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낙의 그림 이야기]
‘한국미, 그 자유분방함의 미학’의 저자 최준식은 “탈춤은 가장 민중적인 예술이며, 어느 춤보다 자유분방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했다. 필자 역시 그런 면에서 우리네 가면극(假面劇), 즉 탈춤놀이를 크게 꼽는다. 탈춤에는 꾸밈이 없으면서 자유분방함이 넘치는 문화 코드가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우리나라 탈춤 놀이마당에 푹 빠진 것은 등장하는 인물들의 역동적 춤사위(춤 동작)뿐만 아니라 탈[假面]이 갖는 특별함 때문이기도 하다. 요컨대 탈의 명칭을 생각하며 탈을 관찰하면 피부 병변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취발이탈’, ‘문둥탈’, ‘옴중탈’, ‘홍백탈’, ‘샌님탈’ 등의 이름에서 피부과 전문의인 필자는 피부 병변을 어렵지 않게 ‘진단’할 수 있다.
그중 취발이탈은 황해도 봉산(鳳山)탈춤과 경기도 양주 별산대(別山臺)놀이에 등장한다. 취발이탈은 알코올 중독자인 주정뱅이 취한(醉漢)에서 붙은 명칭에 걸맞게 탈의 안면(顔面), 특히 이마에 깊은 주름살이 있고, 얼굴 이곳저곳에 중독으로 인한 면역 약화 현상 때문에 흔히 나타나는 만성피부염증인 고름주머니, 즉 농양(膿瘍)을 볼 수 있다[사진]. 이처럼 꾸밈없이 리얼하게 피부 병변을 묘사하면서도 연극적 요소인 해학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탈춤놀이는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대중적 탈춤놀이는 각기 형태는 달라도 전 세계 거의 모든 ‘민속 문화’에서 하나의 장르로 넓게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아프리카 ‘목각 예술’ 하면 떠오르는 가면(假面, Mask)은 다양할 뿐더러 규모 또한 대단하다. 아울러 그 특유의 조형미 때문에 많은 미술 애호가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필자는 그동안 프랑스 파리의 ‘아프리카미술박물관’에서, 미국 뉴욕에서, 영국 런던에서 수없이 많은 탈을 살펴봤다. 하지만 그들의 탈에서 우리 탈 같은 ‘피부 병변’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우리와 같은 문화권인 중국이나 일본의 가면에서도 피부 병변을 보기 힘들다. 우리의 탈춤 놀이마당에서 관찰할 수 있는 다양한 피부 증상이 더욱 돋보이는 이유다.
그밖에도 필자는 한국 탈놀이에서 아주 각별한 의미를 본다. 18세기 즈음 이 땅에 등장한 탈춤놀이는 지역마다 이름을 달리하며 황해도 지역에서는 ‘봉산탈춤’, 경기 지역에서는 ‘산대(山臺)놀이’, 경상 지역에서는 ‘오광대(五廣大)놀이’와 ‘야유(野遊)놀이’로 성행했다. 그런데 이러한 탈춤놀이의 공통점은 1년에 한 번 고을의 지주인 양반 계급이 놀이마당을 능동적으로 마련했고, 이 자리에서 탈을 쓴 소작인 계급의 ‘농노(農奴)’들은 즉흥적인 대사에 온갖 비속어를 거리낌 없이 섞어가며 능청스럽게 연희를 펼쳤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놀이마당이 끝나면, 지주들이 놀이에 등장한 주역들과 함께 탈바가지를 밟아 부쉈다는 사실이다. 그러곤 모든 것을 잊어버리자는 뜻으로 마음껏 술을 마시며 그간 누적된 스트레스를 확 풀었다. 집단 카타르시스의 훌륭한 사례다. 여기서 필자는 한국 탈춤 문화에 스며 있는 각별한 사회성을 본다.
우리의 탈춤놀이는 연희에 내재된 ‘겉과 속’이 다르지 않아 ‘꾸밈없고’ 리얼한 문화 코드를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더욱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