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의~ 노인과 마주하는 삶’ 펴낸 아이카와 히로유키 인터뷰

“노년을 이야기할 때마다 늘 ‘이후’를 전제로 합니다. 죽음 이후, 정리 이후, 남겨진 사람 이후 말이지요. 그런데 정작 묻지 않습니다. 지금을 어떻게 살 것인지.”
인터뷰를 위해 메일을 여러 차례 주고받는 과정에서 아이카와 히로유키(相川浩之) 기자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그는 일본경제신문 기자로 30여 년을 일했고, 퇴직 후에는 독립 출판사 ‘저널리스트의 혼’을 세워 초고령사회를 기록해 온 인물이다. 일본 사회에서 ‘고령 문제를 가장 집요하게 취재해 온 언론인’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그가 방송인 마치 아세이(町亞聖)와 함께 펴낸 신간 ‘초고령사회의 전문가 12인에게 들은, 노인과 마주하는 삶’은 노후에 대한 새로운 관점으로 일본 사회에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노년을 하나의 시기로 묶으면 문제 바꿀 수 없어”
“이 책은 종활(終活, 일본식 ‘죽음 준비’) 책이 아닙니다. 노년을 살아가는 시간 자체를 다룬 책입니다. 그런데 일본 사회에서는 이 두 가지가 자주 혼동됩니다. 정년을 맞으면 곧바로 장례, 묘지, 유언 이야기로 넘어가죠. 저는 그 흐름에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 있다고 느꼈습니다.”
아이카와 기자는 ‘종활’이라는 개념이 일본에서 지나치게 확장됐다고 본다. 종활은 본래 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행위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노년 전체를 잠식하는 담론이 됐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론 준비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65세에 은퇴했다고 해서 곧바로 ‘마무리 국면’으로 들어가는 건 아닙니다. 지금 일본의 평균 수명을 감안하면, 그 이후에도 20년, 길게는 30년의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이야기하지 않고, 마무리부터 시작하는 건 너무 불합리합니다.”
그의 문제의식은 오랜 취재 경험에서 비롯됐다. 아이카와 기자는 2011년, 일본의 경제 전문 방송인 라디오 NIKKEI에서 주 1회 프로그램 ‘아쓰마레! 홋토 에이지’를 시작했다. 직역하면 ‘모여라, 마음이 놓이는 세대’ 정도의 의미다. 초고령사회를 살아가는 중장년·노년층을 대상으로, 의료·돌봄·일·주거·자산·삶의 태도를 다뤘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반응이 있을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방송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이것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눌 곳이 없었다’는 것이었죠.”
그는 특히 라디오라는 매체의 힘을 강조했다. 활자 기사와 달리, 제한된 시간 안에서 질문과 답이 오가며 긴장감이 유지되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켜켜이 축적된 인터뷰가 이번 책의 토대가 됐다.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 평론가 히구치 게이코, 정신과 전문의 와다 히데키, IT 활동가 와카미야 마사코, 도쿄대 고령사회종합연구기구(IOG)의 이이지마 가쓰야 등 일본 고령사회 담론을 이끌어 온 인물 12명이 참여했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책이 노년을 연령대별로 나눈 구성이다. 그는 은퇴 이후의 삶을 설명하기 위해, 65~74세, 75~84세, 85세 이후 이렇게 구분해 이야기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드문 접근이다.
“노년을 하나의 덩어리로 묶어버리면,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살아보면 완전히 다릅니다. 65세와 85세는 몸의 상태도, 관계도, 고민의 종류도 전혀 다릅니다. 저 자신도 65세가 되어 은퇴를 겪고, 부모 돌봄을 경험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그 전에는 ‘고령자’라는 단어로 묶어 생각했지만, 막상 그 안에 들어와 보니 단계마다 필요한 준비와 대화가 다르다는 것이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은퇴는 끝의 시작이 아니라, 자유의 시작”
아이카와 히로유키 기자가 ‘노년은 준비가 아니라 삶’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데에는, 그 자신이 겪은 정년 이후의 시행착오가 깊게 자리하고 있다.
“은퇴 직후를 돌이켜보면, 솔직히 말해 꽤 불안했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은 조직이 곧 나 자신이었으니까요. 명함에서 회사 이름이 사라진 순간, ‘이제 나는 무엇으로 설명되는 사람일까’라는 질문이 바로 따라왔습니다.”
일본경제신문 기자로 수십 년을 보낸 뒤 맞은 정년은, 해방감보다 공백에 가까웠다고 그는 말했다. 매일같이 취재 계획을 세우고, 주변과 논쟁하며, 마감에 쫓기던 일상이 멈췄다. 대신 시간이 생겼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제야 여유가 생겼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몇 달이 지나자, 여유가 아니라 방향 상실에 가깝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고 끝낼지, 스스로 결정해야 했습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시기를 ‘65세의 시행착오’라고 불렀다. 그 시행착오의 시간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그가 택한 것이 글쓰기였다. 다만 신문 지면이 아니라, 개인적인 기록에 가까운 형태였다. 그는 LINE 블로그에 ‘65세의 걷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일상을 쓰기 시작했다. 노년의 거창한 교훈이 아니라, 하루의 리듬, 몸의 변화, 마음의 흔들림을 그대로 적었다.
그 경험은 하나의 결심으로 이어졌다. 스스로 쓸 공간을 만들자는 판단이었다. 그는 퇴직 후 1년여의 시행착오 끝에, 독립 출판사 ‘저널리스트의 혼 출판’을 세웠다.
