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은 소득 중단을 의미한다. 매월 들어오던 급여가 어느 날부터 뚝 끊어진다. 가정은 일정한 소득이 들어오지 않으면 고통을 겪는다. 급여가 들어오지 않아도 매달 필요한 기본경비가 있다. 상황이야 각자 다르겠지만 의식주에 들어가는 기본경비는 만만치 않다. 한 달에 두세 번 마트를 갔다 오면 아내는 볼멘소리를 한다. 먹는 데 들어가는 식료품비가 “별로 산 것도 없는데 10만 원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사계절이 있어 옷도 가끔 사야 한다.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면 대출이자를 갚아나가는 것도 버거운 일이다. 통신비는 또 어떤가? 집에 컴퓨터가 있어도 각자 들고 다니는 핸드폰은 필수다. 정부에서 조사한 바로 1인당 생활비는 170만 원이라 한다. 그러니 부부가 생활하려면 월평균 생활비는 최소한 250만 원 이상 되어야 한다. 퇴직자에게 매월 250만 원은 큰 부담이 되는 금액이다.
퇴직자의 어려움은 경제적 문제에만 있지 않다. 돈이 있어도 할 일이 없으면 고통이다. 돈도 없으면서 할 일이 없다는 건 더 지옥이다. 은퇴 후에도 치열한 생활 전선에서 싸워야 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 때문에 노후의 생을 낭비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다행히 은퇴 전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면 앞으로는 자신의 삶도 살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마음의 욕심을 조금 내려놓을 때 가능하다. 마음 비우는 일도 중요하다. 연습이 필요하다. 마인드컨트롤도 하면서 ‘이만하면 됐다’고 자신에게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하다. “행복은 목적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말도 있다. 한 발짝 한 발짝 움직이고 숨 쉬는 이 공간이 소중하다. 철따라 형형색색 피는 꽃과 향기를 즐길 줄 아는 것이다. 시원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풀벌레 소리와 산새 울음소리도 즐겨야 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 앞에 조그만 동산이 하나 있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있고 봄에는 개나리와 진달래가 노랗고 붉게 꽃을 피운다. 가을엔 노란 은행나무 잎이 황금물결을 이룬다. 얼마 전 은퇴 기념으로 지리산에 숙소를 얻어 열흘을 지내고 왔다. 조용한 숲속에서 아침을 맞아 커튼을 열자 온갖 새소리가 들렸다. 마치 별천지에 온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집 베란다를 열고 거실에 앉아 있는데 지리산에서 듣던 새소리가 앞동산에서도 들려오는 것이었다.
“지리산에서는 그렇게 새소리가 잘 들렸는데 여태껏 왜 집에서는 새소리를 듣지 못했지?”
아내가 놀라워했다. 생각해보니 집에서는 그만큼 집중을 못해 듣지 못한 것이었다. 새벽부터 출근하랴 일상에 쫓기다 보니 새소리 들을 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도 좀 내려놓고 새소리도 들어가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오늘따라 “행복은 결과보다 과정”이란 말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