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Issue] 교문 밖, 또 다른 교실을 향해

3월 입학식이 새출발의 상징이라면, 이에 앞선 ‘졸업식’은 한 시절을 잘 갈무리하고 다음 단계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다. 마지막으로 익숙한 교문을 나서는 순간, 졸업생들은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한다. 거창 아림고등학교에서 열린 만학도반 졸업식도 그러했다. 평균 연령 일흔을 훌쩍 넘긴 졸업생들은 빛나는 졸업장을 품고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섰다.

졸업, 다시 시작할 용기를 건네는 날
졸업식장에는 두 가지 감정이 겹친다. 끝났다는 안도감과 다시 시작하는 설렘이다. 입춘이 지나 봄기운이 느껴진 2월 5일, 경남 거창의 아림고등학교 체육관에서도 그런 시간이 흘렀다. 이제 막 성인이 된 풋풋한 졸업생들 곁에 파마머리를 정성껏 말아 올린 할머니 열 분과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 있다. 아림고 만학도반 3학년 졸업생들이다. 평균 연령은 일흔이 훌쩍 넘었지만, 3월이면 만학도반(3학년 4반) 11명은 모두 대학 새내기가 된다.
졸업식은 감동의 서사로 채워졌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손을 맞잡으며 이 자리를 함께한 만학도반 친구들, 옆 반의 젊은 친구들과 축하 인사를 나눴다. 교사들과 졸업식장을 찾은 가족•지인을 향한 감사도 빠뜨리지 않고 전했다. 졸업생 사이에서는 “입학했을 때가 생생한데, 이런 날이 오네”, “정이 깊이 들었는데 떠난다니 믿기지 않는다”라는 말이 오갔다.
이날 졸업식에서 1945년생 하성원 씨가 만학도반을 대표해 인사말을 건넸다. 같은 반 동창생들은 “글 참 잘 썼다” 하며 그의 인사말에 공감을 나타냈다. 하 씨는 반에서 유일하게 평생교육 전형이 아닌 수시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한 인물이다. 아림고 입학 전 그는 건축 현장에서 일했다. 현장과 기술에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지만, ‘조금만 더 배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손으로 도면을 그리던 세대라, CAD(컴퓨터로 설계 도면을 작성하는 프로그램)가 어려웠죠. 그래서 2학년 때는 라인댄스, 스포츠댄스 등으로 진로를 바꾸려고 해봤는데 마지막 학년이 되니까 그 선택은 아무래도 내 길이 아니다 싶어요. 그래서 대학 건축 동아리의 문을 두드려 CAD를 익혔죠.”
그가 말한 대학은 아림고등학교와 길 하나를 두고 이웃한 국립창원대학교 거창캠퍼스(구 경남도립거창대학). 아림고 만학도반 대부분은 평생교육 전형으로 이 대학 귀농귀촌학과에 진학한다. 하 씨는 고등학교 내신 점수와 면접 전형을 거쳐 ‘건축과’에 진학했다. “면접이야 뭐, 일등이지. 이 일만 50년 넘게 한 걸.” 자신감을 드러내는 그의 미소 뒤에는 미래를 향한 밑그림이 있다. 실무 경력에 대학 과정 이수를 더해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겠다는 것. 그는 “못 써먹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죠”라고 말했다.
양금순 씨는 졸업식 내내 가장 많이 눈가의 눈물을 훔친 주인공이다. 단 한 번도 결석하지 않고 학교에 나와 3년 개근상을 받았다. 양 씨는 “가족을 일찍 떠나보냈다”는 말에 긴 이야기를 덧붙이지 않았다. 그저 “매일 아침 내가 갈 곳이 있다는 사실이 참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에 오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몸소 보여줬다. 학교에서 반 친구들과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상이 그에게는 단단한 버팀목이었다.
졸업식 직후 종례를 위해 교실로 향하던 이연식 씨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다른 데서 노느니, 이렇게 학교 나오고 또 대학에 가는 게 훨씬 낫지.”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판단이 담겨 있었다. 어디서 어떤 시간을 보낼 것인가는 나이와 상관없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
박근영 담임교사는 교실에서 마지막 종례를 진행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교직 생활 20년이 넘었는데, 학생들에게 배운 것이 너무나 많다. 만학도반을 맡아 영광”이라며 졸업생들을 격려했다. 기자에게는 “배움의 기회가 간절했던 분들이고, 학교와 선생님을 향한 존중이 누구보다 깊은 학생들이다. 어릴 적 길러주셨던 할머니 사랑을 다시 받는 듯했다”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만학도들이 만든 특별한 관계는 졸업식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만학도반의 2학년 담임을 맡았던 김현준 교사는 다른 지역으로 전근을 갔으나 특별한 학생들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졸업식에 참석했다. 교과 과목 교사들 또한 “만학도들에게 삶과 사랑을 배웠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화답하듯 졸업생 신용숙 씨는 “이제 교사와 학생 신분이 아니니, 고마웠던 선생님들께 꼭 맛있는 한 끼를 대접하고 싶다”는 인사를 전했다.
또 같은 학년의 젊은 학생들은 만학도반 학생들을 “솔선수범으로 모범이 되어준 인생 선배들”이라고 표현했다. 이들과 만학도의 자연스러운 관계는 서로를 향한 환호와 하이파이브 등 스스럼없는 제스처에서 엿보였다.
졸업식은 그렇게 끝났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다른 이에게 변화의 씨앗을 심었다. 지나가던 교사에게 “어떻게 하면 만학도반에 들어갈 수 있냐”고 물어보는 한 할머니의 모습에서, 손녀가 졸업한 학교에 진학하는 새로운 만학도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다.

