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살고 싶은가] 고령자, 건강하다면 계속거주 원해

고령자에게 집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다. 낮은 문턱과 안전한 욕실, 병원과의 접근성, 익숙한 이웃과의 관계까지, 삶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조건이 된다. 초고령사회에서 주거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과 존엄의 문제다. 각종 통계를 통해 꽃중년이 원하는 노후 주거의 현실을 짚어보고, 우리 사회가 준비해야 할 방향을 살펴본다.
고령자,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


통계청의 고령자 통계(2023년)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950만 명이었으며, 가구주 연령이 65세 이상 고령 가구는 549만 1000가구로 전체 가구의 25.1%를 차지했다. 유형별로는 1인 가구(36.3%)가 가장 많았고, 부부 가구(35.3%), 부부+미혼 자녀(9.2%), 부(모)+미혼 자녀(5.5%) 순이었다.
고령자의 현재 거주지에 대한 만족도는 어떨까. 국토교통부의 ‘2024년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령 가구의 주거 안정성과 주거 수준은 전반적으로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자가 점유율은 상승했고, 최저주거기준 미달 가구 비율은 감소했다.
특히 고령 가구의 가장 큰 특징은 높은 자가 거주 비율이다. 자가 점유율은 75.9%로 일반 가구(58.4%), 청년 가구(12.2%), 신혼 가구(43.9%)를 크게 웃돌았다. 단독주택 거주 비율 역시 39.2%로 가장 높았다.
주거비 부담 지표도 다소 완화됐다. 자가 가구의 연 소득 대비 주택 가격(PIR)은 9.1배로 전년 대비 소폭 감소했고, 임차 가구의 월 소득 대비 월 임대료(RIR)도 25.4%로 낮아졌다. 고령 가구의 소득수준은 낮지만 체감 주거비 부담은 다른 특성 가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었다.
주거 지원 수요에서도 방향성은 분명했다. ‘주택 구입 자금 대출 지원’(26.8%), ‘주택 개량·개보수 지원’(20.6%), ‘전세자금 대출 지원’(15.3%) 순으로 응답했다. 이는 새로운 주거지 탐색보다는 현재의 집을 유지·개선하려는 성향이 강함을 보여준다.
건강이 기준이 되다

KB금융그룹의 ‘KB골든라이프 보고서(2025)’는 노후 주거에 대한 인식과 선택 기준을 비교적 선명하게 보여준다. 전국 주요 도시에 거주하는 25~74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응답자들은 건강상태에 따라 노후 주거 선택을 달리 인식하고 있었다.
응답자의 85.4%가 건강할 때는 ‘살던 집 거주’를 선택했다. 노후에 거동이 어려워질 경우에는 응답자의 63.9%가 요양시설로 옮겨 돌봄 지원을 받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건강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평균 78.3세까지는 ‘살던 집’에서, 79.2세까지는 ‘살던 동네’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 응답했다.
시니어 전용주택 인지도는 비교적 높은 편이었다. ‘실버타운’(80.6%), ‘노인요양시설’(79.7%), ‘양로시설’(67.5%) 등은 응답자의 3분의 2 이상이 알고 있다고 답했다. 선택 기준을 보면 현실적인 고민을 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시니어 전용주택 선택 기준에서는 ‘가격 및 비용 부담’(60.4%)과 ‘의료·돌봄 연계 서비스’(50.6%)를 가장 중요하게 꼽았다.
주택 다운사이징에 대한 응답 역시 흥미롭다. 응답자의 59.7%가 향후 다운사이징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반대로 15.2%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으며, 그 이유로 ‘현재 라이프스타일 유지’(35.5%), ‘현재 거주 지역 유지’(29.2%)가 상위를 차지했다. 특히 60~70대에서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강했다.
결국 조사 결과는 한 가지 흐름으로 수렴한다. 건강이 유지되는 한 기존 주거를 선호하고, 돌봄이 필요해지는 시점이 돼서야 이동을 고민한다는 점이다. 노후 주거의 핵심 질문은 ‘어디로 옮길 것인가’가 아니라, ‘지금 있는 곳에서 어떻게 안전하게 나이 들 것인가’에 가깝다.
살던 곳에서 계속 살고 싶다

여러 통계가 보여주듯 고령자 다수는 노후의 주거 대안으로 새로운 시설이나 낯선 지역을 택하기보다, 지금 살고 있는 집과 동네에 머무는 삶을 원한다. 이는 노후에 친숙한 주거 환경과 지역사회 안에서 나이 들고 삶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경향, 이른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 AIP) 수요가 높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토연구원이 2024년 발표한 ‘고령자의 지역사회 계속거주, 무엇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보고서에 따르면 현 거주지에서 3년 이상 거주한 전국 60세 이상 고령자 847명 중 85.5%가 계속거주 의향을 밝혔다. 건강상태에 따른 계속거주 의향, 실제 이주 가능성 등을 묻는 유사 질문에서도 과반수가 AIP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KB골든라이프 보고서(2025)’ 역시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살던 집이나 동네에서 계속 살고 싶다’는 문항에 80.4%가 동의했으며, 이는 2023년(66.1%)보다 14.3%p 증가한 수치다. 특히 여성(85.0%)이 남성(77.2%)보다 높은 동의율을 보였다.
AIP에서 말하는 ‘동네’는 단순한 행정구역이 아니다. 응답자의 39.2%는 ‘도보 30분 이내’의 생활권을 동네의 물리적 범위로 꼽았다. 심리적 범위 응답을 보면 편의점과 병원의 위치를 알고, 친구가 근처에 살며, 소속감을 느끼는 공간이 바로 ‘머물고 싶은 지역’이었다.
다만 AIP를 실현하는 데 가장 큰 우려 요인으로는 ‘나 또는 가족의 건강 악화로 인한 간병 상황’(34.8%)이 지목됐다. 근거리 외출(21.4%), 집안일(21.1%), 집수리(17.9%) 등 일상생활의 자립을 저해하는 요소도 주요 부담 요인으로 나타났다.
지금의 집을 지키는 방법

그렇다면 고령자가 지역사회에 계속 머물기 위해 가장 필요한 지원은 무엇일까.
국토연구원 조사 결과, ‘주택 유지·관리 서비스’(52.5%)와 ‘주택 환경 개조’(49.1%)가 가장 높은 응답률을 기록했다. KB 보고서에서도 주택 개조 항목 중 ‘욕실 바닥 미끄럼 방지’(63.7%)와 ‘욕실 내 난간·손잡이 설치’(49.5%)가 상위를 차지했다. 난간 설치, 문턱 제거, 단차 해소 등 안전설비에 대한 요구도 높았다.
국토연구원은 AIP를 위해 주거·돌봄·지역 환경을 아우르는 통합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주택 개조와 유지·관리 지원을 확대하고, 주거와 서비스가 결합된 고령자 지원 주택 모델을 발굴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의료·생활·교통 인프라가 일상생활권 안에서 작동하는 접근 가능한 지역사회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방향은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정책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추진하는 ‘고령친화도시’ 역시 같은 맥락이다. 고령자가 살던 지역에서 안전하고 존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주거·교통·의료·사회참여를 통합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고령자의 주거는 이제 ‘시설을 얼마나 늘릴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익숙한 공간에서 안전하게 나이 들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초고령사회가 된 지금, 주거는 복지의 영역을 넘어 삶의 기반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