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니어 라이프] 50세에 통장잔고 0, 국민연금 47만원
인생을 즐기며 사는 74세의 소네 준코 (ソネ ジュンコ) 씨. 그의 직업은 ‘보디 메이크 인스트럭터(Body Make Instructor)’다. 한국에서는 낯설지만 일본에서는 널리 쓰이는 직업명으로, 한국식으로 풀어보면 ‘체형 관리 트레이너’에 가깝다. 단순한 운동 지도자를 넘어 트레이닝·체형 교정· 식습관·생활 습관까지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전문가다.

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신오사카역(新大阪駅)에 내린 뒤 전차로 한 정거장 더 이동하면 미나미가타역(南方駅)이 나온다. 역에서 걸어서 2분, 오래된 아파트 건물 한쪽에 소네 씨의 보디 메이크 교실이 있다.
문을 열면 소네 씨가 환한 미소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표정에는 ‘오늘도 재밌게 살아보자’는 기운이 그대로 담겨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소네 씨의 밝음은 결코 가벼운 낙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인생의 굴곡을 온몸으로 겪으며 두 차례나 생사의 기로를 넘나든 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을 견디고 다시 일어서며 그는 비로소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었다. 소네 씨는 오늘도 망설임 없이 말한다.
“아침에 눈뜨는 일이 즐겁습니다.”
10년마다 찾아오는 인생의 전환점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소네 씨는 대학 졸업 후 결혼해 세 아이를 키우며 평범한 주부로 살았다. 그러나 40세 무렵 갑작스러운 이혼으로 삶이 크게 흔들렸다. 세 아이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현실 속에서 그는 친정으로 돌아가 삶을 재정비해야 했다.
잠시 숨을 고르려던 50세에는 더 큰 시련이 밀어닥쳤다. 부모님이 운영하던 회사가 도산하면서 살던 집까지 잃게 된 것이다. 통장 잔고는 거의 0엔. 막막함과 두려움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소네 준코라는 사람의 힘은 바로 이 시점에 또렷하게 드러났다. 절망의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 것.
“원래 몸과 건강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손으로 척추와 근골격계를 교정해 신경 기능을 개선하는 카이로프랙틱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여성에게는 낯선 분야였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보자고 결심했죠.”
이 선택은 그의 두 번째 인생을 열었다. 기술을 익힌 후에는 스스로 보디 메이크 방식을 개발해 교실을 열었고, 사람들의 통증이 줄고 자세가 바로잡히는 과정을 지켜보며 이 일이 자신의 천직임을 확신했다.
하루하루가 다시 안정돼가던 61세, 예상치 못한 고비가 또 찾아왔다. 자궁경부암 3기 진단을 받은 것. 방사선 치료와 항암제 부작용은 고통스러웠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이들도 있고,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힘겨운 싸움 끝에 암을 이겨낸 지 13년. 그러던 올겨울 그는 다시 한번 위기를 맞았다. 갑작스러운 통증으로 병원에 실려갔고, 진단명은 대동맥 박리. 긴급 수술 도중 그는 심장이 두 번 멈췄다.
“그때 정말 저세상 문턱까지 갔다 돌아왔어요. 심장이 멈추는 순간 ‘저 아직 갈 때 아니에요!’라고 외쳤죠.”
소네 씨는 블라우스 단추를 풀어 가슴 중앙 아래로 이어진 긴 수술 흉터를 보여줬다. 생존의 흔적을 담담히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는 두려움보다 감사가, 체념보다 의지가 더 또렷하게 비쳤다.
“이 흔적은 제가 살아 돌아왔다는 증거예요.”

혼자 사는 삶에서 발견한 해방감
세 아이가 모두 독립한 뒤, 그는 오사카 시내 월세 11만 엔(약 103만 원)의 1DK(방 1개와 주방•식사 공간) 임대주택에서 혼자 지낸다. 겉보기엔 소박하지만, 소네 씨에게는 무엇보다 편안한 자신만의 공간이다. 삶을 단순화하기 위해 젊은 시절의 옷이나 사진도 대부분 정리했다.
“짐을 최소화하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져요. 그래야 어디든 갈 수 있죠.”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작은 컴퓨터 작업대다. 66세에 직접 영상을 편집해 유튜브를 시작했고, 지금도 댓글이 달릴 때마다 설렘이 찾아온다.
“과거에 머무르기보다 앞으로 어떤 재미있는 일이 생길까 생각하는 게 좋아요.”
그에게 홀로 사는 삶은 고독이 아닌, 인생 후반부를 더 창조적으로 살기 위한 ‘해방구’였다.
“혼자 살면 시간도 공간도 모두 내 마음대로예요. 생활 리듬을 온전히 제가 설계할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해요.”
집 안의 또 다른 특별한 공간은 재봉 작업대다. 미싱은 그녀에게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자기표현의 확장이다.
“입고 싶은 옷은 스스로 만들면 돼요.”
취재 당일 그가 입고 있던 멋스러운 옷 역시 직접 리폼한 작품이었다. SNS에는 스스로 모델이 되어 찍은 사진이 꾸준히 올리고, 많은 이가 그의 당당하고 밝은 에너지에 매료된다.
그에게 패션은 나이를 막론하고 “지금의 나를 사랑하고 표현하는 가장 즐거운 놀이”였다. 그래서인지 소네 씨는 흔히 떠올리는 ‘독거 여성 노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의 옷차림과 표정, 몸짓에서 생기와 유연함이 자연스럽게 흐른다.
소네 씨는 외모 관리에 대한 생각 또한 솔직하게 들려줬다.
“나이가 들면 외모에 신경을 덜 쓰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저는 그게 더 아쉬워요.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적은 비용으로도 충분히 멋질 수 있어요. 저는 ‘나이에 맞는 아름다움’을 계속 간직하고 싶어요.”
이어서 실용적인 조언을 덧붙였다.
“옷차림이 부담스럽다면 치아 관리부터 시작해보세요. 깨끗한 치아는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동시에 자신감도 높여줘요. 남녀 모두 외모를 신경 쓰는 건 젊음을 유지하는 중요한 힘이에요.”


