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잇는 맛, K-푸드 '한식'] ‘지속 가능한 미식’을 말하다

장민영 아워플래닛 대표
음식은 단순히 생존의 수단이 아니라 사람과 계절, 지역을 잇는 언어다. 장민영 아워플래닛 대표는 이 단순한 진실을 오랫동안 이야기해왔다. 그는 “한 끼를 먹는 방식이 바뀌면 삶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결핍의 시대가 남긴 지혜와 손맛을 오늘의 식탁으로 되살리며 지역과 사람, 자연의 관계를 잇는 일. 그것이 그가 말하는 ‘지속 가능한 미식’의 본질이다.

결핍이 낳은 다양성, ‘한식’ 지구 살리다
‘아워플래닛’은 ‘우리의 지구’와 ‘우리의 먹거리를 계획하자’라는 중의적인 뜻을 담았다. KBS ‘한국인의 밥상’ 취재 작가로 전국을 돌며 지역의 식재료와 생산자를 만나온 장민영 대표와 세계를 오가며 요리를 익힌 김태윤 셰프가 운영하는 공간이자 브랜드다. ‘지속 가능한 미식’을 내세운 이들의 식탁에는 울릉도의 홍감자와 오징어 누런창, 섬말나리 비늘줄기가 멕시코의 에스퀴테스와 오징어 누런창 맛 홍감자가 되어 오른다. 최근에는 이런 작업을 모아 ‘로컬 오딧세이’라는 책으로 묶어 냈다.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껴요. 새벽에 일어나 밭을 돌고, 작물을 다듬거나 해조류를 채취하고, 재료를 찌고 말리거나 염장하는 등 생활 자체가 자연스럽죠.”
장 대표는 특히 ‘바다나물’을 한국 식문화의 보석으로 꼽는다.
“해조류는 우리나라의 자산이에요. 먹을수록 지구에 이로운 음식이죠. 바다에서 자라며 탄소를 흡수하기 때문에 블루카본이라 부르기도 해요. 미역·감태·뜸부기·구파래 같은 해조류는 맛과 식감이 다 다르고, 활용법도 무궁무진합니다. 된장국에 넣어도 좋고, 밥에 비벼 먹어도 정말 맛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전을 부쳐 먹는 조리법을 추천합니다.”
그는 “이런 해조류를 꾸준히 먹는 일은 곧 환경을 지키는 일”이라며 “지역의 식재료가 사라지면 맛과 음식, 종도 함께 사라진다”고 덧붙였다.
“한식의 매력은 다양성에 있어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서는 먹지 않는 식재료까지 깊이 탐구한 나라입니다.”
장 대표는 한식을 ‘결핍이 낳은 풍요’라 부른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사람들은 버릴 게 없는 식문화를 만들었다. 팥을 거둘 때면 시들어가는 팥잎을 따서 삶고 말려 된장에 무쳐 먹었던 것이다.
“뿌리부터 잎 하나까지 허투루 대하지 않는 건 절약이자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는 삶의 방식이죠. 요즘 제로 웨이스트를 새롭게 배운다지만, 사실 우리 어머니들의 밥상에 이미 다 있었어요.”
그는 이 ‘다양성’이야말로 한식의 힘이라고 말한다. “유럽 음식을 재료 본연의 맛이라고 하지만 늘 똑같아요. 소금·후추로만 양념하잖아요. 우리는 식재료와 양념, 조리법이 다양해요. 같은 된장 양념이라도 계절마다 다른 재료가 들어가죠. 이게 얼마나 풍요로운 일인지 몰라요. 그런데 지금은 어느 백반집을 가도 같은 반찬, 같은 맛이죠.”
그는 산업화의 속도가 ‘다양성’을 삼킨 시대변화를 안타까워한다. “김치도 계절마다 달라질 수 있고, 같은 양념에 다른 재료를 넣으면 완전히 새로운 나물이 되는데, 귀찮다는 이유로 포기하는 것 같아 아쉬워요. 입맛이 단조로워지고, 종 다양성도 줄고, 결국 지구 생태계까지 위태로워지니까요.”

