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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마음 나눈 ‘지음(知音)’

기사입력 2017-12-21 15:53

[동년기자 페이지] 벗에 대하여…

“친구란 내 대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이다”라는 인디언 속담이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어느 날 교실에 들어선 필자는 너무 당혹스러웠다. 별안간 짝이 바뀌어 낯선 아이가 옆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아무 말도 없이 짝을 바꿔버린 담임 선생님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이럴 수가!’ 황당하고 슬프고… 완전 멘붕 상태가 되어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내 짝 옥이는 어디로 간 거지?’ 두리번거리며 찾아보니 옥이는 창가 쪽에서 새 짝꿍과 앉아 있었다. 그런데 옥이는 어느새 그 친구와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며 웃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마음속이 텅 빈 것 같고 슬픈데 쟤는 아무렇지도 않은가보네!’

새 짝꿍과 웃고 있는 옥이에게 심한 배신감이 든 필자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고등학교를 3년이나 늦게 들어간 필자 나이는 그때 21세였고 옥이의 나이는 19세였다. 요즘 말로 워맨스였을까?

누군가를 사귈 때 상처를 받는 쪽은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이다.

‘어쩜 저렇게 청순하고 예쁠까!’

필자는 여자이면서도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키가 크고 코스모스처럼 여리여리하며 피부가 뽀얗고 투명한 아이였다. 계란형의 자그마한 얼굴에 사슴 같은 눈과 향긋한 포도주를 머금은 듯한 어여쁜 입술이 매력적이었다. 미소를 지을 때마다 코를 찡긋하는 버릇도 사랑스럽게 보였다. 그녀는 한마디로 필자의 로망인 청순가련형이었다.

그 시절 필자는 낯가림이 심해서 쉽게 사람을 사귀지 못했다. 그 대신 한 번 마음을 주면 가슴속에 그 사람의 자리가 오래도록 있었다. 춘추시대 때 백아의 거문고 소리를 제대로 알아듣던 친구 종자기가 죽자, 절망한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고 더 이상 연주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고사에서 유래한 고사성어가 바로 ‘지음(知音)’이다.

옥이는 필자의 20대를 관통한, 마음을 깊이 나눈 ‘지음’이다. 문학소녀였던 그녀는 필자에게 문학의 단비를 흠뻑 맞게 해줬다. 영국의 계관시인인 워즈워드의 ‘초원의 빛’을 적어서 주었고 아주 달콤한 피아노곡인 ‘아드리느를 위한 발라드’도 들려줬다. 또 독일인의 관념적인 사랑을 그린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도 소개해줬다. 미래학자 토인비의 책 <토인비와의 대화>는 선물로 줬다. 지식에 대해 끊임없이 갈증을 느꼈던 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준 사람은 그녀였다.

젊은 시절 사랑하는 연인과 어쩔 수없는 상황으로 헤어져 아파할 때는 마치 필자가 그 고통을 겪는 듯 아팠다. 마음 둘 데 없어 헤매고 돌아다닌다는 그녀의 고백에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길까 마음 졸이며 지켜봤다.

사랑하는 마음은 아프다. 아침에 이 글을 쓰다가 젊은 시절 필자에게 그녀가 없었다면 삶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그녀가 너무 소중하고 고맙게 생각되었다. 뜬금없이 전화를 해 그녀에게 고백했다.

“옥아 고마워! 사랑해! 네가 내 곁에 있어서 너무 좋아!”

그러고는 울어버렸다.

“내가 잘해준 것도 없는데 뭘….”

“네 존재 자체가 고마워! 많이 흔들리고 힘들었던 젊은 날 함께해줘서 정말 고마워! 사람이 빛나는 것은 어려움에 맞서서 이겨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야. 우리 그동안 참 열심히 살았어. 옥아, 우리 앞으로도 영원히 같이하며 많이 사랑하고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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