창작의 즐거움, 여러 갈래의 수입원
“저는 국민연금이 5만 엔(약 47만 원)뿐이에요. 불안할 수 있죠. 그런데 저는 전혀 두렵지 않아요.”
소네 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죽기 직전까지 일하면 되니까요. 부유함도 무일푼도 다 겪어보니 무서운 게 없어요.”
작은 일이라도 ‘수입의 통로’를 만들면 삶은 한층 단단해진다. 그의 수입원은 △책 인세 △지역 TV 출연료 △지방 강연료 △리폼한 옷 판매 △낙하산 끈을 활용한 가방 끈, 휴대폰 스트랩 판매 △직접 만든 훈도시(ふんどし 일본 전통 속옷) 팬티 판매 등 다양하다.
특히 훈도시 팬티는 암 수술 후 착용했던 기저귀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고안한 것으로, 면과 마 소재를 사용해 조이지 않고 통풍이 잘 되는 것이 특징이다. 요실금 관련 강연에서는 전시 판매도 하는데, 시니어 여성들에게 반응이 매우 좋다.
“젊은 분들에게도 부업을 추천해요. 나이 들수록 작은 수입이라도 여러 갈래로 만들어두면 한 가지가 끊겨도 불안하지 않아요. 무엇보다 ‘창작하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어요!”
현재 ‘소네 보디 메이크 교실’의 정회원은 약 50명, 비정기 수강생까지 포함하면 100명 이상이 드나든다. 책 출판 계기도 의외로 단순했다.
“블로그에 제가 하는 일과 생각, 즐기는 것들을 꾸준히 기록했어요. 그걸 본 출판 관계자가 출판사에 연결해줬고, 이후 TV 출연과 강연, 새 책 제안까지 이어졌죠. 만약 ‘인터넷은 나와 상관없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현재 그는 데스크톱 맥, 아이패드, 아이패드 미니, 아이폰을 상황에 따라 사용한다. 코로나19 시기에는 누구보다 빠르게 ZOOM을 도입해 온라인 레슨을 진행했다. 그에게 IT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기회를 열어주는 창이었다.
소네 씨가 다양한 ‘작은 수입원’을 만들며 삶의 안정을 구축한 이유는 단순히 경제적 목적 때문이 아니다. 자신을 끊임없이 ‘업데이트’하고 싶은 마음, 그것이 그의 원동력이다.

나이 듦이 즐거워질 수 있는 비밀
소네 씨의 삶을 들여다 보면 노년을 향한 고정관념이 자연스럽게 무너진다. 그의 일상은 약함이 아닌 ‘유연함’, 고독이 아닌 ‘자립’, 포기가 아닌 ‘재도전’의 연속이다.
80대가 되면 어떤 삶을 살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말했다.
“지금처럼 살고 싶어요. 계속 재미있는 일을 찾고,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어요.”
그 말이 유독 마음에 오래 남았다. 소네 씨는 나이 듦을 두려움이나 상실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새로운 자유와 창조의 시간으로 받아들인다. 한국의 시니어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묻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시니어가 이제 와서 무슨 보디 메이크냐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시니어이기 때문에 더 아름다워지고 싶어요. 아름다움은 젊은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에요.”
그리고 차분히 덧붙였다.
“인생은 언제 어떤 일이 닥칠지 몰라요.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즐겨야 해요. 저는 매일 아침 눈뜨는 게 즐겁습니다. 오늘은 어제와 다른 하루가 펼쳐지니까요. 저는 나이 드는 것이 정말 즐겁습니다.”
그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어떻게 하면 나이 드는 것이 즐거워질 수 있을까?”
답은 거창하지 않았다. 소네 씨가 보여준 것은 창업이나 창직보다 더 중요한 것, 바로 ‘창일’. 매일 작은 일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힘이었다.
그 힘이 그의 삶을 지탱했고, 지금의 밝고 생기 넘치는 74세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우리에게 조용히 말해준다. 노년의 가능성은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시작일 수 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