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가을이었다. 그때는 서둔야학교가 새 교실을 짓기 전이어서 계사를 빌려 수업을 하던 시절이었다. 엉성하기 짝이 없는 토담에 깜박깜박하는 호롱불을 켜두고 바닥에는 멍석을 깔고 수업을 했으나 그곳은 우리의 유일한 배움의 보금자리였다. 선생님들은 열심히 가르쳐주셨고 학생들은 진지하게 눈과 귀를 모았다. 그런데 반드시 그런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날 2교시는 최언호 선생님이 과학 수업이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조용했지만 몇몇 남자 선배들이 장난을 치고 잡담을 하는 등 산만했다.
‘아이 시끄러워. 도대체 왜들 저러지? 저럴 거면 학교에는 왜 왔을까?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되게. 참 속상해 죽겠네….’
선생님께 민망해서 필자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속으로 안타깝게 생각할 뿐 그때만 해도 가장 어린 나이의 필자가 남자 선배들의 태도를 제지할 방법은 없었다.
그때였다. “조용히 해요.”라며 몇 번 타이르시던 최 선생님이 어디선가 가져오신 회초리를 오른손에 잡으신 후 당신의 왼쪽 팔목을 사정없이 때렸다.
“내가 너희들을 잘못 가르쳐서 그런 것이니 내가 맞아야 한다.”
졸지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우리들은 깜짝 놀라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때 벌떡 일어나 교단으로 달려 나간 학생이 있었다. 선배 민자 언니였다. 언니가 회초리를 빼앗았지만 이미 선생님의 왼쪽 팔뚝은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선생님 잘못했어요.”
“선생님, 이제 제발 그만하셔요.”
회초리를 뺏기지 않으려는 선생님은 우리들이 모두 엉엉 울면서 애원하니까 그제야 못 이기는 척 언니에게 회초리를 내어주며 눈시울을 붉히셨다. 때아닌 소동에 옆 반에서 수업 중이던 김 선생님도 휘둥그레진 눈으로 쳐다보셨다. 아마도 최 선생님은 부어오른 팔의 통증으로 며칠 고생하셨을 것이다. 지금도 필자의 기억 창고에는 선생님 앞에서 고개를 못 들던 아이들과 선생님의 부풀어 오른 팔뚝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최 선생님을 다시 뵌 것은 필자가 농대 김현욱 교수실에서 근무하던 1977년도였다. 서울여대 식품과학과 교수님으로 계셨던 최 선생님이 김 교수님께 볼일이 있어 방문하셨던 것이다. 13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필자는 대번에 선생님을 알아봤고 선생님도 필자를 금방 알아보셨다.
“어머! 선생님!”
“너 애란이 아냐?”
선생님은 반가워서 필자를 두 팔로 ‘덥석’ 안아주려고 다가오시다가 새삼스럽게 물으셨다.
“그런데 너 몇 살이지?”
“스물일곱 살이요.”
그러자 선생님은 앞으로 내민 팔을 재빨리 뒤로 가져가셨다. 선생님 마음속에서는 필자가 여전히 열네 살 어린 소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제자를 반가워서 한번 안아주기로서니 무슨 큰 흉이 될까마는 최 선생님은 그렇게도 마음이 여리신 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