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락 MBC충북 신성장전략국장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현장에서 배우는 과정이 이야기가 된다. 특별한 일을 평범하게 만드는 데서 큰 동력을 얻는다. 그래서 사람을 더욱 들여다본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들의 특별한 일상을 담거나, 평범한 그들의 일상에 이벤트를 넣는다. ‘K-로컬’(Korean Local)을 콘텐츠에 담아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하지만, 그는 자신을 ‘동네 소년’이라고 소개한다.
이영락(50) 국장은 2001년 MBC충북에 입사했다. 토론 프로그램 사회자, 라디오 PD, 뉴스데스크 앵커를 거쳐 뉴미디어팀장, 미래전략국장을 역임하다 올해부터는 신성장전략국의 장을 맡게 됐다. 직장 생활 20년 차. 이쯤 되면 질릴 만도 한데, 그는 아직도 일이 즐겁다 말한다. 오늘의 경험이 당장은 쓰이지 않더라도 푸티지(Footage, 미완성 필름)로 남아 언젠가 연결된다는 걸 알기에, 그는 매 순간이 재미있다. 올해 그의 목표는 “‘평범’으로 ‘비범’하고 패기 있게”다.
‘시절의 인연’ 떡국씨
이 국장은 ‘이용자의 즐거움이 끊김 없이 연결되는 경험’을 콘텐츠에 녹이기 위해 늘 고민한다. 그가 기획하고 감독한 글로벌 농촌 커뮤니티 콘텐츠 ‘촌스런 떡국씨’는 귀농한 20대 청년의 경험으로 시작해 세계 각국의 농부 이야기로 확장됐다. 영상으로 시작했지만, AR 지도로 이어지고, 모바일 농사 게임으로 연결된다. 게임에서 키운 농산물은 마동리에서 실제로 교환할 수 있다. 영상 하나만 보고 그치는 게 아니라, 모양을 바꿔 콘텐츠 경험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촌스런 떡국씨’의 주인공은 청주 문의면 마동리로 귀농한 청년농부 안재은 씨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라디오 프로그램 PD로 있을 때다. 섭외를 하고 보니 그녀가 가진 이야기가 너무 좋아 ‘농사는 처음이지’라는 고정 코너를 만들어 3년째 이어가고 있다. 이 국장은 안재은 씨의 이야기를 조금 더 가까이서 풀어보고 싶었다. 유튜브 ‘촌스런 떡국씨’의 탄생이다.
‘촌스런’(촌’s Run, Chon is run·learn)은 안재은 씨가 운영하는 농업회사법인 이름이다. ‘떡국씨’는 마동리에서 어르신들이 그녀를 부르는 별명이다. 귀농하고 가장 먼저 떡국을 끓여 돌리면서, 동네에서 떡국이라 불리게 됐다고. ‘촌스런 떡국씨’는 안재은 씨의 회사 이름과 별명을 따 만들었다. 시즌1은 ‘시골 오지마을에 들어와 여성 청년 이장이 돼보겠다는 꿈을 꾸는 과정’을 ‘정말 이뤄질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으로 바라본 콘텐츠다.
“그냥 농촌에 들어와 사는 청년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이 영상을 보고 제2의 안떡국씨가 나오도록 하자는 게 저희 제작진의 목표였어요. 그런데 영상을 보고 정말 귀촌한 ‘조떡국씨’가 나왔죠.(웃음)”
그렇게 시즌2로 이어진 ‘촌스런 떡국씨’는 시즌1에 나왔던 마을 주민 신해인 할머니, 김경순 아지매, 해밀당 최고야 씨가 개인의 미션을 해결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후위기’가 자주 등장했다. 특히나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농촌의 먹고사니즘’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세계가 공감했다. K-농업의 글로벌화를 꿈꾸며 시즌3에서는 ‘글로벌 청년농부’를 다룬다.
