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대와의 소통 적극적… 독창적인 콘텐츠로 승부해야
시니어는 사회·문화의 주류 세력으로 꼽힌다. 그 중심에는 ‘시니어 인플루언서’가 있다. 박막례 할머니는 유튜브 구독자가 120만 명에 이른다. 43년간 식당을 운영한 할머니의 유쾌한 입담과 맛있는 레시피가 대중을 사로잡았다. 김칠두는 순댓국집 사장에서 시니어 모델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으며, 인스타그램 팔로어 약 5만 명을 보유했다. 시니어 인플루언서의 세계를 들여다보자.
시니어는 이제 ‘욜드’(Yold)를 넘어 ‘쏠드’(Sold)로 불린다. 욜드는 ‘Young Old’의 줄임말로 젊게 사는 노인을 말한다. 쏠드는 디지털 시대에 빠르게 적응하는 ‘스마트한 욜드’를 의미한다. 즉 디지털 시대에 젊게 사는 시니어가 많아졌고, ‘시니어 인플루언서’도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인플루언서(Influencer)란 ‘타인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을 말한다. TV 등의 방송 매체로 유명해진 연예인 또는 셀럽과 달리 인터넷이나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기반으로 활발하게 활동한다. 수십만 명의 팔로어(Follower,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유행을 선도한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주 무대로 활동하는 시니어 인플루언서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대중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동년배뿐 아니라 MZ세대까지, 전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다음에 새롭게 떠오를 시니어 인플루언서에 대한 기대감 역시 높다.
MZ세대 사로잡은 이유
인기가 날로 높아지는 시니어 인플루언서와 관련해, 오공훈 대중문화평론가는 “라이프, 패션 등 문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시니어 인플루언서의 연륜과 경험이 어떤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모습으로 나타나고, 사람들한테 영향력을 전파하는 것 같다. 앞으로는 유머러스하고 역동적인 분야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시니어 인플루언서가 활약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또한 오공훈 평론가는 “대체로 시니어 인플루언서는 젊은 인플루언서에 비해 인기를 통해 수입을 거두려는 경향이 적어 보인다. 상업적인 의도가 적어 보인다는 의미다”라면서 “인생 이모작 마인드로 SNS로 자신을 표현하며 즐거움을 느끼고, 젊은 세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의지가 보인다”고 시니어 인플루언서의 특징에 대해 말했다.
박막례, 김칠두와 함께 거론되는 시니어 인플루언서로는 패션 디자이너 밀라논나(장명숙)가 있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 93만 명을 기록한 그는 지난해 7월 유튜브 세계를 떠난 상황이다. 그럼에도 밀라논나의 위엄과 존재감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처럼 젊은 감성과 우아한 면모를 보여준 밀라논나는 특히 M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장 인기를 끈 영상은 2019년 게재된 ‘60대 명품 바이어가 고른 자라(ZARA, 스파 브랜드) 꿀템’이다. 조회수 540만 회를 넘어섰으며, 3년이 지난 현재도 꾸준히 조회수가 상승하고 있다. 영상에는 자라 매장을 방문한 밀라논나가 여러 의상과 패션 아이템을 보면서 코디 꿀팁을 제안하는 모습이 담겼다. 그 과정에서 밀라논나는 명품 의류 중에서 비슷한 아이템이 있으면 바로바로 언급하는데, 그의 경력과 전문성이 돋보인다.
해당 영상에는 ‘멋지다’는 반응이 가장 많이 등장한다. 비슷한 표현으로 ‘멋진 어른’, ‘멋진 할머니’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올린 영상에도 ‘인생의 지혜를 얻고자 할 때 찾고 싶은 은사님 같다’, ‘보석 같은 말들이 불안함을 거둬준다’ 등의 댓글이 이어졌다. 대중이 시니어 인플루언서에게 어떤 모습을 원하는지 엿볼 수 있다.
