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솔솔! 여기 미술관] 코리아나 미술관 ②
코리아나미술관은 공동관장 체제로 돌아간다. 코리아나화장품 창업주이자 현직 회장인 유상옥(88) 관장, 그리고 그의 딸 유승희 관장, 이렇게 두 사람이다. 아버지는 미술관을 총괄하고, 딸은 실무를 전담한다.
유상옥 관장의 사무실은 미술작품 다수가 진열돼 훤하다. 살바도르 달리의 조각, 이우환의 대형 단색화가 눈길을 끈다. 그는 소문난 미술품 콜렉터다. 그렇다면 미술에 눈 밝아 조예와 견해도 많을 것이다. 그래 탁자 위에 미술 얘기가 비처럼 쏟아질 걸 예상했지만 정작 그는 지나온 인생 역정을 주로 털어놓는다.
“내가 재능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스스로 그릇 크기를 알아 과욕을 부리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을 뿐이다. 작은 기업이나마 이만큼 키워낸 것에 만족한다. 미술관과 화장박물관 설립으로 기업인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무에 부응했다는 점에도 보람을 느낀다.”
그는 동아제약 사원으로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거기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해 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드링크제 ‘박카스’를 동아제약의 대표 브랜드로 키우는 데에 주도적인 공을 세우기도 했다. 이후 다 쓰러져가는 라미화장품을 인수해 회생시켰으며, 1989년 코리아나화장품으로 회사명을 변경하고 성장가도를 달렸다. 직업 활동 외에 미술품과 골동품 수집에도 열성을 다해 몰두했다.
미술품 수집은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
“중년에 접어들던 즈음, 지식보다 중요한 게 감성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업을 위해서도, 삶을 위해서도 민감한 감성 능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던 거다. 그래 인사동 화랑을 찾아다니며 미술을 만나기 시작했다.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수집하는 취미활동을 통해 감성의 폭을 넓히고 싶어서였다. 그게 계기였다.”
처음 수집한 미술작품을 기억하시나?
“소정 변관식 화백의 산수화였다. 당시 동아제약 월급쟁이로 일했는데 연말 보너스를 봉투째 내주고 그 그림을 샀다. 어린 시절에 살았던 시골에 대한 향수를 달래주는 산수화라서 깊은 정이 든 작품이다”
유 관장의 미술품 수집 취미는 화장품 회사를 운영하면서부터 화장 관련 유물 수집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그가 모은 화장 유물은 자그마치 8000여 점. 이 막대한 물량은 화장박물관 설립의 재료로 충분했다. 수집 열정에 비례에 안목도 높아져 수집 유물 한 점이 국보로, 두 점이 보물로 지정되기도 했다.
“마치 바보처럼 무작정 많이 모은 면이 있었다. 이제 이 많은 걸 어쩌나, 근심이 생기더라. 그때 미술관과 박물관을 착상했다. 수집가는 결국 뮤지엄을 꿈꾸게 마련이다.”
수필집을 많이 냈더라. 글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내 인생의 모토가 ‘소탈한 문기(文氣)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글쓰기는 그 추구의 방편이며, 남들에게도 문기가 옮아가길 바라며 책을 냈다. 미술과 문예가 삶에 결부되면 인생은 더 소중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