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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의 시대에서 공존의 시대로

기사입력 2017-04-07 09:22

처음엔 진지하고 무게 잡아 딱딱하던 종편 채널 정치 평론가들이 많이 달라졌다. 아마 방송국의 요구도 있었겠지만, 요즘은 마치 ‘준 연예인’이라도 된 듯하다. 어느새 인기 패널도 생겼단다. 그래서인지 시종 소란스러운 정치판을 다루는데도 여성 팬이 많아졌다는 소식이다. 필자도 어느새 시간에 맞추어 고정적으로 그들의 입담을 즐기는 버릇이 생겼다.

오늘도 어김없이 즐기는 채널을 틀었다. 그런데 오늘의 주제는 참담했다. 5개월여를 숨 가쁘게 달려오던 정치 미니시리즈가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리려는 극적인 장면이다.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이었다. 화면은 구속되는 대통령을 반복해 내보내고 있었다. 우아하던 올림머리는 풀이 죽고 얼굴도 초췌했다. 비록 한심한 잘못을 저질렀지만, 이 장면에서만큼은 연민의 정을 금할 수 없었다.

사실 박 전 대통령의 당선은 매우 역사적인 일이었다. 민주주의 종주국인 미국에서도 이루지 못한 대한민국 최초 여성 대통령의 탄생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박근혜가 아직도 여성으로 보이냐?” 라는 괴담도 있기는 하지만, 그의 등장이 여성들에게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제는 두 번 다시 여성 대통령이 나오지 못하게 대못을 박아 버렸다.

그동안 유행하던 페미니즘이 정치 바람에 오염되어 퇴색하기는 했어도 그런 유행 덕분에 여성의 지위가 향상된 것은 사실이다. 물론 아직도 공직이나 대기업에서 여성의 지위가 미약하기는 하지만, 남녀평등의 대세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남성들이 역차별을 우려하는 지경까지 되었다. 박근혜만 잘했어도 하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여성에게 우호적인 최재천 교수에 따르면 “인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남성의 시대는 오래되지 않았다. 인류가 등장하고 25만 년 동안, 남성이 여성보다 우위에 있었던 시대를 계산해 보면 1만 년 정도에 불과하다.”며 위로한다. 곧 여성의 시대가 다시 온다는 말이다. 사실 지금이 근육의 힘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시대도 아니지 않은가.

어린 세대에서는 이미 전세가 역전된 것인지 모른다. 어느 남녀공학 고등학교 교장의 토로가 흥미롭다. 체육복을 갈아입을 때면 예전에는 여학생들이 화장실로 달려갔는데 요즘엔 거꾸로 남학생이 옷을 싸 들고 화장실로 간다며 웃었다. 여학생들이 교실에서 거침없이 옷을 갈아입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세대 빼고는 이미 변화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얘기다.

가정에서도 그런 세상의 변화는 감지된다. 변화에 적응하는 남성들은 살아남는 반면 아직도 환상 속에 사는 남성들은 버림받기 십상이다. 우리 세대에나 아직 세상물정 모르고 버티는 남자들이 천연기념물로 존재하지만, 젊은 층에서는 가사 노동하고 화장하는 남자들이 사랑받는 실정이다. 요즘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아이돌들은 한결같이 어여쁘지 않은가.

그동안 20세기 산업사회에서 남성들이 만든 경쟁 중심 사회 구도를 벗어나 21세기 지식산업 시대에는 여성들이 주도하는 조화와 공존의 시대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한다. 비록 박근혜는 실패했지만, 이미 우리 사회는 공감과 소통이라는 여성성이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임이 확인되었다. 어느새 화면에 여성 정치 패널이 심심치 않게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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