“출판사를 세운 이유는 단순합니다. 더 이상 조직의 판단이 아니라,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제를 제 속도로 다루고 싶었습니다. 초고령사회는 하루 이틀 취재해서 끝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대단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하나씩 선택해 온 결과입니다. 다만 분명한 건, 그 시간을 통과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책도, 지금의 시선도 없었을 거라는 점입니다.”
“이상적인 노년이란 선입견, 노인 더 외롭게 만들어”
아이카와 히로유키 선생이 일본 사회의 노년 담론에서 가장 문제적으로 바라보는 개념은 이른바 ‘핀핀코로리(ピンピンコロリ)’다. 이는 일본에서 오랫동안 회자돼 온 노후에 대한 표현으로, ‘건강하게 살다가(핀핀) 어느 날 갑자기 죽는다(코로리)’는 뜻의 이상적인 노년상을 말한다.
“얼핏 들으면 바람직한 이미지처럼 들리죠. 저 역시 젊었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고령자를 취재하고, 또 제가 그 나이에 들어서 보니, 이 표현이 많은 것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이카와 기자는 핀핀코로리가 노년의 현실을 단순화하고, 때로는 침묵하게 만드는 말이라고 지적했다.
“쇠약해지는 과정, 도움이 필요한 순간, 타인에게 의지해야 하는 시간은 모두 노년의 일부입니다. 그런데 ‘핀핀코로리’라는 이상이 강할수록, 그런 자신의 상태를 실패처럼 느끼게 됩니다. ‘나는 이상적인 노년에서 벗어났다’고 스스로를 평가하게 되는 거죠. 노년을 강인함이나 독립성만으로 평가하는 사회에서는, 약해진 순간부터 말할 자리가 사라집니다. 저는 그 점이 가장 두렵습니다.”
이번 책에서 다루는 여러 제도 역시 그런 문제의식 위에 놓여 있다. 성년후견제도, 고령자 주거 문제, 지역포괄케어 시스템 등은 일본 사회가 오랫동안 공을 들여 설계해 온 장치들이다. 그러나 아이카와 기자는 제도를 무조건 신뢰하는 태도에도 선을 그었다.
“제도는 필요합니다. 다만 제도가 개인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습니다. 일본은 제도가 비교적 잘 정비된 나라라고들 말하지만, 막상 현장에 들어가 보면 제도의 틈새에서 고립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그는 특히 성년후견제도를 예로 들었다. 판단 능력이 저하된 고령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지만, 실제로는 관리의 중심이 사람이 아닌 재산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당사자의 삶의 선택을 제한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후견인이 붙는 순간, 본인의 의사는 ‘관리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도는 보호를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과정에서 삶의 주체성이 약화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책에서도 제도를 ‘정답’으로 제시하지 않고, 반드시 당사자와 가족, 의료진이 반복해서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순리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노년의 시간 생략될 것”
아이카와 기자가 책에서 제시한 연령대별 구분은 단순한 생애주기 분류가 아니다. 그는 이 구분이 행정이나 제도 설계를 위한 편의적 기준이 아니라, 노년을 대하는 개인의 인식 전환을 돕기 위한 최소한의 사고 틀이라고 설명했다. 노년을 하나의 덩어리로 묶어버리는 순간, 삶은 사라지고 ‘정리 대상’만 남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구분이다.
아이카와 기자는 “65세 이후의 삶을 모두 같은 상태로 취급하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살아보면, 그리고 수많은 고령자를 취재해 보면, 65세와 85세는 전혀 다른 삶의 국면이라는 것이다.
“65세 전후는 아직 몸이 비교적 움직이고, 판단 능력도 유지되는 시기입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을 수 있는 의사를 찾는 것’입니다. 어디가 아픈지를 넘어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삶의 맥락을 이해해 줄 의료진을 만나는 게 먼저입니다. 동시에 지금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달라질 수 있는지를 스스로 아는 단계이기도 합니다. 75세쯤이 되면, 혼자서 모든 결정을 내리기보다 가족과의 대화가 중요해집니다. 돌봄, 주거, 의료에 대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주변 사람들과 공유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이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상태가 나빠진 뒤에야 이야기를 꺼내면 갈등만 커집니다.”
그리고 85세 이후에도 해야 할 것이 있다. 이 시점에서 그는 다시 한번 ‘의사 확인’을 강조한다. 다만 그 주체는 개인 혼자가 아니라 의료진과 가족을 포함한 공동의 확인이다.
“85세 이후에는 이미 몸 상태가 크게 달라져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전에 생각했던 선택이 지금의 나에게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의료진과 다시 한번, 지금의 상태에서 어떤 치료를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확인이 ‘마지막 정리’가 아니라 ‘지금의 삶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에 대한 대화라는 점입니다.”
아이카와 기자는 이 순서를 거꾸로 할 때 문제가 생긴다고 지적했다. 아직 관계와 삶의 방향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이른 시점부터 장례나 사후 정리, 법적인 문서 작성으로 넘어가면 노년의 시간이 통째로 생략된다는 것이다.
“이 순서가 뒤바뀌면, 남는 것은 삶이 아니라 정리입니다. 아직 살아 있는데, 이미 끝난 사람처럼 취급받게 됩니다. 저는 그 점이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남겼다.
"한국은 유교적 전통 덕분에 노인 공경 문화가 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관념이 늙음을 정면으로 논의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노인을 유교적 관념 속에 가두어 떠받들기만 하거나 생산성이라는 잣대로만 볼 것이 아니라, 노인 스스로가 자신의 약해짐과 욕구를 더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노년은 정리가 아니라, 삶의 지평을 넓히는 연속된 연장선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