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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내면의 뿌리 깊은 이중성

기사입력 2018-01-11 15:09

시간의 흐름 속에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지루한 삶이지만, 명색이 새해를 맞으며 마음만이라도 신선한 기운으로 채우고 싶었는데 온통 흉흉한 소식들만 난무하니 심란하기 그지없다. 북한의 핵 공갈 협박은 갈수록 완강해가고 사회의 상하좌우 대립은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게다가 각종 사건·사고는 악마가 보내는 종합선물세트처럼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우리 사회를 온통 뒤집어 놓았던 세월호 사고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물론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면서 하염없이 물고 늘어져 본래 의미가 퇴색된 아쉬움은 있지만, 당시만 해도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겼고 다시는 그런 참사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어떤 이는 우리 현대사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야 한다는 과장된 언사까지 서슴없이 하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얼마 전 세밑에 일어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를 보면 그런 다짐이 얼마나 허망한 위선이었는지 생생하게 드러났다. 세월호가 그랬듯 관련되는 사람 모두가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지 않았다. 비상구는 막혀 있었고 소방관은 우왕좌왕했고 소방차 진입로는 시민들 차로 막혀 있었다. 하나도 바뀐 것은 없었고 사우나에 갇힌 20여 명의 울부짖음만 무참히 허공을 맴돌 뿐이다.

고공 크레인은 계속 쓰러져 높은 곳에서 일하던 애꿎은 당번 직원이 죽어 나가고 아래를 지나던 무고한 사람이 날벼락을 맞는데도 아무 대책이 없다. 화재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고준희 양은 친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것이 짧은 연말연시에 일어난 사건·사고들이다. 이런 모습들이 지난해 촛불로 한마음이 되었던 평 시민들과 동일한 이들이고 그들이 만들고자 했던 이상사회였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참으로 묘하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배우고 사회를 바꾸어나가는데 참으로 무능하다. 큰일이 일어나면 모두 목청 높여 떠들다가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집단 망각에 빠지고 같은 사고는 무한 반복된다. 이렇듯 한때의 열광적인 관심이 사회를 바꾸어가는 동력으로 작용하지 않는 한, 그 열정은 맹목적인 휩쓸림에 지나지 않고 사실상 무관심과 동의어인 셈이다.

이런 기이한 현상이 이 땅에서 지속적으로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외환위기에 금반지를 모으고 2002년 월드컵에 혼연일체가 되어 열광하던 사람들도 우리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내려앉고 세월호가 가라앉는 사고를 목격했으나 까맣게 잊은 사람들도 우리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우리 모습의 배후에 자리한 것은 어쩌면 사회적 인격의 이중성 때문은 아닐까?

사교육을 없애고 교육의 평등성을 외치면서 자기 자식은 은밀히 과외를 시키고 명문 외고에 진학하기 원한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관심을 재촉하면서 내 아파트 주변에 장애인 학교가 들어서는 것은 반대한다. 그러니까 사회적 가치보다 개인의 이익을 중시하고 그저 어떤 사회적 불행이 나에게 닥치지 않기만을 바란다. 사회적 가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생각이 없으니 사회 개혁의 동력이 생길 리 없다.

아침에 문밖을 나서니 간밤에 온 눈이 하얗게 깔려 있다. 낙상을 조심할 나이라 조심조심 눈을 밟으며 골목을 빠져나오다 문득 개인의 사회적 책임이 결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돌아오는 대로 문밖의 눈부터 치우리라 생각했다. 찌푸린 하늘이 조금 밝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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