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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낙 그림 이야기] 한·중·일 초상화에 담긴 문화 아이콘

기사입력 2016-11-07 09:32

조선시대의 초상화를 보면 참으로 ‘특별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조선시대의 초상화가 지닌 세계 미술사적 의미를 되새기면 가슴이 벅차오르기까지 한다.

다양한 문화 예술 장르가 중국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전해진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초상화가 삼국에서 시공간을 달리하면서 각기 다른 문화 양식으로 자리 잡은 결과를 비교해보는 것은 미술사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사진 1
▲사진 1

몽골인이 세운 원(元) 왕조(1271~1368)가 쇠퇴하고 한족(漢族)이 명나라를 세우면서 원나라 문화와 거리를 두려고 시도한 차별화 정책 중 하나가 초상화다. 초상화는 조상숭배 정신을 함양하는 풍조에서 더욱 큰 힘을 얻어 명나라 문화의 아이콘으로 부각되면서 꽃을 피우게 됐다.

이때 명 태조(太祖) 주원장(朱元璋, 1328~1398)의 초상화(사진 1)가 그려지고, 초상화 문화는 조선에까지 전해져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 1335~1408)의 초상화(사진 2)가 탄생한다. 또 일본 열도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7~1598)의 초상화(사진 3)도 등장한다.

▲사진 2
▲사진 2

위의 세 사람의 초상화를 문화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비단에다 그렸다는 사실과 함께 제작 방법도 똑같은 족자(簇子) 양식을 취했다는 점에서 같은 문화권이었다는 맥을 짚을 수 있다. 다만 중국과 우리나라 초상화의 족자는 세로 길이가 가로 길이에 비해 훨씬 긴 직사각형인 데 반해, 일본 초상화의 족자는 세로와 가로 길이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정사각형에 가까운 형태다. 이는 일본의 피사체가 중국과 우리나라처럼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아닌 방바닥의 방석 위에 앉아 있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사진 3
▲사진 3

초상화의 핵심인 피사체의 안면 부위를 보면, 명 태조 주원장의 경우 후덕하면서도 권위적인 면모가 뚜렷하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안면 묘사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측 눈썹 위에 작은 혹, 일명 점(母斑)이 그려져 있다(사진 4). 그런가 하면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얼굴은 분(粉)을 바른 듯 하얗다.

소중현대(小中顯大),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본다”는 말이 있다. 중국과 일본, 한국 초상화의 차이는 비록 작지만 문화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 할 수 있다.

▲사진 4
▲사진 4

>> 이성낙(李成洛) 현대미술관회 회장

독일 뮌헨의대 졸업(1966), 연세대의대 피부과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가천의과대학교 총장, 가천의과학대학교 명예총장(현), 한국의약평론가회 회장(현), 간송미술재단 이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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