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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자문단 칼럼]자녀 독립시키기의 어려움-최일숙 변호사

기사입력 2014-04-28 14:56

바쁜 한주의 끄트머리, 금요일 저녁에 해방감을 느끼며 영화 ‘관능의 법칙’을 봤다. 제목과는 다르게 별로 야하지 않고 나름의 상처와 고민을 안고 살아가지만 일과 사랑에서 당당하고 자신 있게 즐기며 살려는 세 중년여자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거기서 딸 몰래 연애하는 싱글맘 해영은 다 큰 딸 수정이 못내 부담스럽고 귀찮다. 집을 얻어 줄 테니 독립해서 살라고 해도, 수정은 월세와 관리비도 내 줄거냐며 그렇지 않으면 재워주고 먹여주는 이 좋은 엄마그늘에서 왜 나가냐며 오피스텔 임대광고지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러고는 밥 때마다 치킨 시켜달라, 피자 시켜달라, 무슨 엄마가 딸을 맨날 내쫓으려고만 하느냐고 타박이다. 비정규직 88만원 세대인 수정이 부모그늘에서 살려고 하는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내 딸이 저 지경이면 어쩔까 더럭 겁이 났다.

자식들이 부모에게 기대어 살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부모들이 자식을 독립시키기를 두려워하고 못 미더워하며 싸고 돈 결과이기도 하다. 해영이 딸 수정이를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독립시켰다면 어땠을까?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되면 당연히 독립해서 살아야 하는 것으로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너희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내보낼 것이라고 누누이 말해왔다. 큰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자 과감하게 학교앞에 방을 얻어 내보냈다. 아직은 학생이니 학비와 생활비를 얼마간 지원해주지만 그것도 대학 졸업할 때까지 만이라고 못 박는다. 이런 결정을 두고 친구들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 그것도 딸을! 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제대로 살지 걱정이 되어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혼자 사는 큰 딸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듣지 않던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스스로 일어나 학교가고 공부하고 빨래하고 잘 해 나간다. 가끔 집에 와서는 집안일을 돕기도 한다. 스스로 생활을 꾸려가면서 배운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태도가 조금씩 보이기도 한다.

언니가 독립하는 것을 본 둘째아이는 자신도 대학에 들어가면 당연히 혼자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생활태도를 지적하는 내 잔소리에 고칠 생각은 안하고 독립해서 혼자 자유를 누릴 꿈에만 부풀어있다. 가끔 저녁에 혼자 집에 있으면서 심심해지면 나는 슬그머니 둘째아이에게 그냥 엄마와 같이 살자고 해본다. 그러면 그녀는 왜 언니는 독립시켜주고 자기는 안 되냐며 항의가 만만치 않다.

우리 사회는 대학에 들어가서도 독립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자식들이 대학에 들어가도, 취직을 해도, 결혼하기 전까지는 함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모가 결혼자금도 대주고, 결혼한 후까지 생활비를 주는 경우도 있다.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겠지만 엄마가 짠 플랜에 따라 박사학위를 받은 아들이 ‘엄마, 나 이제 뭐해야 돼?’라고 물었다거나, 대기업에 취직한 아들이 부장에게 혼나고 울면서 조퇴하자 엄마가 부장을 만나 ‘당신이 뭔데 내 아들 울게 하느냐’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듯 우리는 부모가 과도하게 관리하며 자식을 키우는 현상이 심화돼있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아이들이 독립심을 키우며 잘 커나갈 수 있을까? 자녀들은 믿는 만큼, 부모가 여지를 주는 만큼 성숙한다.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이미 어릴 적 동화책에서 다 배웠다. 그 배운 것을 자신의 힘으로 실천해볼 기회를 갖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막내딸에게 저녁밥은 먹었는지 문자를 보내자 대답대신 맛있는 거 사오라기에 집근처 치킨집에 테이크아웃을 주문했다. 그리고는 마음이 급해져서 불법유턴을 하다가 딱지를 떼고 말았다. 혼자 사는 큰딸은 토요일 아침부터 집으로 와서는 남친과 헤어졌다면서 눈물을 글썽이며 한숨을 쉬었다. 그것을 보니 결혼한 뒤 사네 못사네 하면서 난리법석을 떨 것 같은 예감에 휩싸인다. 아! 엄마로서의 애달픈 마음은 죽어서나 끝나려나보다.

<최일숙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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