경을 받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욕은 먹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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