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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과 맛 꼼꼼하게 챙겨”… 5060 미식 중년이 뜬다

기사입력 2025-03-11 08:48

건강 추구, 핫플서 줄서기까지… 경제적·시간적 여유 여가에 집중

(어도비 스톡)
(어도비 스톡)

영화나 드라마에서 등장만으로도 작품에 집중하게 하는 인물을 ‘신스틸러(Scene Stealer)’라고 한다. 외식업계에서는 그간 주요 고객층을 20~40대라고 여겼으나, 지난해부터 10대와 50~60대 소비자가 증가하고 있다. 이들을 ‘식(食)스틸러’라고 하는데, 50~60대 중년은 특히 ‘미식 중년’으로 정의되며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중년은 집에서 밥 해 먹는 것을 선호한다’는 기존의 인식이 있었지만, 현재의 액티브 시니어는 이와 반대되는 양상을 보인다.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선호하고, 젊은 세대 못지않게 맛집 탐방을 즐긴다. 또한 밀키트, 배달 주문 등 효율성을 추구한 간편식 소비도 늘었다. 배달의민족에 따르면, 지난 3년간 50~60대 앱 사용자는 약 1.5배 증가했다.

미식 중년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젊은 시절부터 먹는 것을 좋아하고 맛집 탐방을 즐기던 ‘미식 마니아형’이다. 가수 성시경이 이에 해당한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성시경의 먹을텐데’를 통해 맛집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다른 유형은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생겨 먹는 즐거움을 새롭게 발견한 ‘미식 입문형’이다.

▲소셜 커뮤니티 ‘시놀’의 와인 모임 풍경.(이준호 모임장)
▲소셜 커뮤니티 ‘시놀’의 와인 모임 풍경.(이준호 모임장)

건강 추구하는 미식 중년

지난해 8월 NH농협카드는 ‘소비 트렌드 Insight 보고서-액티브 시니어 고객의 카드 소비 현황’을 발간했다. 이에 따르면 액티브 시니어가 소비를 가장 많이 한 업종은 ‘음식점’이었다. 2024년 2분기 이용 금액은 1조 6000억 원에 달했다. 1위는 한식으로 선호도가 72.1%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또한 전년 대비 패스트푸드점은 11.7%, 뷔페는 12.1%로 높은 증가세를 보여 눈길을 끌었다.

미식 중년은 식사 메뉴를 고를 때 건강을 많이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한 식단이 노화를 늦추고 만성질환을 예방한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된 결과로 보인다. 실제 2023년 11월 배달의민족 고객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맛보다 건강이 중요하다’고 답한 응답자 비율은 50대 이상이 45.3%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40대 36.7%, 30대 27%, 20대 21.5%, 10대 12.8%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미식 중년은 채소가 들어간 음식, 기름기 적은 음식,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의 균형을 고루 갖춘 음식, 너무 맵거나 간이 세지 않은 음식, 소화 잘되는 음식을 선호하고, 원산지도 확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요리 경력이 많은 여성일수록 어떤 재료를 쓰는지, 몸에 건강한 음식인지 판단하는 기준이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랜드이츠의 한식 뷔페 레스토랑 ‘자연별곡’은 이러한 미식 중년의 소비 트렌드를 반영해 매출 증가를 이끌었다. 지난해 5060세대 중심 메뉴로 샐러드바를 개편한 것. 소화가 어려울 수 있는 튀김 요리 수는 축소하고, 먹기 편한 찜과 구이 메뉴 수를 늘렸다. 이에 50대 이상 소비자 비중이 2023년 4분기 38.9%에서 2024년 1분기 42%, 2분기 42.5%로 점점 증가했다.

전현진 한국폴리텍대학 외식조리과 교수는 “과거의 중장년층은 내가 아닌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산다는 경향이 강했는데, 현재의 시니어는 내가 제일 중요하다는 가치관이 정립되어 있다. 내가 집밥 먹기 싫고 외식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는 거다. 나를 위한 가치 소비를 하고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어도비 스톡)
(어도비 스톡)

핫플 줄서기도 가능

미식 중년의 또 다른 특징은 디지털 환경에 빠르게 적응했다는 점이다. 배달의민족을 활발하게 이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젊은 층처럼 SNS를 통해 핫플을 접하고, 그곳을 찾아가 줄서기를 하고, 웨이팅 앱을 사용하기도 한다. 2023년 11월 배달의민족 고객 중 50대 이상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데이터에 의하면, ‘SNS를 통해 식당 정보를 찾아본다’는 응답이 70.3%로, ‘찾아보지 않는다’는 응답(29.7%)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또한 ‘웨이팅 앱, 예약·줄서기 서비스 인지 여부’에 대해서도 67.7%는 알고 있다고 답했다. 웨이팅 앱에서는 식당 예약 및 원격 줄서기 등의 서비스를 제공해 이용자들의 줄서기 피로도를 줄여준다. 국내 웨이팅 앱의 대표 주자는 캐치테이블과 테이블링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기준 두 앱의 이용자는 약 200만 명으로 확인됐다.

