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은 전라북도 북서부에 있는 도시이며 일제강점기 이후 군산항을 중심으로 성장한 항구도시로 1899년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곡창에서 나는 좋은 쌀을 일본으로 빼앗아가는 항구도시의 역할로 급성장했다는 슬픈 역사가 있다.
언젠가 TV에서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 물자를 수탈해가는 관문이었던 군산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군산은 일본인이 많이 자리 잡고 살았던 곳으로도 설명되었다. 그래서 아직도 일본 문화와 건축물이 남아 있고 역사를 잊지 않으려는 취지로 잘 보존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떤 동네에서는 서울의 고궁 근처에서 한복을 빌려 입고 한국 문화를 체험하는 것처럼 일본의 기모노를 빌려 입고 일본 문화를 체험해 보는 곳이 있다고 한다. 일본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일제강점기 역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아픈 역사이므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는 설명에 이해가 되기도 했다.
필자가 일제강점기를 겪은 세대는 아니어서 일본 문화에 그리 큰 관심은 없었지만 일본의 건축물이나 일반인들이 살던 가옥은 보고 싶었다. 어린 시절 필자가 좋아했던 외갓집도 적산가옥이라 불리던 일본식 가정집이었기 때문에 무언가 아련한 그리움이 남아 있어서다.
일본의 정원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던 외갓집은 꿈의 궁전으로 생각될 만큼 필자에겐 아름답게 기억되고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집 건물이 있고 왼쪽으로는 넓은 마당이 있었는데 커다란 팽나무에는 할아버지께서 필자를 위해 매어주신 그네가 있었다.
마당에는 또 아이들이 숨바꼭질할 수 있을 정도의 동산과 돌다리가 걸쳐진 연못이 있었다. 그 연못 속에 있던 돌로 만든 거북이도 멋있었고 연못 속에서 피어난 늘씬하게 쭉쭉 뻗은 수선화의 초록 이파리와 보라색 꽃도 아름다웠다.
건물 가장 끝에는 부엌이 있었고 그 옆에 칸칸으로 나누어진 커다란 미닫이 유리창은 안방 문이었다. 부엌 앞에는 마중물을 부어 위아래로 빨리 움직이면 언제나 콸콸 시원한 물이 쏟아지는 펌프가 있었다. 작은방 옆에는 석류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새빨간 석류가 딱 벌어지면 그 안에 가득 들어 있는 보석 같은 알맹이를 보는 게 즐거웠다.
다다미로 이어진 건넌방, 긴 복도 끝의 화장실로 가는 길은 좀 으스스했지만 모두 그리운 추억의 장소로 기억된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군산에서의 근세 문화와 일본 가옥 돌아보기를 시작했다.
먼저 근대 역사박물관에서는 1930년대로 시간여행을 떠났다. 필자가 신어본 적은 없지만 상표는 알고 있는 경성 고무 만월표 신발가게, 조선 주조인 술도가, 군산극장, 군산역이 재현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납작 고무신이 정겨웠고 술도가의 술 만드는 기구와 술통이 흥미로웠다. 이곳엔 국제무역항 군산의 과거, 현재, 미래와 관련한 전시물과 함께 의병장 등 독립 영웅들의 자취 등 많은 자료가 잘 보존되어 있었다.
군산 개항 후 일본인과 함께 들어왔다는 동국사는 일본 사찰 건축 양식을 따랐고 대체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개화기와 근․현대사의 역사를 증명하는 건축물로서 식민지의 아픔을 확인할 수 있는 교육 자료로 활용가치가 높다고 한다.
큰 관심을 갖고 돌아본 일본식 가옥은 필자가 기억하고 있는 외갓집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나무 창살이 촘촘한 창문도, 둥그런 유리창도 모두 추억 속 외갓집과 닮아 있어서 어린 날로 돌아간 듯 그리움이 밀려왔다.
낯설고 새로운 모습을 보는 여행도 즐겁지만 이번처럼 어린 시절을 추억해볼 수 있는 나들이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필자에겐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