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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초3 쌍둥이네 황혼육아 동행기

입력 2026-02-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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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의 황혼육아] 방학이면 더 바빠지는 할머니의 금요일

(그래픽 이은숙 기자‧AI 생성)
(그래픽 이은숙 기자‧AI 생성)

맞벌이가 일상이 된 시대, 아이들의 방학은 누군가에게 더 이른 기상 미션이 된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쌍둥이 형제의 하루는 새벽을 뚫고 김포에서 출발한 할머니의 육아로 채워진다. 윤순옥 씨의 금요일을 따라가며 오늘날 ‘황혼육아’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들여다봤다.


(사진 윤나래 기자, 그래픽 AI 기반 편집 이미지)
(사진 윤나래 기자, 그래픽 AI 기반 편집 이미지)

‘도와주는 육아’가 아니라 ‘도맡은 육아’

기자가 다윤·다인 형제 집의 초인종을 울린 시간은 오전 10시. 겨울방학을 맞은 형제의 일과는 학기보다 조금 늦게 시작한다. 그러나 쌍둥이 형제를 돌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방학이면 더욱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아이들의 엄마·아빠가 등교시키고, 할머니·할아버지가 하교 시간 전에 도착해 아이들을 맞아주는 일상에도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엄마와 아빠, 즉 윤순옥·양희동 부부의 외아들과 며느리는 오전 7시 30분이면 출근길에 오른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셔틀버스에 오르는 시간은 7시 20분경. 네 식구의 출근과 등교 준비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다.

문제는 아이들 학교가 방학에 들어가도 아들 부부는 같은 시간에 출근한다는 것. 윤순옥 씨는 방학이면 5시 30분에 일어나 6시 30분에는 아들 집에 도착하도록 채비한다. 윤 씨는 남편과 경기도 김포시에 살고 있다. 서울 마포구의 아들 집까지는 차로 오간다. 그리 먼 거리는 아니라고 하지만, 출퇴근 시간 교통체증에 걸리면 40분 거리가 2시간까지 늘어나는 것도 종종 있는 일. 몇 번의 경험 끝에 아예 출근 시간보다 일찍, 퇴근 시간보다 늦게 다니는 게 시간을 맞추지 못할까 봐 조바심 내는 것보다 낫다는 판단이 섰다.

1957년생 할아버지 양희동 씨와 1959년생 할머니 윤순옥 씨의 손주 돌봄은 어느새 10년 차에 접어들었다. 며느리가 입덧으로 고생할 때도 반찬을 해 나르곤 했으며, 2017년생인 쌍둥이의 신생아 시기부터 아들 부부와 함께 돌보기 시작했다. 양 씨와 윤 씨는 둘 다 8남매의 구성원인데, 많은 형제 사이에서 자란 터라 둘 사이에 자식은 하나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워낙 아이를 좋아했던 윤 씨뿐 아니라 남편 양 씨도 아들의 결혼 이후 오매불망 손주를 기다렸으나, 자식 앞에서는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결혼 몇 년 후 며느리가 어렵게 쌍둥이를 갖고 무사히 출산했을 때, 사돈 내외가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싶어 마음이 뭉클했다. 손주 커가는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없어 안타깝지만, 할머니·할아버지가 되어 손주들을 더욱 사랑으로 보듬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시작한 손주 육아는 아들의 유럽 연수 기간에 더욱 빛을 발했다.

작디작은 다윤이와 다인이를 동시에 키우며 분유 타 먹인 시간, 똥 기저귀 가는 시간 등을 종이에 빼곡하게 적어 내려간 신생아 시기, 이유식을 떠먹이고 걸음마를 떼던 영아기, 유치원을 졸업하던 유아기까지 손주들을 부둥켜안고 지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는 할아버지는 화·목, 할머니는 월·수·금, 아들과 며느리는 주말을 아이들과 보내는 패턴이 자리 잡았다.


▲손주의 식사와 여가시간, 학원 등원을 챙기는 윤순옥 씨.(윤나래 기자)
▲손주의 식사와 여가시간, 학원 등원을 챙기는 윤순옥 씨.(윤나래 기자)

학원과 학원 사이, 할머니의 역할

이날은 금요일로, 할머니의 육아와 할아버지의 자유시간이 있는 날이다. 아이들은 오전 11시부터 줄넘기학원에서 한 시간, 오후 2시부터 피아노학원 한 시간, 첫째만 5시부터 독서논술학원에서 한 시간을 보낸다. 윤 씨는 학원에 보내고 데려오는 틈틈이 식사 준비와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아이들이 독해와 어휘, 수학 문제집을 풀고 책도 읽고 피아노 연습을 했는지 확인한다.

