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그의 이야기 영화화되기도
기구한 삶을 살았다. 부당한 인종차별의 상징인 루빈 ‘허리케인’ 카터가 향년 7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66년 여름, 미국 뉴저지의 한 술집에서 세 사람이 쓰러졌다. 몇 발의 총성이 울린 뒤였다. 웨이트리스 패티 발렌타인, 좀도둑 벨로와 브래들리가 현장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은 한명의 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은 것을 알고 병원으로 후송했다. 벨로와 브래들리는 두 명의 사내가 흰 자동차를 타고 달아났다는 목격담을 이야기한다.
같은 시간 루빈 카터라는 미들급 권투선수는 친구들과 드라이브를 하다가 불심검문에 걸린다. 경찰은 그를 의심해 부상자가 입원해있는 병원으로 데려간다. 의식을 회복한 부상자는 루빈 카터를 보고 범인이 아닌데 왜 데려왔냐고 한다.
범인을 잡지 못한 채 네달이 지났다. 조급한 경찰은 비열한 음모를 꾸민다. 사건 당일 검거했던 루빈 카터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기로 한 것. 빈민가 출신의 흑인 권투선수, 평소에 거친 언행으로 밉보였던 카터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다.
목격자 브래들리에게 거짓 증언을 하게하고 증거를 조작해 카터를 수세로 몰아넣는다. 판결도 공정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백인으로만 이루어진 열 두명의 배심원은 카터에게 일급살인의 유죄 판결을 내린다. 카터는 종신형을 언도받고 감옥에 투옥된다.
이 후 카터는 감옥에서 진실을 위한 싸움을 시작한다. 자신의 주장을 글로 써서 '16라운드'라는 제목을 붙여 출판하기도 한다.
‘정의가 게임에 불과에 나라에 살기가 참을 수 없을 만큼 부끄럽다’
반전과 평화, 인권에 대한 노래를 부르던 가수 밥 딜런이 ‘16라운드’를 읽고 했던 생각이다. 밥 딜런은 책에서 받은 영감으로 ‘허리케인’이라는 제목을 붙인 노래를 카터에게 헌사 한다.
1985년, 카터는 마침내 자유를 쟁취한다. 연방법원의 재심 결과 무죄를 판결 받았기 때문이다. 19년이라는 긴 세월을 억울한 옥살이로 보낸 카터의 이야기는 1999년 ‘더 허리케인’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된다.
카터는 전립선암 투병 중이었다. 오랜 친구인 존 아티스는 카터가 20일(현지시간) 잠자던 중 숨졌다고 말했다.
태풍이 몰아치듯 권투를 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 ‘허리케인’. 한때는 프로복싱 미들급 세계 1위까지 오르며 고공 행진한 바 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인기 권투선수에서 하루아침에 살인범으로 몰려 19년의 옥살이를 한 카터. 그는 부당한 인종차별의 상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