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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유도하는 친절한 정원… 전남 해남군 ‘문가든’

기사입력 2025-05-09 08:32

[민간정원 순례] 호수 곁에 둔 물 정원의 경치 아름다워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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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가든? 아, 좋지. 직접 가보소. 말이 필요 없네!” 해남에 사는 지인에게 들은 말이 그랬다. 해남엔 민간정원이 서너 개 있는데 그중 문가든이 좋다고 했다. 좋은 정원이란 어떤 걸까? 다채로운 수종들의 경연을 볼 수 있는 화려한 정원? 인공의 개입을 자제한 대신 야생성을 돋운 정원? 나무들과 마주 앉아 우아한 대화를 나눌 만한 벤치가 있는 친절한 정원?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정원의 모습이 다를 것이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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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좋지 않은 정원은 없다. 조성 양식과 개성이 서로 다를 뿐,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식물들의 치열한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모든 정원은 진귀하다. 의미심장한 공간이다. 생명의 전당이다. 사는 일의 피로와 고통으로 녹초가 된 사람도 정원의 나무들을 만나 생기를 회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니 어찌 아니 좋으랴. 정원이 있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문가든으로 들어서자 일변 음악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큰 나무와 작은 나무, 그리고 앙증맞은 초본식물들이 사이좋게 어울려 밝디밝은 노래를 합창하는 것 같은 명랑한 분위기를 풍긴다. 노래 제목은 두말할 것 없이 ‘봄’이다. 계절은 지금 만물이 생동하는 초봄이지 않은가. 뒤끝 있는 겨울이 한바탕 꽃샘추위를 몰고 왔지만, 그래도 봄은 여지없이 다시 돌아왔다. 그래 나무들은 기쁜 악곡을 연주한다. 비발디의 ‘사계-봄’은 저리 가라다. 청순한 기운이 진동하는 음악을 소리가 아니라 표정으로 연주한다. 이 발랄한 합창단원들의 발그레한 볼엔 촉촉한 물기가 서려 있다. 그들이 입은 유니폼의 빛깔은 순하고 여린 연둣빛이다. 지휘는 누가 하나? 따스한 햇살을 내려보내는 태양, 허공에서 살랑거리는 산들바람, 그리고 훈김을 뿜는 대지다. 천지가 하나 되어 선율을 만들어낸다. 이쯤이면 웅장한 협업 무대다. 사람을 열광시키고도 남을 공연이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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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희망적으로 보이는 건 대개 이런 곳에서다. 그렇다면 설령 엉성한 정원이 있을망정 사실상 아무런 결함이 없다. 그 역시 도도한 자연의 순환을 어김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달픈 삶을 모처럼 긍정의 눈으로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모든 정원은 이렇게 선한 역할을 한다. 정원만 그런 건 아니다. 정원만 정원이랴. 서너 개의 화분이 덩그러니 놓인 아파트 베란다도 정원일 수 있다. 손바닥만 한 텃밭도, 농부의 볏논도 유심히 들여다볼 경우 지리산 사이즈에 맞먹을 대자연일 수 있다. 인간이 지닌 가장 위대한 재능인 상상력을 광폭으로 넓힐 수만 있다면 말이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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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역사는 길다. 예부터 정원을 즐긴 이들이 숱했다. 그래도 조선 선비들만큼 수준 높은 정원을 즐긴 이들은 드물다. 선비들은 문사철(文史哲)을 들입다 팠지만, 정원에서 풍류를 즐기는 일에도 도가 텄다. 이를테면 거대한 학문의 포식자이자 불굴의 강철 인간 다산 정약용은 강진 유배지에서도 원림(園林, 조선시대 정원)을 꾸려 유유자적했다. 서양에서는 소설가 헤르만 헤세가 유명하다. 그는 평생 정원을 허리춤에 달고 살다시피 했다. 거처를 옮길 때마다 정원을 만들었으니까.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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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는 정원을 ‘영혼의 안식처’라고 했다. 정원의 나무들을 ‘가장 깊은 감명을 주는 설교자’라고 썼다. 정신의 갈증과 갈등을 정원에서 해결했다. 그는 특히 홀로 서 있는 나무를 주목했다. 이런 문장이 있다. ‘나무는 고독한 사람과 같다. 나약하게 현실에서 도피한 은둔자가 아니라, 베토벤이나 니체처럼 스스로 고독을 선택한 위대한 사람을 닮았다.’ 고독이라면 헤세도 한가락 했다. 신경질환을 겪거나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던 이 삐딱한 영혼은 나무와 자신이 동류임을 알아보았던 게 아닐까. 고독에 내재한 단단한 자아. 세상의 카오스에 휘둘리지 않을 도저한 자존감. 헤세는 정원의 고독나무가 지닌 밑변의 그 강인한 정신을 예찬하는 한편, 손잡을 만한 인생의 길동무로 바라봤다.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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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가든의 산책로는 리드미컬하다. 활처럼 거듭 휘어지며 정원의 모든 곳으로 인도한다. 서쪽 둔덕에 이르면 호수가 보인다. 이 호수를 고려하면 문가든은 물 정원이다. 초록 물빛이 밀려드는 정원이다. 저만치 멀리에 있는 수면엔 산그림자 드리워져 있다. 하늘엔 구름의 대열이 흘러간다. 산책로는 꽃밭으로 이어진다. 숲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그곳이 숲인 건 그냥 그대로 놔둔 수목들이 거주하는 촌락이기 때문이다. 가꾸지 않아 무성하고, 무성해서 풍요로운 곳이다. 발길은 때로 이런 곳에서 더 오래 머물곤 한다. 모든 부자연스러운 것에 식상했을 때, 내 안에 남은 자연을 검열하게 될 때, 바로 그런 때에.


(주민욱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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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 흔한 건 새싹이며 새잎이다.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봄이니 오죽하랴. 싹은 싹수가 있어 싹이다. 그 공덕으로 마침내 꽃을 얻는다. 복숭아나무와 벚나무와 수서해당화는 벌써 꽃을 매달았다. 폭죽처럼 팡팡 망울을 터뜨린다. 그러곤 안달복달하며 외친다. “날 좀 보소!” 꽃핀 나무들은 봄의 열락(悅樂)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견디지 못하는 게 꽃만은 아니다. 봐라! 돌 틈새에 암팡지게 핀 노란 민들레꽃에게 벌어진 일을. 언제부터 몸을 들이민 놈일까. 벌이 꽃 속에서 삼매경에 빠졌다. 미동조차 없으니 이미 취해 혼곤한 게다. 영락없이 낮술에 대취해 엎어진 한량 꼴이다. 봄이란 탐닉하기 좋은 철이다. 그렇다고 다 가질 수야 있겠나. 꽃을 밝히는 벌인들 무슨 수가 있으랴. 무릇 아름다운 것은 다 차지할 수 없다. 차지할 수 없어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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