다시 오전 10시로 돌아가 보자. 초인종이 울리자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다윤·다인 형제가 기다렸다는 듯 현관까지 마중 나온다. 할머니가 차려준 볶음밥으로 아침 식사를 마친 형제는 체스를 두고 있었다. “체스는 재미없어. 오목하자, 오목!” “아닌데, 체스가 더 재밌는데!” 쌍둥이지만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다른 형제는 서로 자기가 잘하는 게임을 하고 싶어 한다. 할머니는 이 둘을 중재하는 사회자가 되기도 하고, 게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가 되기도 하면서 균형을 잡는다.

10시 40분, 오늘 처음 가보는 줄넘기학원 차를 타야 할 시간이다. 아이들 체격에 맞는 옷을 찾아 입히고, 줄넘기도 주인을 찾아 손에 들려 현관문을 나선다. 놀이터를 지나자 저 멀리 노란 학원 차가 보인다. “얘들아, 차 벌써 왔다. 빨리 가자!” 손주 하나는 할머니를 앞서 뛰어가고 다른 하나는 뒤에서 쫓아간다. “오늘 몇 시에 다시 여기로 데려다주시나요?” 체육관 관장에게 시간을 확인하고 집에서 한숨 돌리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어머니, 아이들이 아직 안 나왔다고 전화가 왔었네요. 10시 40분에 집에서 나가는 게 아니라 그 시간에 타야 해요.”

새로운 학원 스케줄이 생긴 첫날인 데다 기자의 방문으로 분위기가 더욱 어수선했던 탓이다. 윤 씨는 “남편이 아이들 시간표에 맞춰 알람이 울리도록 해줬다. 그런데 줄넘기학원처럼 방학 때 잠깐 다니는 것은 며느리가 출근하면서 한 번 더 알려준다. 학원 연락처를 직접 갖고 있지는 않다. 무슨 일이 있거나 하면 며느리에게 연락이 간다”고 말했다.

아들이 인터넷으로 시켜놓은 가리비를 찜기에 올려놓고, 잠깐 유튜브로 뜨개질 영상을 찾아보는 윤 씨. 평소에는 뜨개질 거리를 가지고 다닌다. 이번 겨울에만 네 벌의 스웨터를 완성했다. 황혼육아를 졸업할 때가 되면 신나게 드럼 치는 상상을 해본다. 찜기에서 익은 조갯살을 발라내고 보니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 조개가 들었던 아이스박스를 재활용 쓰레기장에 버리고 학원 차가 도착하는 곳까지 종종걸음으로 달려간다. 아이들을 내려준 관장은 오늘 수업에서 “누구는 아주 열심히 했는데, 누구는 어려워하더라. 더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해줬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줄넘기 보관 방법 등을 일러준다. 재미 붙이고 할머니 앞에서 줄넘기를 선보이는 손주 하나와 풀이 죽은 듯한 손주 하나를 보니 뿌듯하고도 속상하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풀 죽은 손자에게 꼭 붙어 다독거리는 것도 할머니의 몫이다.


(윤나래 기자)
(윤나래 기자)

비교와 경쟁 사이, 쌍둥이 육아

손주들은 자라면서 점차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의욕적인 첫째 다윤이는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했던 기억으로 할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래서 잘 먹는 모습만 봐도 흐뭇하다. 둘째 다인이는 본디 총명하고 똑똑한 아이다. 그런데 먹는 것에는 영 흥미가 없고 사탕 같은 것을 좋아한다. 어느새 다윤이에게 덩치를 역전당하더니 공부에도 관심을 잃고 노는 일에만 흥미를 보이는 것 같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간식을 찾는 다윤이와 달리, 다인이는 빵을 한입 맛보고는 배부르다고 한다. 점심으로 준비한 파스타도 마지막은 할머니가 떠먹여 주는 것으로 마지못해 그릇을 비웠다.