실제 이용률은 어떨까. 물론 20~30대 이용자가 가장 많지만, 중년 이용자 또한 증가 추세다. 지난해 7월 기준, 캐치테이블 50대 이용자는 10.6%, 60대는 1.4%였다. 테이블링은 60대가 6.6%, 50대가 5.3%로 집계됐다.

전현진 교수는 “액티브 시니어는 경제적·시간적 여유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을 즐긴다”며 맛집을 찾아다니는 중년이 많아지는 이유를 짚었다. 젊은이들은 맛집을 다녀왔다고 SNS에 인증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미식 중년은 새롭고 재밌는 경험을 통해 여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활동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인다.

즉 미식 중년은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넘어 특별한 경험과 가치를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프리미엄 식재료를 사용한 고급 레스토랑에 가기도 하고, 특별한 분위기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을 선호한다. 또한 셰프의 철학, 음식에 담긴 스토리, 서비스 품질 등 무형의 가치에도 주목하는 경향이 강하다.

전현진 교수는 “미식 중년이 되고자 한다면 그 첫걸음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그 지역의 대표적인 로컬푸드를 먹어보길 추천한다. 그리고 유튜브, 블로그 등 SNS를 통해 경험을 공유해야 한다”라면서 “음식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소통이 미식가로서의 기본적인 면모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와인 모임 운영하는 이준호 씨 “미식 중년, 대화 잘 통해”

50세 이상 소셜 커뮤니티 시놀의 와인 모임장인 이준호 씨는 서울 연희동 레스토랑 와인률연희의 사장이기도 하다. 독일에서 오페라 가수로 20년간 지낸 그는 귀국 후 아지트가 필요해 공간을 마련했다가, 식당을 운영하게 됐다.

“독일에서 여러 음식과 와인을 많이 먹고 마신 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식당에서 맛있게 먹은 음식을 집에서 따라 만들어보면 어느 정도 맛이 구현되더라고요. 요리를 배워본 적은 없지만 감각으로 하는 거죠. 그리고 분기별로 독일 친구들을 집에 불러서 파티를 했어요. 어느 순간 파티 날만 기다리던 친구들이 ‘식당 차려라’고 말하기도 했죠.”

서울 연희동은 대학가 특성상 젊은 손님이 많다. 동년배와 소통하고 싶었기에 이준호 씨는 시놀에 와인 모임 ‘시니어 코르크 소사이어티’를 개설했다. 현재 모임에 가입한 회원은 130명이 넘는다. 그는 “우리 모임을 와인 클래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와인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베이비부머 세대인 저희는 어릴 때 삶이 풍요롭지 않았어요.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면서 살아온 결과, 현재는 사회적인 지위와 경제적인 자유를 갖게 됐죠. 그러다 보니 맛있는 걸 먹고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미식 중년이 많아진 것 같고, 살아온 삶이 비슷하기에 동년배들이 모이면 대화가 잘 통합니다.”

식당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준호 씨는 직접 국내외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그는 자신만의 맛집 기준에 대해 “와인 원가를 웬만해서는 알고 있다. 그래서 좋은 와인을 합리적인 금액에 제공하는지를 본다”면서 “그런 식당은 음식도 맛있더라. 그만큼 손님을 배려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탈리아 토스카나 와인을 좋아한다고 개인적인 취향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미식가로 인정받으려고 노력하면 미식가가 아닌 것 같다. 스스로 자신을 미식가라 생각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맛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밝혔다. 이와 함께 와인과 친해지는 노하우를 전했다.

“첫 번째, 절대로 비싼 와인부터 마시지 마세요. 1만 원대 와인부터 마시길 추천합니다. 한 1년 정도 쭉 마셔보면서 내가 어떤 맛, 어떤 나라의 와인을 좋아하는지 추려보세요. 2단계는 그 나라의 조금 비싼 와인을 마셔보는 겁니다. 그리고 3단계는 그 와인과 비슷한 다른 나라의 와인을 찾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와인의 지평을 넓혀가는 거죠. 처음부터 좋은 와인을 마시려고 하면 그 개념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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