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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는 가르쳐도 익히기 어려운 것

기사입력 2017-04-13 16:52

‘농사 중에 자식 농사가 제일 어렵다.’ 마음먹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일 게다. 자식은 자라면서 몇 번의 껍질을 벗는다. 옛말에 ‘씨도둑은 못 한다’고 하는데 부모 보며 배우고 따라 한다는 의미쯤으로 생각된다. 필자는 요사이 염치없게도 반성을 많이 한다.

10대에는 야단치는 부모에게 반발했었고 또, 잘되라고 야단친다는 말도 실감하지 못했다.

20대에는 다 컸으니 알아서 하면 잘 될 것 같았다. 모든 행운이 내게 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30대에는 살기 바빠서 부모는 그냥 언제나 내 옆에서 나를 도와주기 위해 존재하는 분이니 천천히 효도하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40대에는 아이들이 커 가면서 나중에 내가 받을 효에 대한 모범을 보이기 위해 부모라는 배역이 종종 필요하기도 했다.

50대에는 부모가 안쓰럽고 고마웠다. 깊은 주름과 낮아지는 체온이 애처로웠다. 비로소 의무가 아닌 가슴으로 부모를 대하기 시작했다.

60대, 부모 가신 지금은 마냥 서글프다.

우리 60대를 낀 세대라고 하는데 부모를 모셨으나 자식에게는 부모 모시기를 기대할 수 없어서다.

효는 본능처럼 타고나는 것이 아니고 교육에 의해서 학습되는 것 같다.

옛날에는 사회적 분위기가 효도하는 분위기였다. 효도와 가정은 나라의 근본이라고 억지로라도 내리누르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요사이는 개인의 삶이 중요시되고 또 존중하는 분위기라서인지 아님 먹고 살기 힘들어서인지 효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그래서 때로는 자조적인 기분으로 정산을 해보며 위안을 삼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목표를 가질 수 있어서 행복했다. 부모로서 잘 키워야 한다는 목표가 바른 삶을 살도록 했고, 나태하지 않도록 늘 바른 채찍이 되었다.

아이는 커 가면서 부모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물론 힘든 일을 통해서 반성하고 발전하게 해주기도 했다. 아이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것으로 충분한 효도를 받았다고 생각하자.

경제적인 투자 가치로 따진다면 경제적인 가치는 형편없다. 이익은커녕 본전도 못 건진다. 본전의 만분의 일도 못 건진다. 게다가 덜 해주었다는 소리도 종종 듣는다.

정확히 말하면 ‘해 준 게 뭐 있냐?’는 소리일 것이다.

단어는 조금씩 달라도 집집마다 비슷하다.

또 효도는 억지로 하려고 하면 힘들다. 자신의 자식을 위해서 헌신하듯 효도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하는 것 같다.

나이 든 부모님이 얼굴도 쭈글쭈글 해지고 걸음도 뒤뚱거리고 똥도 지리는 처량한 모습을 보며 나도 저 나이 되면 저렇겠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연민의 정에서 출발하면 감성적인 느낌으로 다가가게 된다. 애틋함이 묻어나는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이 부모자식 간에 이루어질 때쯤이면 가시더라.

사람과 물은 내려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효는 가르쳐도 익히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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