“쌍둥이는 서로 친구가 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평생 비교 상대와 사는 것 같다. 그래서 아이들이 더 욕심부리기도 한다. 속상한 마음에 타이르기도 하고 다그치기도 하는데, 아이들이 ‘할머니는 다윤이 편, 할아버지는 다인이 편’이라고 하더라. 나는 친정 식구들과 떨어져 홀로 육아를 했지만, 외동아들을 키웠던 때가 지금 쌍둥이 손주 육아보다 더 쉬웠던 것 같다.”

이번에는 밖에서 축구를 하자는 손주들. 할머니가 몇 번 거들기만 해도 둘이 패스를 주고받으니 다 키워서 손 갈 일이 줄었음을 체감한다. 걸어서 5분 남짓한 피아노학원에 데려다주고 소파에 앉았나 하면 다시 또 아이들을 데리러 갈 시간. 몇 안 되는 학원 계단을 내려올 때 무릎이 불편하다. 그런 할머니의 사정을 아는지 손주 녀석들이 양쪽에서 부축하듯 손을 잡고 걷는다. 무릎 통증이 씻은 듯 사라지고 입가에 미소가 핀다.


▲손주의 식사와 여가시간, 학원 등원을 챙기는 윤순옥 씨.(윤나래 기자)
▲손주의 식사와 여가시간, 학원 등원을 챙기는 윤순옥 씨.(윤나래 기자)

하루의 끝에서 남는 여운과 의문

공기놀이를 하고 싶다는 손주 말에 조금 먼 문구점까지 즉흥적인 나들이에 나섰다. 무인 문구점에서 다윤이는 공기, 다인이는 사탕을, 둘이 같이 갖고 놀 새 축구공 하나까지 사서 돌아왔다. 공기 경력은 손주들이 할머니를 따를 수 없다. 꺾기 기술을 선보인 후 자리에서 일어나 길 잃은 로봇 청소기를 제자리에 돌려주고 걸레를 세탁기에 넣는다. 예전에 비하면 육아도 살림도 편해졌는데, 해야 할 일은 끝이 없다. 아들과 며느리는 저녁에 돌아오면 아이들이 풀어놓은 학습지며 학교와 학원 숙제를 봐주는 일로 하루를 다 보낸다. 오죽 바쁘고 힘들까 싶은 마음에 살림을 거든다. 월·수·금은 아들 집, 화·목은 본인 집 살림을 살다 보면 일주일이 금방 지나간다.

“그래도 친구들이며 지인들이 다 살던 동네에 있으니 김포가 좋지, 아들 가까이 살 생각은 안 해봤다. 오가는 게 익숙해져서 멀다는 생각도 안 든다. 쉬는 날이면 나는 노래교실에서 만나 20년을 같이했던 언니들과 수다를 떨고, 남편은 산에 갔다가 당구를 친다. 우리 부부는 자식이 하나니까 예전부터 아들하고도 네 돈, 내 돈 하는 개념은 없다. 남편이 해병대 준위로 전역해 연금이 나오고, 아들한테 신용카드도 받았다. 또 뭐든 필요한 건 말만 하면 알아서 사주니까 크게 돈 쓸 일도 없고. 다만 아들과 며느리는 번 돈 전부를 손주들 교육에 쓰는 것 같다. 자기들도 좋은 옷 사 입고 하면서 자신에게 쓰면 좋으련만.”

독서토론학원은 다윤이는 금요일, 다인이는 토요일에 간다. 마지막 학원 일정까지 하루에도 수차례 오간 놀이터는 줄곧 텅 비어 있다. 아이들은 줄넘기학원에서 앞 동 사는 친구를 만났다며 반가워했다. 아이들이 학원에 가 있는 그 잠깐이 황혼육아의 쉬는 시간이기도 하다.

황혼육아와 사교육이 없다면 요즘 아이들은 방학을 어떻게 보낼까?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를 두고 저녁 시간이 찾아왔다. 먼저 귀가한 아들과 손주들 저녁상을 차려 함께 밥을 먹고 잠깐 놀아주면, 더 늦은 시간에 며느리가 귀가해 혼자 저녁을 먹는다. 뒷정리를 마치고 떠나는 할머니에게 아이들이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해가 지고 어둑해진 오후 8시 15분. 오늘 수도 없이 바쁘게 열고 닫았던 현관문을 마지막으로 연 순간, 순옥 씨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사진 윤나래 기자, 그래픽 AI 기반 편집 이미지)
(사진 윤나래 기자, 그래픽 AI 기반 편집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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