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은 과연 진실일까? 어쩌면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을까? 일본 영화의 고전인 '라쇼몽'에서 똑같은 사건을 등장인물 4인이 모두 다르게 기억하는 설정을 통해 우리의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았으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자신의 기억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아니 진실이라는 것이 진정 있기는 한 것일까?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이런 진실과 허구와 기억에 관한 영화이다. 영화는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최고의 프랑스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감독은 의외로 일본인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21세기 일본의 영화계를 이끌어가는 정상급 감독이다. 좀도둑으로 이루어진 유사 가족 이야기인 '어느 가족'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어쩌면 이 영화도 감독이 천착하는 가족 이야기의 연장선에 있다. 영화는 전설적인 대배우인 파비안느(까뜨리느 드뇌브)가 회고록을 출판하고 기자와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마침 딸 뤼미르(줄리에트 리노슈)가 가족과 함께 출판기념을 위해 엄마를 방문한다. 그러나 회고록을 밤새 읽은 뤼미르는 회고록에 진실이 단 한 줄도 없다며 엄마에게 쏘아붙인다. 평생을 함께한 매니저 뤼크도 자신에 대한 언급 없는 회고록에 실망하여 집을 떠난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서로 엇갈린 기억들이 교차하며 진실과 허구 사이를 넘나든다. 매니저가 떠나자 얼결에 뤼미르가 엄마의 매니저 노릇을 하며 엄마가 주연으로 출연하는 ‘내 어머니의 추억’이라는 SF 영화 촬영을 옆에서 보게 된다. 이 ‘내 어머니의 추억’은 특별한 병으로 최소 7년은 우주선에 있어야만 하는 어머니와 딸을 그린다. 그런데 우주선에 있는 동안에는 시간이 멈춰 늙지 않는다는 설정이다. 감독은 이 극 중 극을 통해 그들 내면에 웅크린 왜곡을 암시한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이 영화가 진행되면서 파비안느와 딸 뤼미르는 서로의 기억이 달라서 생긴 오해를 풀어간다. 그렇다고 여느 신파극처럼 감정의 선을 자극하지 않는다. 파비안느는 여전히 나쁜 엄마, 나쁜 친구가 될지라도 좋은 배우가 되는 것이 낫다는 캐릭터를 고수한다. 모든 세상살이를 연극으로 생각하는 그녀에게 딸은 뤼크에게 사과하는 대사를 써준다. 그러니까 파비안느는 진정성마저 연기로 생각한다.
극 중 극인 ‘내 어머니의 추억’ 마지막 장면에서 늙은 딸로 분장한 파비안느가 젊은 엄마에게 ‘엄마 딸로 살아서 기뻐요.’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녀의 진정성이 담겨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 뤼미르와 화해하는 장면에서 느꼈던 감정을 연기 순간에 담아내지 못했음을 자책하는 대목에선 화해의 진실성에 대해 무엇이 진심인지 관객들도 어리둥절해진다. 파비안느에겐 연기도 진실의 일부였다.
감독에게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닌 듯싶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오히려 진심을 담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지어낸다. 뤼미르가 뤼크에게 사과하는 대사를 엄마에게 써주듯이 딸과 화해를 권하는 현 남편 자크가 적절한 대사를 일러주며, 뤼미르는 엄마를 기쁘게 하려고, 손녀에게 대사를 가르친다. 그들은 진실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허구적 장치를 사용하는 것이다.
허구와 진실이 뒤섞여 존재하는 것이 영화뿐일까? 우리가 사는 현실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도 상대의 마음을 다치지 않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살지 않는가. 이런 뒤엉킴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리얼리티가 아닐까. 파비안느 가족처럼 허구로 짓는 진심의 집 덕분에 우리가 삶을 이해할 수 있다면 허구로 가득한 영화야말로 삶의 리얼리티를 담아내는 최적의 장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