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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콩 자루

기사입력 2017-03-08 18:17

이번 한 주 동안 꽃샘추위 최강한파가 몰려온다는 뉴스가 약간의 공포감을 가져다주었다.

굳이 ‘최강’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련만......

여기서 ‘최강’은 추위를 대비하라는 경고성 예보라기보다는 이제 웬만한 자극적인 사건에는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회분위기를 반영한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새벽에 집을 나서면서 완전 무장을 했다.

아파트 현관문과 지하 주차장 입구까지는 불과 삼분 거리밖에 안되고 사무실 내 자리까지는 회사 지하 주차장에서 외부를 거치지 않고 올 수 있다.

그런데도 종일 바깥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처럼 목도리를 두르고 두툼한 코트까지 걸치고 나섰다.

내 또래 사람들 중에 어릴 때 따뜻하게 살았던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마는

어린 시절의 겨울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온 몸이 오그라든다.

방안에서도 하얀 입김이 나오고 윗목에 놓아 둔 물그릇이 밤새 꽝꽝 얼어버리던 추위였다.

그래도 방학 때는 이불 뒤집어쓰고 방안에서 지내면 되었지만 개학 즈음의 초봄이 괴로웠다.

집에서 먼 거리의 학교를 걸어 다니던 중학교 때 그 초봄 추위.

박박 깎은 머리에 교모 쓰고 면으로 만든 검은색 교복 하나 달랑 입고

새벽에 나서면 위아래 이빨이 다다닥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어릴 때 나는 몸도 약했고 혈액 순환도 잘 안 되는 체질이었다.

매년 겨울이 시작될 무렵부터 봄이 올 때까지 심한 동상에 시달렸다.

귀는 벌겋게 얼어서 주먹만 하게 커졌고 손가락, 발가락도 진물이 나고 퉁퉁 부었다.

발가락이 엄청 굵어져서 신발을 신기도 힘들었다.

동상은 아프기도 하지만 가려운 것이 더 괴롭다.

마땅한 동상약도 없던 시절 어머니께서는 밤마다 콩 자루를 내 손과 발에 채워주셨다.

동그랗고 노란 콩을 반 쯤 채운 신발주머니 같은 자루에 손을 넣으면 팔목을 묶어 주셨다.

양쪽 발도 양말처럼 콩 자루를 신고 잤다.

내가 뒤척일 때 마다 그 동글동글한 콩알들이 사그락 사그락 소리를 내면서 내 발과 손가락 사이로 굴러다녔다.

간질간질 거리던 콩의 감촉이 아직도 남아있다.

어머니께서 자루에 담아주시던 콩알 숫자만큼이나 많은 세월이 훌쩍 흘러버렸다.

팔순을 훌쩍 넘기신 어머니의 손등은 주름이 많고 윤기도 없다.

요즘 어머니 손을 보면 오십여 년 전 내가 만지작거리며 놀았던 할머니의 손이 생각난다.

뼈만 앙상하던 손.

검버섯이 핀 손등 피부를 들어 올려 꼭 접어놓으면 다시 내려앉아 펴지는데 한참 시간이 걸리던 할머니의 손...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자꾸 더 높이 들어 올리곤 했었다.

이제 어머니의 손이 그렇게 되었다.

육십을 앞에 둔 내 손은 겨울마다 채워 주셨던 어머니의 콩 자루 덕분에 참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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