오공훈 평론가는 “일단 MZ세대는 시니어 인플루언서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어렸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예쁨받은 기억에 대한 그리움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된다고 본다. 사실 MZ세대가 처음부터 기성세대에 적대적이지는 않았다. 소위 ‘꼰대’라고 불리는 일부 기성세대의 태도 때문에 적대적인 감정이 생겼다고 예측한다. 시니어 인플루언서는 꼰대가 아닌 멋지게 사는 어른이다. 그래서 존경의 마음마저 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만의 콘텐츠 찾아야
시니어 인플루언서 꿈나무들이 많아짐에 따라 지자체, 민간기관에서는 시니어를 대상으로 하는 인플루언서 양성 교육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각 캠퍼스에서도 교육을 진행 중이다. 이번 달에는 중부캠퍼스에서 ‘SNS 인플루언서 도전하기’ 강의가 열린다. 강사인 안나영 PD는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TBS ‘우리동네 라디오’ 지역 PD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을 통해 인플루언서 양성 강의를 한 지 5년이 넘었다는 안나영 PD는 “시니어분들이 갖고 계신 특별한 콘텐츠가 많다. 그 콘텐츠를 배포하는 창구로 SNS 플랫폼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어떻게 해야 SNS를 잘 활용해 영향력 있는 콘텐츠로 발전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무엇이든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더욱이 젊은 층에 비해 디지털 기기와 친숙하지 않은 시니어가 인플루언서로 거듭나는 길은 고된 여정일 터다. 실제로 스마트폰 작동조차 어려워하는 시니어가 많은데, 그들에게는 SNS 자체가 매우 낯선 존재다. 아이콘의 기능을 하나하나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콘텐츠를 만들고 업로드하는 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안나영 PD는 콘텐츠의 아쉬움에 대해서는 “시니어분들이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SNS를 통해 말하는 것을 어색해하는 경우가 많다. 공적인 말하기의 과정 혹은 어법을 따라야 한다는 압박감을 크게 갖고 계신다”고 짚었다. 안 PD는 “부담을 덜 가질 수 있도록 시니어분들에게 사소한 질문, 일상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적이면서 내밀한 기록이 조금 더 쉽게 발굴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콘텐츠란 무엇일까. 시니어가 만든 콘텐츠가 우후죽순 나오고 있고, SNS를 한다고 인플루언서가 됐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너무 많은 상황이다. 안나영 PD는 “SNS를 시작한 시니어가 많아지고 있지만, 콘텐츠가 다양한 것은 아니다. 인플루언서가 되기 위해서는 남들과 차별되는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행 콘텐츠를 예로 들어보자. 시니어가 만든 여행 관련 콘텐츠는 기존에 이미 많이 나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 여행 콘텐츠가 게재되고 있을지 모른다. 대부분 아름다운 자연 풍광, 여행지에서 먹은 맛있는 음식 등에 대한 글과 사진, 영상의 기록이다. 이제는 그 천편일률적인 콘텐츠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 ‘이 여행길을 밟게 된 나만의 이유’, ‘내가 겪어보고 발견한, 몸이 불편한 사람도 즐길 수 있는 코스’ 등 생각을 전환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안나영 PD는 시니어 인플루언서의 콘텐츠는 완벽하게 구성·편집된 것보다 오히려 ‘날것’ 그대로가 매력적일 수 있다고 얘기했다. 대중이 시니어 인플루언서의 콘텐츠를 보는 이유는 퀄리티가 높아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니어 인플루언서만이 할 수 있는 얘기를 듣거나, 리얼함이 가득한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안나영 PD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만큼 시니어 인플루언서의 필요성도 증대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안 PD는 “시니어 인플루언서를 ‘삶의 궤적을 따라가고 싶은 명인’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그분들의 시간을 보고 싶고, 알고 싶고, 질문하고 싶은 것이다”라면서 “시니어 인플루언서의 삶의 태도나 철학을 따라갈 수 있는 공간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공간의 역할을 하는 SNS가 중요하다고 느낀다”라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분을 말하지만, 삶을 멋지게 살아가는 분도 명인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당장 내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추측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어요. 시니어분들은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오셨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도 대응하는 방식이라든지 노하우가 훨씬 다양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분들의 삶의 모습이 나한테도 괜찮다고 말해줄 것 같은 거죠. 한마디로 그분들의 SNS는 전 세대의 자존감과 안정감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