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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수행중이다

기사입력 2017-08-30 11:12

그렇지 않아도 다혈질인 필자를 화나게 하는 일 몇 가지가 있다. 아동 구타가 그중 하나다. 한참 일하던 소싯적에 피로 회복 겸 찜질방이나 스파를 즐겨 찾았다. 그날도 어린 딸아이를 데리고 들어온 한 여자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아이의 등짝을 때리는 모습에 발끈하면서 일이 시작되었다.

“아줌마 아이도 아닌데 무슨 참견이세요?”

날선 반응에 질세라 “아이가 당신 소유물이냐? 여기가 당신 집이냐?” 하는 몇 마디 말로 그쳤지만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누구도 힘으로 폭력을 행사할 권리는 없다. 맞아야 하는 의무는 더더욱 없다. 어린아이에게 겁박을 주는 어른은 비겁하다! 힘의 제압은 폭력이고 범법이다. 그만 멈추고 거울에 비친 네 표정을 보아라!’ 날릴 수 없는 수많은 거친 말을 속으로 누르며 끓어오르는 분을 삼켰다.

어떤 경우에도 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부모 자식뿐 아니라 누구라도 그렇다. 질서나 조화가 힘의 논리에서 가능하다면 그곳은 동물의 세계다. 방금 금수의 세계에서 올라온 인간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드문 예외다. 나쁜 뉴스의 영향력이 너무 크다. 물론 영향력은 쌍방 통행으로 상호간 원인이 된다. 열악한 환경이 가해자를 만들고 거친 가해자가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악순환의 쳇바퀴에서 해법은 뭘까를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인도에는 비폭력의 의미를 가진 아힘사(Ahimsa)’라는 단어가 있다. 산스크리스트어 ‘hims(때리다)’에서 유래했다. 힘사(himsa) 피해, 상해의 의미이고, 아힘사(a-himsa)는 피해 주지 않기, 비상해의 뜻이다. 폭력은 타인을 살해하거나 신체에 상해를 입히는 것은 물론 언어로 인한 정신적인 피해도 포함한다. 물리적 폭력은 당연하고 상처를 줄 수 있는 어떤 행위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다. 행위, 언어, 사고 등 모든 면에서 상해를 입히지 않는 것이 아힘사다. 이는 인간을 포함해 모든 생명체에게 적용된다.

벌써 20여 년 전, 초등학교 시절의 일이다. 필자를 분노하게 만든 에피소드다. 당시 ‘5분 대기조’로 구성돤 학부모 모임이 있었다. 선생님의 지시가 떨어지면 5분 안에 학부모들이 모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모임으로 자주 선생님과 학부모들을 만났다. 그런데 어느 날 사물놀이 공연 준비 과정에서 생긴 왕따와 돈 문제가 발단이 되었다. 당시 학부모 모두가 전업주부였고, 필자만 프리랜서로 일하는 엄마였다. 대북 연습과 공연을 위한 뒷바라지가 만만치 않은 일정이었다. 시간 여유가 많은 전업 맘들은 분초를 쪼개서 움직이는 필자와는 확연히 라이프 스타일이 달랐다. 필자는 사전 모임이나 뒤풀이 참석률도 저조했고 느긋한 티타임은 로망에 그쳤다.

‘워킹 맘의 아이는 어딘지 다르다!’

일하는 엄마를 둔 우리 아이는 어느새 외돌토리가 되어 있었고 필자는 드센 여자가 되어버렸다. 선생님과의 관계도 투 트랙으로 움직였다. 왕따나 편가르기가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모은 감사금 모금도 의견 차가 컸다. 결국 당당하게 손편지 한 장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그때는 김영란 법이 없던 시절이었다.

옳지 않음, 부적절함, 정의롭지 못함 등등. 이런 상황 앞에서 피하려는 마음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 정의의 맛을 보지 못한 미성숙함 때문일까? 고3 방학 자율학습에 대한 학교 측의 선결정 후동의에 대한 문의는 아이의 완패로 끝나버렸다. 까다로운 아이로 한 번 찍힌 낙인은 모든 교사의 눈총을 받게 했고 졸업 때까지 꼬리표가 되어 쫓아다녔다. 다행히 수련의 시간을 보내며 아이는 안으로 씩씩해졌다. 아픈 만큼 성장 한다는 말은 진리다.

소소한 건으로는 집 근처 L모 백화점의 주차비 분쟁이 있었다. 쇼핑 주차라 해도 1분 초과 시에는 1시간 비용을 요구한다. 10분 단위로 끊어서 50분에 해당되는 돈을 거슬러 달라 하니 규정상 그럴 수 없단다. 받기는 시간 단위로 받아도 초과분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완전 제멋대로다. 규정의 부당함을 제기하니 자기는 지시대로 할 뿐이란다. 나 역시 버티며 서 있자, 뒤차들이 완전 아우성이었다. 주변 운전자들의 항의에 밀려 무사 출차는 했지만 옳지 않은 것들에 지고 싶지 않았다. 버팀과 저항도 나름 자존이다.

분노는 이전까지의 모든 노력을 단숨에 공으로 만들어버리는 파워가 있다. 오죽하면 분노조절 지도사 자격증까지 생겼을까. 생각해보면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닌데 어리석은 치기가 일을 크게 만든다. 반백을 넘긴 요즘은 화가 일어나면 잠시 눈을 감고 숨 고르기를 한다.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평화롭게만 보이는 넓은 바다! 하지만 그 안의 크고 작은 출렁임을 안다. 내 안에서 시작한 분노는 내 안에서 끝내리라. 그리 되도록 애를 쓴다. 아직도 수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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