시니어의 밥상, 나를 아끼는 시간이어야
시니어 세대의 식탁은 쓸쓸한 풍경이 되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부지런히 가족의 식사를 챙기던 사람도 가족이 떠나면 상차림에 의욕을 잃고 끼니를 대충 때우기 때문이다. 이런 ‘귀찮음’, ‘의욕 결핍’이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
그는 “냉동실에서 꺼내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육류나 가공식품은 빈자의 음식”이라고 했다. 다만 경제적 빈부가 아닌 삶의 여유와 감각의 격차라고 강조한다.
“시간과 에너지, 마음이 부자여야 제철 식재료를 신선하게 다듬고 먹을 수 있어요. 예전엔 생존을 위해 끼니를 챙겼다면, 이제는 미식을 즐길 수 있는 시대잖아요. 재료를 다듬는 그 순간이야말로 감각을 깨우고 나를 돌보는 시간이에요.”
장 대표에게 음식은 ‘노동’이 아닌 ‘삶을 느끼는 행위’다. 그는 “계절을 놓치고 사는 건 너무 슬픈 일”이라며 “봄에는 냉이, 여름엔 가지, 가을엔 버섯, 겨울엔 해조류. 그 변화의 리듬을 따라 사는 게 진짜 풍요”라고 덧붙였다.
그는 오랫동안 지역 복지관과 연계해 독거 어르신과 거동이 불편한 이들, 한부모 가족을 위한 도시락 봉사에 참여해왔다. 봉사할 때마다 누군가 정성껏 차려주는 음식을 전달함으로써 자신을 돌보는 힘을 되찾길 바라는 응원의 마음을 꽉꽉 눌러 담는다는 그다.
한편 세대 간 미각의 단절에 관해서도 깊이 공감했다.
“황혼육아를 하는 어르신들이 요즘 아이들은 피자·치킨·고기만 좋아하고, 할머니들이 ‘내가 한 건 애들이 안 먹는다’며 위축된다면서요? 할머니들이 지켜온 손맛이야말로 아이들에게 전해야 할 유산인데 말이에요. 고추지름장(고추장물)이나 두부전처럼 쉽고 건강한 음식으로 ‘입맛의 다양성’을 알려주는 게 중요하죠.”
그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는 어릴 때부터 미각 교육을 받아요. 원재료를 직접 만지고 냄새를 맡으며 배워요. 한국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다양한 맛을 경험하게 해야 해요. 그래야 음식의 즐거움과 감사함을 배울 수 있죠”라며 교육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한편 나이 들수록 요리에 부담을 느끼는 시니어들에게는 “밀키트를 활용해도 좋다”며 “반찬 밀키트를 이용하고, 밥만 제철 재료를 넣은 솥밥으로 바꾸면 훨씬 건강한 식탁이 된다”고 덧붙였다.
“요즘은 전기밥솥으로도 충분히 맛있게 할 수 있어요. 밥을 다 짓고 나서 버섯을 찢어 넣거나, 초당옥수수만 올려도 정말 맛있어요. 제철 재료 하나만 얹어도 밥이 달라집니다. 백령도 굴은 알이 작아서 밥이 다 된 뒤 잔열로만 익혀도 충분해요. 갓 지은 밥 위에 굴 한 줌 넣고 양념장 살짝 얹어 비비면 그게 바로 제철의 맛이에요. 손이 많이 가지 않으면서도 자연의 향이 그대로 살아 있죠.”

음식은 관계의 예술, 같이 먹어야 더 맛있다
그는 ‘지속 가능한 미식’을 단순한 환경 담론이 아닌 ‘관계의 예술’이라 정의했다.
“우리가 먹는 건 자연에서 왔고, 누군가의 손을 거친 거예요. 그 연결을 의식할 때 비로소 맛이 살아나고 먹는 일이 즐거워집니다.”
아워플래닛은 매년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하는 ‘필드 트립’을 기획한다. 도시 소비자들이 지역 농가를 찾아 양파를 뽑고 미역을 말리는 등 지역 주민과 함께 밥상을 차리는 프로그램이다. 최근에는 ‘로컬이 신세계’라는 미식 여행 프로젝트를 통해 남도의 정원, 명창과 장인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프로그램에 참가한 70대 어르신들이 새벽에 산책하고, 아침을 직접 챙겨 드시고, 시장에서 제철 재료를 고르는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젊은 세대보다 삶의 리듬이 훨씬 건강했죠. ‘나’를 아끼고 소중하게 대하는 삶의 모습이 얼마나 멋있는지 배우는 기회가 됐어요.”
그들은 시장에서 무화과·서대·보리순 같은 재료를 사서 집에서 어떻게 요리해볼까 서로 이야기했다.
“그게 진짜 미식이에요. 이름난 맛집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제철 재료를 발견하고 궁금해하고 요리해보는 과정은 탐식과는 분명 다릅니다. 미식은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관계를 복원하려는 마음이죠. 서로 얼굴을 알고, 그 사람의 손에서 온 재료를 먹는다는 건 신뢰를 의미하고요.”
장 대표는 음식의 미래를 ‘느림의 미학’에서 찾는다. “빨리, 싸게, 많이가 아니라 천천히, 제철에, 정성껏. 그게 진짜 미식이고 한식이에요. 예전에는 살기 위한 노동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느리게 먹는 게 오히려 잘 사는 기술이 됐어요.”
그는 또 “로컬은 트렌드가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기후변화와 자원 불균형 시대에 로컬을 지켜온 지역 어르신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어요. 이분들이 떠나면 그 맛만 사라지는 게 아니라 우리 문화와 지식이 사라집니다. 전통이니까 그대로 보존하는 게 아니에요. 미래의 식량 체계를 재설계하는 일이고, 우리와 다음 세대를 지키는 일입니다.”
인터뷰 내내 지역의 생소한 식재료와 음식들을 끝없이 읊어대던 그는 “맛있는 건 같이 먹어야 더 맛있어요. 혼자 먹는 밥도 좋지만, 누군가와 ‘이거 너무 맛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제 인생의 행복이에요”라며 한껏 웃었다.
그에게 음식은 미식의 끝이 아니라 공감의 시작이다. “지속 가능한 미식이란 거창한 게 아니에요. 제철 재료를 아끼고, 그걸 만든 사람을 기억하고, 함께 나누는 일. 그게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인간적인 문화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