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40대에 같은 아파트, 같은 층에 살게 된 인연으로 가깝게 지내던 여고 3년 선배가 있었다. 내가 카톨릭 신앙을 가지게 됐을 때 가톨릭 신자이던 대모로 모시고 세례 받을 만큼 가깝다. 나는 평소에 대모를 ‘언니’라고 불렀다. 은행원 남편과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둔 언니다. 젊었을 때는 내가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었기에 언니네 집으로 자주 놀러가곤 했다. 언니 부부는 서로를 존중하며 잘 살고 있기는 했지만 딱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각방을 써왔다는 점이다.
부부는 대체로 반대로 만난다고 하는데 언니 부부는 둘 다 대쪽 같은 성격이었다. 우리 나이에 각방이 문제가 되겠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 부부의 각방 쓰기는 신혼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결혼하고부터 서로 잠드는 시간과 일어나는 시간이 달라서 애를 많이 먹었다. 언니의 남편은 8시 뉴스만 끝나면 잠자리에 들어 새벽 5시면 일어났다. 언니는 TV 드라마가 끝나는 새벽 1시나 돼서야 잠이 들어 아침 8시쯤 눈을 떴다. 우유와 요깃거리로 해결하는 언니 남편의 아침 식사는 최근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이 부부는 긴 시간을 따로 밥 먹는 ‘따밥’하는 부부가 됐다.
언니 남편이 직장 생활을 하던 현역 시절 동안에는 문제가 안 됐다. 언니 남편 혼자 아침 간단히 먹고 출근하면 점심은 따로 해결하고 저녁만 같이 먹으면 됐다. 퇴직 이후, 남편은 습관대로 12시 정각에 점심을 먹었다. 남편을 위해 부인이 매끼를 식탁에 차려 놓으면 남편이 먹고 나중에 언니 혼자 따로 먹는 따로 밥 먹는 생활이 됐다. 따밥에 따방(따로 방 쓰는)부부로 살게 된 지도 이제 10여 년이 넘었단다. 같이 밥을 먹고 지낼 때는 잔소리도 많아 다툼으로 번지는 일이 많았다. 따로 식사하면서 다툼도 없고 평화 유지도 쉬웠다. 대화가 없는 곳에 다툼이 있을 리가 없다. 익숙함이 가져다준 또 다른 의미. 이게 바로 졸혼이었다.
작년 말 어느 날, 밤늦도록 영화를 보던 언니는 참을 수 없는 외로움에 왈칵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부부가 죽는 날까지 ‘따밥’하다 죽을 것을 생각하니 인생 절반을 실패한 것 같다는 생각에 슬퍼 견딜 수가 없었다고 했다. 언니는 그날 중대한 결심을 했다. 외출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 한방 쓸까요?”
그것도 살며시 껴안으며 말을 건넸다고 했다. 언니 남편도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사실은 나도 그 말 하려고 했어, 당신이 거절할까 봐 두려워서 못해서”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은 뒤 곧바로 한방으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그날 이후 언니네 부부는 재혼한 부부처럼 조심하며 싸우지 않고 신혼 생활을 하고 있다. 전화로 언니 이야기를 들은 나는 장미꽃 한 다발을 주문했다. ‘화려한 신혼을 위하여!’라는 문구를 리본에 써서 언니에게 보내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