“저에게 안재은 씨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이자 뮤즈(Muses)예요. 저 혼자라면 다큐 한 편은 기획할 수 있지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이렇게 여러 편으로 만드는 건 어렵거든요. 뉴미디어를 시작한 지 5년 정도 되었는데, 기존 방송과는 다른 톤&매너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 안재은 씨 같은 크리에이터 한 명이 있으면, 그가 성장하고 경험하고 실패하고 성공하는 그 과정 자체가 콘텐츠가 되죠. 그런 안재은 씨의 도전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커요.”
‘K-경험’을 수출하다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는 이 국장의 무대는 세계다. 특히 ‘K-경험’의 글로벌 콘텐츠화 가능성을 봤다. 그래서 기획하고 있는 다음 콘텐츠는 ‘브레이브하트(Brave Heart)50’이다. ‘청년 창업가의 존버(끝까지 막연하게 버티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 인사이트’가 주제다.
“저와 같은 월급쟁이들은 누구나 ‘언젠가 회사 때려치우고 나만의 창업을 할 거야’라는 마음을 품고 있을 거예요. 그런데 용기가 없어서, 준비된 총알이 없어서, 미래를 확신할 수 없어서 등 여러 이유로 품고만 있죠. 그렇다면 창업이라는 도전을 한 사람들은 얼마나 용감할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집을 사든 창업을 하든 1억 원을 대출받는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부담을 갖게 되잖아요. 창업가들은 그 두근거리는 순간을 매일매일 겪겠죠. ‘첫 대출 1억을 받던 날’이라는 공통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담아보려고 해요. 너도 겪고 나도 겪은 공통의 경험이라면, 누군가에게는 인사이트가 될 테니까요.”
한 사람을 소개하는 영상을 비틀어본 기획이다. 매월 1만 명의 자영업자가 폐업을 하고 그만큼의 창업이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모두가 같은 경험을 하지만 저마다의 인사이트는 달라진다. 외국 사람이 영어로 한 TED 강의 영상을 한국어 자막으로 보면서 우리가 동기부여를 받는 것처럼, ‘K-경험’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프리카에도, 알래스카에도, 파리에도 창업가는 있으니까.
그가 글로벌 콘텐츠의 가능성을 본 건 ‘할매레시피’(Grandma’s Recipe)라는 다큐를 제작하면서다. ‘할매레시피’는 마동리 최고령인 91세 신해인 할머니의 떡볶이 레시피를, 마을에 귀촌·귀농한 세 청년이 밀키트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담은 다큐다. 이 작품으로 암스테르담 쇼트필름 페스티벌 어워드에서 수상을 했다.
“충북이라는 지역 창업가의 경험을 처음 해외로 수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어요. 그리고 다큐에 참여한 분들에게 선물이 됐다는 점이 가장 큰 의미죠. 그저 자신의 일을 했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상을 받은 셈이잖아요. 나의 경험이 세상에 보편타당한 지식처럼 전달된다면 더 기쁘겠죠? 그래서 ‘브레이브하트50’은 카이스트 실패연구소와 함께 이들의 인사이트를 모아 학문적인 데이터로 만들어보려고 해요.”
개인의 경험은 특별하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한다는 것도 특별하다. 특별한 일을 누구나 공감하고 도전할 수 있는 보통의 일로 만드는 것. 이 국장의 기획 동력이다.
가치를 더하는 협업
기획이 콘텐츠로 만들어질 때는 언제나 협업이 필요하다. 그에게 협업이란 어려울 때 곁에 있어주는 친구 같은 존재다. 첫사랑에 실패하고 막 헤어진 날, 술 한잔에 이야기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그렇기에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프로젝트에 더욱 진심이다. 텐트에 비유하자면 사람이 폴대가 되어준다. 연결을 많이 할수록 더 큰 텐트를 칠 수 있다. 그는 이를 가리켜 ‘가치를 더하는 협업’이라고 했다.
“같은 장르인데 그 안에 약간의 변주를 주는 사람을 봐요. 안재은 씨 같은 지역 창업가들이 주로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요즘은 로컬크리에이터라고도 불리죠. 그냥 내 삶을 배경으로 하는데, 거기에 가치를 더하는 거예요. 지역에 존재하는 기존의 틀은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는데, 거기에 내 창호지를 얹어서 조금 색다르게 보이도록 하는 거죠. 이를테면 농사짓는 방법이 엄청 드라마틱하지는 않잖아요. 로컬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도, 나만의 색을 입히는 것. 어떤 결핍을 그저 자신의 역량만큼 채워보려는 거죠.”
