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아무리 유명인사가 와도 똑같이 줄을 서서 식권을 받아야만 먹을 수 있는 곰탕집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맛집으로 잘 알려진 ‘하동관(河東館)’이다. 1939년 삼각동 일대에 문을 연 하동관은 2007년 명동입구로 자리를 옮겨오기까지, 이른바 ‘대통령의 맛집’으로 불리며 지금까지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은 초도순시를 나갈 때면 점심으로 배달시켜 먹었고, 육영수 여사도 여러 차례 함께 찾았다고 한다. 소박하지만 그 내공만큼은 화려한 하동관 곰탕은 김대중 전 대통령,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이해찬 전 국무총리, 국민MC 송해 등 각계 인사들의 오랜 단골집이기도 하다.
하동관의 메뉴는 곰탕과 수육 단 두 가지다. 함께 나오는 반찬도 깍두기와 배추김치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이마저도 그날 재료가 동이나 일찍 문을 닫는 날에는 허탕을 치기 일쑤다. 70여년 세월동안 단 한 번도 탕을 더 끓이거나 남겨본 적도 없기 때문에 대게 오후 3~4시면 문을 닫는다. 그럼에도 수많은 유명인사와 더불어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곰탕 한 그릇, 깍두기 한 접시도 정직함으로 승부하기 때문이다.
곰탕맛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예나 지금이나 대답은 매한가지다. 특별히 넣는 것도 없고, 남다른 기술도 필요 없다. 그저 좋은 재료를 쓰되 정성을 다하는 것. 그것이 전부다. 교과서적인 말일지 몰라도 ‘돈 생각 안하고 재료에 힘쓰는 것’ 그것이 하동관의 비법이자 원칙이다.
좋은 재료의 핵심은 단연 ‘한우’라 말할 수 있겠다. 80년 가까이 늘 한우 암소만을 사용해 왔고, 이 또한 60년 넘게 팔판동에 위치한 정육점에서 꾸준히 공수해 오는 것이다.
매일 끓여대는 곰탕 솥에는 깨끗하게 손질된 양지, 곱창, 사골 등 소의 6가지 부위 200~300근이 푸짐하게 들어간다. 이렇게 엄선된 재료를 넣고 푹푹 고아내니 그 국물이 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보통 곰탕집이라면 고기 잡내를 없애기 위해 파, 마늘 등을 함께 넣지만 이 역시 하동관 곰탕에는 출입금지다. 그럼에도 잡내는커녕 깨끗하게 손질된 내장의 깊은 맛이 우러나 구수하고 달큰해 그 깊이를 더한다.
곰탕도 곰탕이지만 이집 깍두기 맛에 매료된 사람도 적지 않다. 깍두기 재료도 곰탕만큼이나 간단하다. 시원하고 달달한 제주산 무와 꽃소금, 고춧가루, 새우젓, 설탕이면 충분하다. 이 역시 모두 국산재료만을 사용한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하동관엔 일하는 중국이모 빼곤 다 국산이다’라고 이야기 하곤 한다.
좋은 재료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깍두기 국물(일명 깍국)을 곰탕에 넉넉히 부어 먹으면 그 풍미가 남다르다. 깍국을 좋아하는 손님은 깍국만 따로 들이켜 해장을 하기도 한다고.
올해로 46년째 하동관 가마솥을 잡아온 김희영 대표는 “영리 목적으로 음식 장사를 하다보면 맛이 없다”며 “역대 대통령 중에는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만 안 오시고 다들 우리 곰탕을 즐겨 찾았다. 대통령 말고도 이회창,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이 들르곤 했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그때 당시엔 그들이 대통령이 될지도, 유명인사인지도 잘 몰랐다며 누가 오든 한결같은 맛을 냈다고 자부했다.
소박하지만 변하지 않는 곰탕 맛이 비결이라면 비결인 하동관은 같은 맛을 내기 위해 분점을 열지 않았으나, 김 대표의 외동딸 장승희씨가 대를 물려받으며 지난해부터 여의도에서도 하동관 곰탕을 즐길 수 있게 됐다.
국회의사당 인근에 위치한 분점에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유명인사가 하루 한명 이상은 꼭 찾아온다고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도 함께 곰탕을 먹으러 오고, 근처에 방송국이 있다보니 아나운서를 비롯해 가수와 탤런트들도 하동관 곰탕을 맛보러 온다. 국민MC로 잘 알려진 송해 역시 하동관의 오랜 단골손님으로 여의도 분점이 생기자 이를 반겼다고.
3대째 이어온 하동관, 3대가 즐겨 찾는 맛집으로
장씨는 “점심때가 되면 줄 서서 식권을 받아야 먹을 수 있는데, 국회의원이 됐든 유명 연예인이 됐든 예외는 없어요. 그들 역시 똑같이 줄을 서고 선불로 식권을 사야지만 맛볼 수 있으니까요. 이 역시 하동관의 전통이자 독특한 문화인거죠”라며 아침 7시에 문을 열면 아침식사 겸 회의를 하러 오는 사람도 꽤 늘었다고 말했다.
3대를 이어온 것은 하동관만이 아니다. 하동관을 찾는 이들 또한 3대를 아우른다. 50년 넘게 단골로 찾는다는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그 뿐만 아니라 손자들까지 3대에 걸친 단골이고, 어떤 이는 증손자까지 함께 곰탕을 먹으러 온다고 한다.
‘전통’이라는 것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을 찾는 이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장씨는 “오래된 집은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고, 또 오래 할 집은 그만큼 더 많은 이야기가 생겨 날 거에요. 대통령이 다녀간 맛집이라는 것 또한 우리집을 찾아오는 분들에겐 이야깃거리가 되고, 역사가 되는 것처럼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하동관과 함께 즐거운 추억을 나눴으면 좋겠어요”라며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