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칼린 쉬 감독이 만들었고 사무라이 대장 역에 사나다 히로유키, 영주의 딸 역에 시바사키 코우가 나온다.
여우에 홀려 재판관으로 방문한 사람을 공격했다는 이유로 영주는 쇼군으로부터 할복을 강요당해 죽는다. 영주를 모시던 사무라이들은 즉각 반격을 자제하고 훗날을 기약하며 숨어 지낸다. 드디어 반격의 준비가 갖춰지고 기습 공격으로 적들을 물리친다. 쇼군은 이들의 행위를 용서하면서 할복의 기회를 준다. 47인의 사무라이들은 사무라이 대장의 아들을 제이하고 장렬하게 자결한다.
여우가 둔갑하고 칼 싸움이 볼만한 영화로 타임 킬링 용이지만, 일본에서는 이 일화가 영웅담으로 남아 일본 정신을 심는데 좋은 작품으로 본다는 것이다. 주군을 향한 충성심, 그리고 자결행위가 당연한 영광으로 치는 것이다. 실화인지 만들어진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매년 12월에 이들을 위한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카이로 나오는 키아누 리브스와 영주의 딸의 사랑 이야기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칙칙한 남자들만 나오는 영화보다는 여자도 출연시켜 사랑 이야기를 넣어야 그림이 되기 때문이다. 카이도 47인의 사무라이 일원으로 영광스러운 자결에 참여한다. 할복자살을 영광이라고 대우하는 일본의 정신이 섬뜩하다.
일본의 정서는 문(文)의 정서인 우리와 비교할 때 무(武)의 정서이다. 사무라이를 영웅으로 치는 정서 속에 일본은 일찍부터 우리나라를 침략했다. 일제 식민지 시기에는 중국, 러시아를 상대로 싸웠고 미국까지 건드렸다가 패망한 나라이다. 일본의 우익은 아직도 그 향수를 못 잊어 재무장 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가미가제 정신도 충성심을 강요하며 애꿎은 젊은 군인들을 자살 공격으로 내몬 정신적 기초가 되어 있으며 지금도 이들을 우상화하고 있다.
왕이 있던 우리 역사에서도 충신은 있었지만, 무관으로 그만한 충성심을 보인 예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무관이 득세했던 고려시대에도 이렇다 할 스토리가 없다. 무관들의 집권투쟁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가 있을 뿐이다. 무관인 이순신 장군의 예를 봐도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과는 다르다.
우리 역사에서 사약을 받고 죽은 관리는 많지만, 할복자살을 한 역사는 없다. 할복자살이란 얼마나 끔찍한 행위인가. 그런 정서가 우리 독립군들을 처형할 때 그대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일본에 대해서는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 호시탐탐 남의 나라를 침략할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