한 마을의 결핍, 농촌의 문제, 기후와 같은 글로벌 이슈 등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문제가 있긴 한데, 해볼 만해’라는 자세로 바라본다. 그런 개인의 노력과 경험을 콘텐츠화하는 게 이 국장의 실험이다.
‘바이5남매’ 시리즈도 개인의 고민에서 시작됐다. 세종시에 정부청사가 생기고 여러 산업기관이 자리 잡으면서 서울을 오가는 직장인이 늘었다. 수도권에 가족이 살고 있는데, 직장이 오송이어서 내려온 사람들은 자취 생활을 한다. 친구들도 다 수도권에 있다 보니 일이 끝나면 놀거리가 없다. 그래서 ‘화요조찬운동회’를 만들었다. 매주 화요일 아침 뒷산을 오르고 내려와 커피와 함께 아침을 먹고 헤어지는 모임이다. 그때 누군가 ‘K-바이오’가 더 크려면 융복합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 신 안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뭉치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바이오 산업의 연결 생태계를 콘텐츠로 풀어낸 것이 ‘바이5남매’다. 바이오라는 산업 이야기를 기술 수혜자가 될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풀어내는 콘셉트로, 각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설명해준다. 이 과정에서 산업계의 연결이 일어났다.
이렇게 그의 기획은 제작하는 사람, 등장인물로 참여하는 사람, 영상을 보는 사람 모두에게 가치가 더해지는 콘텐츠로 완성된다.
“그냥 말로만 가치를 더한다는 게 아니라, 수십 년 동안 비슷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새로운 걸 보여주는 과정이에요.”
‘동네 소년’ 이영락
노트북을 열자 수많은 기획 파일이 쏟아졌다. 실현된 것도, 실현 중인 것도, 실현되지 못한 것도 있다. 주로 일상에서 콘텐츠를 발견하지만, 그렇다고 어느 날 기획이 뚝 떨어지는 건 아니다. 그래서 실현하지 못한 아이템들도 잘 두었다가 적시에 꺼내본다. 경험이 쌓이면서 기획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예산이 부족하거나 기술이 없어 콘텐츠로 만들지 못한 10년 전의 기획이 기술 발전으로 구체화되는 때가 온다. ‘보이는 라디오’처럼.
“처음 ‘보이는 라디오’를 우리 MBC충북에서도 해보자고 제안했을 때는 가지고 있는 장비나 예산으로는 어려웠어요. 그런데 2년 후에 다시 보니 소프트웨어가 프리웨어로 풀려 있고, 마침 회사에 안 쓰는 장비들이 남아 있더라고요. 서울 방송국처럼 있어 보이지는 않더라도 구현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지금 안 된다고 앞으로도 안 되는 것이 아니고, 엎어진 기획서라고 의미 없는 게 아니라는 걸 배웠죠.”
그는 일상의 결핍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여전히 일에 재미를 느끼고 있지만, 그라고 매 순간 목표를 가지고 달리기만 한 건 아니다. 어느 날은 전파로 날아가 버리는 방송 일에 헛헛함을 느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데 남는 게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주말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건강을 챙겨야겠다고 느꼈을 때는 ‘동네 소년단’을 만들었다. 40~50대 어른들이 그냥 주말마다 동네를 뛰는 모임이다. 그렇지만 국가대표처럼 전지훈련까지 가면서 진심을 다한다. 이렇게 쌓이는 하루하루가 언젠가 기획을 할 때 툭 튀어나올 걸 알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그를 보며 아내는 ‘동네 소년 같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의 별명은 ‘동네 소년’이 됐다.
“아직도 배울 게 많아 일이 즐겁다고 말하지만, 저도 똑같이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가요. 고단한 인생이라고 느낄 때도 있죠. 그렇지만 오늘 나의 하루가 내일의 푸티지가 되어줄 거라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까, 아직은 해보고 싶은 마음이 좀 더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