학교는 어떻게 만학도에게 문을 열었나
만학도반 졸업생들이 고등학교 졸업을 넘어 대학 신입생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배경을, 개인의 사연이 아닌 학교와 지역이 함께 설계한 교육 구조의 관점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옥철종 아림고등학교 교장과 만학도반 운영의 배경과 구조, 그리고 그 의미를 살펴봤다.
만학도반의 출발점은 지역과 교육의 현실에 있었다. 학교의 학생 수는 점차 줄어드는 한편, 고령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고령자 중에는 이제라도 배움을 통해 본인의 삶에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거창군 평생교육 문해교육 과정을 통해 중학교 졸업 자격을 취득한 어르신들 가운데 고등학교 졸업, 나아가 대학 진학까지 꿈꾸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평생교육 체계에는 고등학교 졸업으로 이어지는 공식 경로가 없고, 선택지는 검정고시뿐이었다.
옥철종 교장은 이 지점을 만학도반이 출발하게 된 결정적 배경으로 짚었다. 이들은 “단순한 학위 취득이 아니라,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고 싶다는 바람이 크다”는 것이다. 이에 거창군이 학교에 만학도반 개설 가능성을 타진했고, 아림고는 교직원 논의를 거쳐 만학도반 개설을 수용했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의 행정적 지원도 따랐다.
물론 만학도반의 운영 과정은 쉽지 않았다. 노안으로 인한 시력 저하, 무릎 통증 등 신체적 어려움은 많은 학생이 공통으로 겪는 문제였다. 학교는 교실 환경을 개선하고 이동 동선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학습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교육과정도 재구성했다. 여기에 디지털 문해력 교육과 심리적 지지를 위한 상담 프로그램을 병행하며, 학습의 끈을 놓지 않도록 지원했다.

‘가족형 학교 공동체’로 지역 소멸에 대응
이처럼 고령 학습자가 늘어나는 사회에서 학교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옥철종 교장은 고등학교가 더 이상 10대만의 공간이 아니라, 전 생애주기 교육을 지원하는 지역 평생교육의 거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인구 감소로 학교 소멸이 당면 과제가 된 지역에서 만학도반은 학교와 지역을 함께 지탱하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만학도반은 단순한 성인 교육과정과는 성격이 다르다. 학교는 교실 공간만 제공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반 학생들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구조를 택했다. 젊은 학생들과 만학도들이 일상을 공유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옥철종 교장은 이를 ‘세대 융합형 교육 모델’로 설명한다. “젊은 학생들은 어르신들의 성실함과 예절을 배우고, 만학도들은 아이들에게서 활력을 얻는다. 핵가족 사회에서 점점 희미해진 세대 간 돌봄과 교류가 학교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며 학교의 분위기를 전한다. 청결, 예절, 태도에서 어르신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젊은 학생들뿐 아니라 교사들에게도 귀감이 된다. 학교는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을 넘어, 서로 다른 세대가 삶의 경험을 나누는 ‘지혜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이 같은 구조는 만학도반의 진학 성과로도 이어졌다. 첫 기수였던 지난해 졸업생 16명은 전원 대학에 진학했고, 올해 졸업생 역시 전원 대학 진학에 성공했다. 교장은 이 결과를 단순한 학력 취득으로 보지 않는다. ‘이 나이에 배워서 어디 쓰냐’는 주변의 편견이나 자기 체념에서 벗어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확산했고, 그 과정에서 만학도반 학생들은 학습 효능감과 자신감을 쌓았다.
3월, 만학도반 1학년이 새로이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온다. 옥철종 아림고 교장은 이들에게 이렇게 전한다.
“어르신들, 아림고등학교의 문턱은 낮지만 그 안에서 품게 될 꿈의 크기는 무한합니다. 글자 하나, 숫자 하나와 씨름하며 보낼 시간이 여러분의 남은 생을 가장 찬란하게 빛내줄 것입니다. 저희는 여러분 손에 들린 펜이 멈추지 않도록 끝까지 함께 걷겠습니다. 당당하게 들어오십시오. 여러분은 우리 학교의 가장 큰 자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