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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세찬 언덕 위, 태연한 나무들을 만나다 ‘사니다정원’

기사입력 2025-04-04 08:50

[일상 낙원 민간정원 순례] 강원 원주시 ‘사니다정원’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새봄이 왔다. 그러나 조석으론 앙칼지게 싸늘해 긴가민가하다. 3월 초의 날씨는 변덕스럽다. 영동지방 산간엔 며칠 전 폭설이 쏟아졌다. 예년과 달리 저 아랫녘 남도에도 아직은 꽃이 드물어 썰렁하다고 들었다. 발 빠른 봄의 전령 매화조차 뜸을 들이고 있다 하니 알조다. 원주시 호저면에 있는 사니다정원에서도 봄의 새뜻한 얼굴을 찾아보긴 어렵다. 겨울의 마지막 구간을 빠져나오고 있는 정원이다. 두리번거리며 찾아도 새파랗게 올라온 풀 하나 볼 수 없다.

지상은 그렇더라도 땅 아래 사정은 다를 수밖에 없는 계절이다. 이미 튼 싹눈들의 아우성으로 후끈할 것이다. 그것들은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녹자마자 본성을 드러낸다. 진군나팔을 불며 지상으로 돌진한다. 세상의 모든 추위와 인고를 물리치겠다는 양 강력한 기법을 구사한다. 포클레인의 삽날도 아닌 것이, 천하장사 이만기도 아닌 것이, 어느 한순간 싹눈들은 으라차차 흙을 번쩍 들어 올린다. 그러고선 지상으로 쑤욱 올라온다. 단칼로 철옹성을 뚫는 무장의 기개세에 맞먹을 재능이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좁쌀보다 작고 낮고 여린 씨앗 하나, 그리고 거기에서 나온 싹과 풀이 이렇게 천하를 호령하고서야 봄이 펼쳐진다. 풀들이 슬며시 봄의 틈새에 편승하는 것처럼, 조물주의 자비로운 협찬으로 편히 사계를 흘러가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지독히 용을 쓴다. 세상과 만나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다 쏟는다. 풀을 보잘것없다고 여기는 결례를 삼갈 일이다. 기척 없이 태어나 존재감 없이 살다 종단엔 간데없이 사라지는 미물로 볼 일이 아니다. 세상에 목숨 가진 것치고 시시한 게 있던가. 목숨을 걸지 않고 목숨을 유지할 길이 있던가. 이건 평범한 진실이다. 그러나 놓치고 산다. 풀씨 하나에도 우주가 들어 있다더라.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 막대한 분량의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풀을 꿰뚫어보기만 해도 얻을 건 다 얻을 수 있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사니다정원은 해발 300여 m 고지에 있다. 산 하나를 통째 영역으로 삼아 정원을 만들었다. 이곳의 개성은 산의 너른 품에 정원이 폭 안겨 있다는 데 있다. 따라서 자연스러운 맛을 진하게 풍긴다. 억지 꾸밈이 없는 정원이다. 꾸미지 않은 듯 꾸민 정원이다. 일부러 집어넣은 요소라곤 습지에 만든 인공연못, 맨발걷기길, 잔디광장, 돌로 된 의자들, 정자 하나 정도가 있을 뿐이다. 딴 데서 가져온 식물을 잔뜩 심어 볼거리를 선사하는 식의 방법을 쓰지 않았다. 자연의 민낯을 즐기시라! 정원주의 뜻은 아마도 그런 것이리라. 방대한 야산을 정원으로 바꾸는 일이 쉽지만은 않아 중도에 잠시 멈춘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미쁘다. 과욕과 과속을 자제하는 겸손이 비치니까.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정원주 김도완은 부동산 개발사업으로 부를 쌓은 인물이다. 그러나 마흔 살 언저리에 벼랑에 서게 됐다. 치료가 잘 되지 않는 병을 얻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심장 쇼크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다 간신히 살아났다고 한다. 이때 자신을 돌아보았던 모양이다. 삶이란 대체 뭐냐?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거냐? 가수 김국환이 노래했듯이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는데, 그건 이미 수지맞는 장사’인데 뭘 더 움켜쥐고, 뭘 더 연연하랴? 그는 마침내 빈 마음으로 삶을 바라보게 됐다. 그러면서 별 관심 없었던 자연을, 자연의 됨됨이를, 자연의 무한한 생명력을 가슴에 담았던 것 같다. 사니다정원을 만든 내력이 이와 같다.

정원 서쪽 저 멀리엔 큰 산맥이 좌우로 아스라이 뻗어 있다. 치악산의 치렁치렁한 산줄기들이다. 엷은 운무에 휘감긴 그것은 아주 천천히 흐르는 강물처럼 미묘한 힘을 가지고 꿈틀거린다는 인상을 풍긴다. 외경을 품게 하는 대자연이다. 산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야기한다. 산이 하늘에 맞먹을 크기를 지닌 만물의 지휘자임을 일깨워주는 건 바로 이런 순간이다. 남북으로 40리에 걸쳐 펼쳐지는 치악산의 맥을 한눈에 쓸어 담을 수 있는 조망대. 사니다정원이 바로 그렇다. 치악산의 웅자와 신비와 권위를 마음에 담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정원은 매력적이다.


(주민욱 프리랜서)
(주민욱 프리랜서)


정원의 정점은 산꼭대기에 자리한 ‘바람의 언덕’에 있다. 바람이 상주하다시피 하는 언덕에서 바람을 만나라고, 바람 소리의 랩소디를 들어보라고 붙인 이름이다. 오늘도 바람이 분다. 숫제 폭풍이 불어 나무를 흔들고 산을 흔든다. 나무는 저 난폭한 바람을 어떻게 견디나. 요령이 다 있다. 분노 따위 없이 바람을 받아들인다. 바람을 탄다. 일생을 부동자세로 서서 살 수밖에 없는 부자유에서 풀려나게 하는 폭풍에 환호하며 얼싸안고 몸을 흔든다. “바람결에 씨를 날려 보내는 재주로 종족을 퍼뜨리는 나도 일종의 바람기 많은 중생이노라!” 그리 껄껄거리며 바람과 노는 데 이골이 났다. 생가지가 우지끈 부러질망정 상처 없는 생이 없으니 억울해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바람을 처리하는 나무의 능란한 기술엔 세상을 건너는 답이 들어 있다. 바람을 ‘고통’으로 번안할 경우 그게 또렷이 보인다. 그렇다면 바람 잘 날 없는 언덕에 선 저 나무들 역시 길 위의 선생이다. 고통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고통 사용법’을 묵시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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